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long here
(Becoming Jane, Directed by Julian Jarrol, 2007)
서울에서의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엄마에게 토로하다, 오랜만에 뉴욕의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그러신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이전의 힘들었던 기억들은 미화되고 좋았던 기억들은 채택되어 더 기억에 또렷이 남기 마련이라고. 나는 아닌 것 같다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서울보다 뉴욕에서의 생활이 더 나았던 것 같다고 조금 우겨보았다. 그렇지만 엄마의 기억 속에서 난, 가족 없이 뉴욕에서 홀로 생존하느라 힘들었고, 공동 연구하는 실험실과의 의견 차이로 논문 발행이 늦어지면서 무척이나 애태웠으며, 무섭게 오르는 렌트비 덕분에 1-2년마다 이사하느라 계속 이방인처럼 유목민처럼 몸 둘 곳, 마음 둘 곳 없이 지냈다고 하셨다. 엄마는, 시간이 더 지나면 지금 서울에서의 힘들다고 느끼는 생활도 좋은 것으로 기억될 거라고 하셨다.
상황이 어려워서 힘들다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상황 외에 다른 요소가 더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내 삶과 일상들이 무엇으로 쌓여왔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이룬 것', '내가 살고 일하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정도인 것 같았다. 비율로 따지자면 아마도 75 : 10 : 15 이쯤이지 싶다. 이전에는 성취감, 그러니까 내가 이룬 것, 이루려고 노력하는 태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그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실제로는, 내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해야 소속감을 느끼는가,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과 어느 정도와 방식의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가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비율을 다시 만들어 보자면 40 : 35 : 25 정도?
비슷한 시기에 뉴욕으로 온 동료이자 친구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을 때, 그렇게 신났던 시간들이 재미없는 시간으로 바뀌고, 원래도 혼자 숙고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괜히 서럽고 외로운 사람처럼 여겨져서, 가족들과 오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었더랬다. 늦어지는 논문 발행 때문에 시간만 가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음에도, 그것보다 더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은, 시간과 마음을 공유했던 친구들과 헤어지던 때였었던 것 같다. 예전에 누군가가 내게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물어오면, 성취감을 느낄 때라고 대답했었다. 그렇지만 같은 질문을 지금 다시 물어온다면, 이제는 성취감, 소속감과 연대감, 이 세 가지라고 말할 것 같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는 요즘 같은 시간에 찾아온 반가운 깨달음이다. 성취감이 낮아도 충분한 소속감과 연대감이 있으면 난 행복할 수 있구나 새삼 깨닫는다. 유연하게 전체를 100%로 만들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행복의 100%.
그렇다면 충분한 소속감과 연대감은 어떻게 얻을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겠다.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부모님이나 배우자, 자녀와 같은, 가족의 형태로 함께 산다거나, 퇴직과 이직 사이의 기간 동안 쉼의 시간 없이 늘 재직 중인 상태를 유지한다거나 하는 것도 답이 아닌 것 같다. 직장의 위치를 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나와 맞지 않거나, 회사의 방향이나 문화가 나와 맞지 않아서 쉽게 번아웃되고 있다면, 충분히 쉬면서 마음과 생각을 보듬고 다듬어야 될 수도 있다.
이직할 때마다 회사 근처로 이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든 출퇴근하기 어렵지 않은 곳을 찾아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면 위치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래 살고 싶은 동네의 문화센터나 스포츠센터, 공립도서관에서 하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곳이면 좋겠다. 실제로 찾기 어려울지 모르나, 어쩌면 실제로 존재할지 않을 수 있으나, 지금은 이것저것 생각하는 브레인스토밍 중이니, 아무렴 어떻겠는가.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나, 운동, 모임 같은 것을 찾으면 좋겠다. 우정이나 신앙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이익집단은 공익보다 사익으로 가기 쉬우니, 가급적 이익집단은 아니면 좋겠지만, 회사도 이익집단이니, 이익집단이 아니면 좋겠다는 꿈은 깨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사익이 공익이 되도록, 공익이 사익이 되도록 노력해볼 수는 있겠다.
여행객마냥 내 마음이 이리저리 떠다니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성취감, 소속감, 연대감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는 새로운 환경과 회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래본다. 새롭게 맞닥드리는 상황과 낯선 사람들과 관계 안에서의 긴장감에 겁먹지 말고, 시간이 일하도록 내버려 두자. 긴장감은 곧 익숙해질 테고, 어렵고 힘든 일도 쉽고 조금은 가벼워질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