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4
우리에게 더 신경 많이 쓰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주면 좋겠어.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면 뭐 해. 맨날 엄마가 가장이야!"
무덥고 습한 불쾌지수에
열병 ¹ 까지 겹친 며칠 전.
온갖 일을 처리하다
몸져누운 제 엄마를 보며,
'여자'와 한편인 딸아이가
꾹꾹 눌렀던 불만을 터뜨렸다.
(열병 ¹:갱년기 장애의 하나로
기초체온이 거의 불덩이가 되어
아이들도 남편도 가까이 있는 것조차 힘들 만큼 몸이 뜨겁다)
차분하게 숨을 두 번 내 쉬고
아이가 눈을 맞춰 줄 때까지 기다리며
물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엄마의 분위기를 파악한 딸이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눈빛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고맙다는 마음을 미소로 대신했다.
"물론, 집에 더 잘해 주고
신경 써 주면 좋겠다고 나도 생각해.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희생하라는 요구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순간 아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희생이야 엄마? 그건 책임과 의무 아니에요?
나는 다시 물을 한 모금 삼키며 말했다.
"책임과 의무는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 우리 먹여 살리려고 하루 온종일 전화기를 귀에 꽂고 살잖아. 나는 그 모습이.. 마음이 아파"
"하지만 그보다 나는,
그렇게 집에 잘하고
가족에게 세상없이 최고인 사람이,
만약에 입에 담지 못할
망언을 하고 다니거나
뉴스에 나올 불미스러운 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서
가족에게까지 정신적 피해를 끼친다면
그건 가족을 생각하는 가장일까?
라고 묻고 싶구나."
아이가 팔짱을 풀더니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는 긴 숨을 내쉬었다.
"아빠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남자'이고,
예의와 진심을 실천하는
성실하고 지성적인 '사람'이며,
사회생활 중에 허튼짓으로
실망을 시킨 적 없는 '아빠'라고 믿어
물론 서운한 부분이 없진 않아.
하지만 나도 못 챙기는 일이 많잖아.
그걸 다 받아 주는 아빠한테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생각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감내하는 거야.
불평불만이란 게 말이야,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드는 괴물 같아서
나를 위해 즐기는 걸로 바꿨지.
아빠만이 아니라
가족은 서로에게 신경 써 주고
아껴준다는 것을 물질과
어떤 행동으로 대신하기보다
정신적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요즘, 더 많아지더라.
워낙 추문이 많아서 그런지."
아이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지더니
이마를 긁었다.
"그런데 넌, 너의 아빠가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잘못을 저지른다면 어떨 거 같아?"
그런 건 생각 안 해봤는데..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
그런 면에선 우리 아빠..
정말 멋진 남자, 괜찮은 사람이지.
.
.
그러고 보니 엄청 고맙네.. 우리 아빠."
기다림은
더러 꿈을 배신하기도 하지만,
그 꿈을 마냥 기다리기보다
작은 실천으로 노력하다 보면
합당한 보답으로 와 준다.
그 진리를 스물두 살 아이가
얼마나 알아 들었을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빠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분명 조금 전과는 다른 실천으로
아빠를 녹이고 응원하리라.
불우이웃 돕기도 하면서
내 가족을 응원하고
이해하고 돕는 실천은
늘 그렇게 야박하고
늘 뒷전으로 밀린다.
너무 익숙한 관계,
너무 당연한 관계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