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4
2020년이었다.
한국바이닐환경협회가 주최하고,
환경부, 서울새활용플라자,
한국환경공단, 한국기초조형학회,
LG화학, 한화설루션,
유용자원재활용기술사업단이 후원하는
PVC ECO Design Award2020에서
한국바이닐환경협회장상인
특선을 수상했다.
"응원 /PVC노즐 & 호스의 재발견"
작가노트/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도 사고 싶고, 간직하고 싶고, 사용하고 싶은 ‘그럴듯한 제품’ 하나로 업사이클링(새활용)의 의미를 대신하기에는 지금 이 사회에 버려지는 자원이 너무 많다.
비닐끈, 수평호스, 링거노즐. 한 번의 쓰임을 다하고 현장에서 조용히 밀려난 이 재료들은 결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이 재료들에 ‘고급스러운 제품’이라는 외피를 입히는 대신, 누구나 일상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해체하고, 다시 버릴 수 있는 생활의 쓸모를 제안하고자 했다.
비닐과 플라스틱, 화학 소재는 흔히 ‘친환경 소재’라는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 재료들 역시 특정한 목적과 기능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미래 자원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재료가 아니라 버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작업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내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생활 소품 바구니를 만드는 과정은 사용의 연장이자, 올바른 폐기를 연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뜨거운 눈길로 그들 앞을 잠시 서성이자. 이 재료들이 들려줄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
“뭔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김수경
1994년 독일에서 "라이너 필츠"가 친환경 소재와 업사이클링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었다면, 나는 같은 시기 한국에서 그와 다르지 않은 질문을 품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1995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48인치 마루직기에 앉아 뱃속의 아이와 함께 베를 짰다. 면과 마, 사이잘삼처럼 자연에서 온 섬유와 종이노끈으로 직물을 엮으며 태어날 아이에게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지구에서 온 내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업사이클링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버려지는 자원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는 늘 미안함과 서글픔, 그리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각오가 함께 있었다.
그 각오가 경제적인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작업은 언제나 미래를 위한 연구였다. 생활공예와 조형, 설치라는 이름은 달라도 그 끝은 하나다.
자연과 어우러진 작품이기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이 되기를 바라는.
라이너 필츠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지만, 그는 이것을 미학이나 트렌드로 소비하는 데 가장 경계심이 컸다고 믿는다.
필츠에게 업사이클링은 ‘버려진 것을 더 비싸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버리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 였을 것이다.
그의 철학을 짐작해 볼 때, 불필요한 장식이나 감동의 과잉을 경계했을지 모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아름다운 결과물’을 목표로 작업하지 않았다.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늘리고, 버리는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며, 재료가 다시 사라질 수 있는 길까지 포함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해한 필츠의 업사이클링이며, 지금 우리가 다시 질문해야 할 ‘새활용’의 출발점이다.
업사이클링은 '자랑'이나 '가시적인 정책'이기 전에 책임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만드는 손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버리는 손에서 완성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업사이클링은 무언가를 더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를 묻는 태도에 있다.
아름다운 물건을 하나 더 남기는 일보다 덜 버리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선택이 이 시대에 더 급진적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비싸지지 않아도 되는 것, 멋지지 않아도 충분한 것, 다 쓰이고 나면 조용히 사라질 수 있는 작업을 선택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의 최소 단위이며, 업사이클링이 생활의 언어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업사이클링이라는 이름의 명성이 아니라, 친환경 소재가 특별하지 않게 쓰이는 일상, 그리고 쓰임을 다한 뒤, 제대로 보내는 습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