2014. 03.06
오늘 수업에 필요한 도구 몇 가지를
후암동에 두고 온 탓에
잠깐 후암동엘 갔다가
언덕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해가 바쁘던
오후에 도착했었는데
어느새 하늘에선
해가 켜 둔 달이
손톱갓을 쓰고 반긴다.
잠든 아가 눈매처럼
앙징맞은 달이
발목을 잡으며
놀아달라는 듯 애교스럽기에
키 큰 나뭇가지에
살짝 걸터앉은 모습을 연출하느라
담장 곁에 바짝 붙어 구도를 잡는데
지나던 외국인이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 준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웃으며 thank you라고 인사했더니
'뭘 찍은 거예요?" 라며
한국말로 물어온다.
"아.. 손톱달이 꼭 보트 같아서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거
찍어보려..^^;;"
말하면서도 부끄러워서
뒷말은 멋쩍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무안해하는 걸 아는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곤,
"와~ 진짜 나무에 앉은 거 같아요~"
기분 좋은 웃음과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곤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
갑작스레 차가워진 바람에도..
나이 든 볼에 화들짝 열이 오른다.
평범한 일상이 될뻔했던 하루가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되는 것.
그 "누구"가
긴 여운을 남긴 가슴일 때는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손톱달이 뜰 때마다
그리움으로 함께 뜨겠지..
그저
단순히 지나치는 인연이라도
오랜 기억으로 남는
따뜻한 끌림도 있다.
해서,
인연이란 말은
가볍지 않은 이름이다.
결코.
(2014.03.05
수요일 저녁 7시경의 후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