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나이 듦이란.
나이 듦이란,
기억을 놓아주는 방법을 깨닫는 일.
그래서
나이 듦이란,
기억이 될 지금에
연연하지 않는 일.
적어도 내게 있어 나이 듦이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후련하다 ¹"는
어느 마음을 닮으려는 여정이다.
/2016.07.19.facebook/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후련하다
/박경리
그리고 2025년 7월 19일.토요일
휴가를 다녀온 딸을 픽업하러 인천공항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송도동 근처에서 낯선 조형물이 행운의 V를 치켜세우고 나타났다.
"저게 원래 있던 거야?"
운전 중인 딸은 갑작스러운 엄마의 질문에 당황했는지 "어떤 거?"라고 되물었다.
오른손으로 조형물을 가리키며 "저기 저 하얀 V 말이야."라고 답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어? 그러게. 이 길, 자주 다녔으면서 오늘 처음 보는 건 왜지? 엄마도 처음 보는 거유?"
"응. 아니, 그러고 보니 본 것도 같아.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나 봐. 꼭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런데 너무 근사하다. 저 메시지. "
나도 자주 그래 엄마. 관심 없는 일이라 그런지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은데 오늘은 왜 그런지 너무 멋지게 선명하네? 행운이 오려나? 하하
비 오는 토요일 새벽 6시, 차량이 꽤 바쁜 행렬로 달리는데도 젊어서 그런지 운전을 하면서도 딸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요즘 운전이 무섭고 조심스러워서 누가 말을 시키면 바로 길을 잃곤 하는데...
딸이 말한 것을 다시 새기면서 생각했다.
무관심한 어떤 것이 새롭게 보이거나, 특별해 보이는 거, 그리고 늘 있던 존재의 가치가 유난한 빛으로 반짝이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또 관심의 유무와 상관없이, '특별한 감성이 도착해서 발견하는 가치'가 아닐까라고.
때때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감성이 무뎌지는 퇴화로 낭만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었는데, 감성이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무뎌질까 봐 전전긍긍한 걱정의 값이 더 컸던 까닭이라고. 그래서 그 걱정이 서둘러 쳐 놓은 울타리만 보고 있었던 것이라고.
울타리를 뽑고 치워 버려야겠다. 예쁘지도 않고 거추장스럽기만 할 폐쇄의 장대, 오지도 않은 내일 걱정 따위. 알지도 못하는 불완전한 내일의 날씨 같은 그런 걱정들.
그래서 오늘의 주문은 "낭만과 감성이 몽글몽글 꽃봉오리로 가득한 정원을 가꾸며 생의 오후를 누려야지"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