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집이오.

2015.07.20

by 종이소리

날이 무척 더웠다. 아니 미친 더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언덕을 올라야 했다.


동대문역 1번 출구부터 작업실까지는 1Km. 도보로 약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가벼운 코스다.


아니다. 가볍지 않다. 결코 가벼운 도보길이 아니다.


거리로는 고작 1Km 정도지만, 30도 기울어진 언덕길을 지나면, 또 40도 기울어진 언덕길이 나오고, 마법 같은 언덕길이 또 나오다가, 다시 언덕길을 올라야 하는 비탈길 레이스다.


나의 소중한 작업실은 울고 싶다는 표시

" ㅠ ㅠ" 표정으로 올라야 하는 비운의 언덕길에 살고 있다.


'내가 원한 선택이고, 갖고 싶은 공간이어서, 누구에게도 이 비탈길 코스에 대한 원망을 결코 할 수 없다'라는 웃지 못할 이 사연을 적에게 알리지 말아야지.


경보 선수처럼 땡볕과 전쟁을 치르며 창신시장 입구를 막 지날 무렵이었다.


심한 갈증이 발목을 잡았다. '목이 타들어간다는 하소연은 이럴 때 쓰는 거야'라는 생각과 동시에 슈퍼를 찾았다.


500ml 생수 한 병을 계산하고, 그 자리에서 꿀꺽꿀꺽 다 마시면서 생각했다.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여기까지 고작 삼백 미터도 안되는데 벌써 지치다니. 오늘은 좀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길로 가야겠다. 좀 쉬엄쉬엄'


창신길은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봉제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는 길이라 여유를 부리며 걷기에 쉽지 않은 길이다.


더구나 인도도 없이, 트럭도 다니고 자동차도 다니는 도로여서, 먼산 보고 다니다가는 위험천만의 곡예를 경험해야 하는 길.


'때문에 오늘 같은 더위에는 그냥 골목으로 가자!'


나름 꼼수를 부린 것을 흐뭇한 미소로 자화자찬하며, 생수 두 병을 더 사서 슈퍼를 나섰다.


흐르는 땀과 함께 천천히 걸었다. 처음 오르는 골목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풍경이 등장하면 기분 좋게 촬영도 하면서.


한쪽에는 금왕약국과 한쪽으로는 마당이 있는 주택 사이 좁은 골목으로 걷다가 왼쪽으로 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기와로 된 지붕아래, 철로 된 문을 열어놓은 채 어느 집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서까래가 보였고, 그 아래 두 남자가 천정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나는 다짜고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무기 삼아 집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는 남자의 놀란 눈에 활짝 웃으며 서까래 좀 찍게 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뭐 하려고 그러시오?"


'... 시오?.. 라니... 세요? 가 아니고..?'


잠시 옛시대로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나도 몰래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호. 호. 혹시... 지금이 몇 년도 예요?"


"2015년 이오만?"


'응? 맞는데? 나 지금 꿈인가? 왜지? 뭐지? 이 타임머신을 탄 기분은?'


사진을 찍겠다며 쳐들어 온 여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두리번거리는 것이 수상했는지 남자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창신동 사시오? 아니면 그쪽도 도시재생인가 뭔가 하는, 그런 일 하는 사람이오?"


"아, 아니요, 아니에요. 저 낙산경로당 바로 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오늘 너무 더워서 골목길로 좀 걸어 올라가려고 이 길로 왔는데... 서까래가 너무 멋져서 그냥 들어와 버렸어요. 제가 한옥을 너무 좋아해서요.. 어릴 때 외갓집에서 자랐을 때 추억이 있어서요. 그때 사진 한 장이라도 찍었어야 했는데... 외할머니 보고 싶을 때 가끔 한옥을 찾곤 하거든요. 그런데 저 서까래가 너무 근사하네요.. 집이 꽤 연세가 있어 보여요. 아. 이런.. 말이 너무 길었죠? 무례했습니다. 물이라도 좀 드세요. 날이 너무 덥죠? 아하.. 하하"


뭐에 홀린 듯 술술 털어놓으며 시원한 물까지 건네는 여자가 안쓰러웠는지 남자는 팔짱을 풀며 말했다.


"물은 아주머니가 필요할 것 같으니 가져가시고, 필요한 만큼 사진 찍으시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공사 담당자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실랑이를 시작했다.

"저 패인곳에 진흙 발라 살리는 게 도저히 불가한 일이오? 그냥 다 부시라고?

100년 된 집이요. 살릴 수 있으면 살려서 살고픈 집이오. 40년 넘게 살았소."



"진흙 발라봐야 또 주저 않습니다.
땜빵이 얼마나 간다고..."


한옥 전문 보수업체가 아니라 잘 모르는 거냐, 내가 모른다로 둘러치는 거냐, 는 등 답답함을 혼잣말처럼 토로하더니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골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 같았다.


마음껏 찍으라고 한 말처럼, 원 없이 찍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꼭 찍고 싶은 몇 컷만 담고 그를 따라 문 밖으로 나왔다.


남자는 어딘가 전화를 하는 듯했는데 연결이 안 되는지 아무 말 없이 전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다 찍으신 거요? 그럼 가볼 데가 있어서 이만 가야겠오"


"제가 감히 여쭐말씀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다 부시고 양옥으로 올리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안전도면에서는 저분의 말씀도 일리가 있어 보여서요"


"살릴 수 있으면 살려서 살고 싶소. 집은 그렇게 함부로 부시는 거 아니오. 내 몸, 내 생과 같아서.."


깊은 속내는 가두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남자의 눈이 촉촉한 물빛으로 반짝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바지 뒷 주머니에 전화기를 꽂으며 는 골목을 떠났다.


'남자의 눈물은 등으로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행복의 땅을 떠나야 하는 이들의 슬픔처럼 그의 등이 울고 있다는 느낌.


'저도 살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걸리는 게 뭐가 그리 많고, 뭐가 그렇게 까다로운지 모르겠습니다. 한 생을 지켜주고 내 가족의 시간을 이어주는 터에 대해서는 어째서 그렇게 업신여기고 경솔한지..'


백분 이해가 되는 당신의 말에 나도 백퍼 동감이라는 혼잣말과 함께, 떠나는 남자의 등에 두 손을 모아 인사드렸다.


" 원하시는 대로, 살려서 계속 이어가시길 기원할게요. 잘 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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