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비좁구나

2017.01.07

by 종이소리

좀 쉬러 왔는데

쉴 수가 없구나

해와 비와 바람이

가만 놔두지를 않고

서로 함께 놀자며,

소란을 떨며 바쁜

지리산의 아침.


이 아침을 옮기기엔

종이가 비좁구나.

-지리산 하동, 보물단지-

2017.01.07

그립고

보고 싶고

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

그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축복받은 삶입니다.


"작가님!

해지고 어둑어둑해지면

집 밖으로,

절대 돌아댕기지 마이소!"


왜요?


"울 동네 어르신들,

작가님 보믄

마, 다 까무라칠 끼라요!"


그건 또 왜요?


"아!, 작가님 머리가

허예가꼬,

구미혼줄 알고

놀라 자빠진다카이!"


개구쟁이 이장님의

재밌는 농으로,

크크크크크

깔깔깔깔깔

하하하하하

큭큭큭큭큭

이런 웃음을 매달고

꼬불꼬불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던

이장님, 위원장님,

도화언니, 미숙언니와의

추억이

지나고 보니

내생에 또 다른의

봄이었습니다.


어쩌면 인연이란 오래 묵어야 제맛 나는 된장, 고추장, 간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없으면 절대 안 되는 한국인의 정서 같은. 먹어도 먹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향수의 맛 같은.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제 색을 드러내고, 급히 열어보면 아직 덜 익어 쌉싸래한 향을 남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기다림을 허락한. 관계만이 결국은 밥상에 초대하는 기쁨이 됩니다.


인연도 그렇습니다.

자주 보지 않아도, 말을 많이 섞지 않아도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천천히 발효된 관계는, 어느 날 조용히 삶의 한가운데 놓입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필요한 존재. 부재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 깊이를 알게 되는 관계. 그래서 쉽게 친해지는 사이보다 오래 남을 사이를 챙기게 됩니다. 시간이라는 온도에서 묵묵히 익어가는 것들의 온유하고 글썽이는 그 힘을.

-202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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