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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jeong Kang Oct 25. 2022

People in New York

Where I once belonged (I)

(The Larva Island, 2020)


서울 생활에 잘 적응했다 싶다가도 뉴욕이 미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이럴 때 응급처방은 넷플릭스다. 텔레비전 리모컨의 넷플릭스 버튼을 누르면, 애니메이션 '라바 아일랜드'에 출연 중인 사람, 단발머리 '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혼자 즐거워하는 내 프로필이 뜬다. 얼른 누르고는 뉴욕에 대한 그리움 달래기를 시작한다.


넷플릭스의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뉴욕 배경인 곳이 꽤 많다. 그 반가운 마음으로, 이 거리는 무슨 애비뉴 몇 번 스트릿이네, 저 지하철역은 저 건물 옆이니 무슨 색깔 라인 몇 번 지하철 지나갈 거다, 그러고 있는 것이다. 저기 록스 앤 크림치즈 베이글이 맛있었지, 저기 플랫화이트가 그렇게 맛있었더랬지, 그러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바뀌어 링컨센터라도 보이면, 혼자 이 기억 저 기억 마구 뒤져서 꺼내본다. 서로의 모국어를 잘 모르는데도, 그녀가 일본말로 1-2분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한국말로 1-2분 이야기하다, 언어가 달라도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치가 생겼음을 깨닫고는 놀란 눈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씨익 웃곤 했던, 일본에서 온 실험실 동료이자 친구였던 아야가 있다. 어느 겨울, 연말은 연말다워야 한다며 평소에 잘하지 않던 화장이며, 우리가 갖고 있던 원피스 중에 가장 우아한 것을 골라 입고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보러 간다. 1부와 2부를 가르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테지만 한 해를 잘 살아낸 우리를 위해, 아래층의 바에서 샴페인 한잔하며 한국과 일본에 있는 가족 얘기도 잠시 하면서 올해도 우리 정말 수고한 것 같다며,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덕담을 나눈다. 그 바의 옆으로 주욱 들어가면 나오는 화장실 앞의 수많은 오페라 가수들 사진이 담긴 여러 액자들이 보이고, 그 속에 플라시도 도밍고가 액자마다 노래하고 있다. 그의 특집 코너인가 보다 생각하다, 2부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나와 그녀는 바삐 공연장 안으로 들어간다.


어느 여름, 한국에서 놀러 온 오랜 친구 연수와 링컨센터 광장 분수대에서 발레 시작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빠르게 녹기 시작한 라벤더 아이스크림에 정신을 쏟느라, 맥락 없는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러다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잠시 들고 있으라며 자기 폰을 꺼내고는, 나처럼 사진 안 찍는 사람은 자기가 찍어줘야 한다며, 내 사진을 급히 몇 장 찍고는 자기 마음에 드는 것 한 두 장 보낸다. 이 때는 프로필 사진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녀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않았다가는, 사진 찍어야 한다며 잠시 뉴욕 여행 온 사람마냥 온 뉴욕을 다니며 나의 귀찮음을 얼르고 달래는 그녀와, 그녀의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써 나의 부자연스러움을 내가 맞닥드려야 하는, 우스꽝스럽다 싶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표정을 바꾸며, 나름 SNS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은둔자가 아니다, 네가 한국에 돌아가도 난 잘 지낼 테니 뭔 걱정이냐며 그녀를 부지런히 달랜다.


그러다 브루클린 브릿지라도 보이면, 이제 난 자전거 위에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를 '수영'이라고 부르는, 스페인에서 온 실험실 친구 엘리사가 있고, 우리는 맨해튼 이스트 리버를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신호등 없이 달리고 있다. 자전거를 마구 달려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 브루클린 브릿지 아래 공원, 그 푸르른 잔디밭과 너무나도 어울리는 파란 하늘을 보며, 스타벅스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다. 돌아갈 때는 다시 브루클린 브릿지를 탈지, 이번엔 맨해튼 브릿지를 타고 건널지 아웅다웅하다, 결국 길눈 어둔 나는 먼저 달리기 시작한 엘리사를 속도를 따라잡느라, 브루클린 브릿지를 탔는지 맨해튼 브릿지를 탔는지 기억도 못한 채, 한참을 달려 집 앞 과일가게에 도착한다. 자전거를 나에게 맡기고 가게로 들어간 엘리사는 후다닥 바나나 한 송이를 사서 반으로 대충 나누고는, 칼륨이 많으니 이것 꼭 먹고 자야 다리가 당기지 않는다며, 그리고 스트레칭도 잊지 말라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자기 자전거를 건네받고는 휘리릭 자기 집으로 가버린다. 마무리까지 깔끔한 엘리사와의 어떤 주말이다.


카네기 홀이라면 생각나는 사람은 같은 덴마크에서 온 실험실 친구였던 제이콥이다. 자기 삼촌이 좋아하던 재즈 뮤지션 키스 자렛이 카네기 홀에서 공연한다며 빨리 예매해야 한단다. 어느 자리가 좋겠냐고 랩탑을 들고 와서는 한참 실험 중인 나에게 랩탑 스크린을 들이민다. 그래 놓고 이것저것 고민하는 나에게 그런다. 자기도 결정 장애자이니 천천히 해도 된다고. 이런 앞뒤 안 맞는 부조화 덕분에 친해진 이 친구 덕분에, 키스 자렛 트리오 공연을 라이브로 즐기는 중이다. 처음엔 낯설었던, 연주 중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키스 자렛의 허밍이, 10여 년이 지나고 더 이상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없게 된 지금은... 나의 기분을 뭐라 말할 수 없는데, 그래도 그 애매함을 표현하고 싶을 때, 어떤 반응이 적절할 것 같고, 어떤 반응은 적절하지 않을 거라고, 이 것을 구별해내느라 내 두뇌와 두개골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할 때, 그냥 해, 뭘 망설여, 그냥 내뱉어. 이런 게 떠오른다. 이럴 때 허밍이랄지, 흥얼거림이랄지, 이런 것들을 해보곤 한다.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은, 좀 더 편해진 지금의 나를 본다.


뉴욕에 대해 생각할 때, 꽤 긴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다. 그렇지만 뉴욕이라는 공간과 그때 함께한 친구들과의 추억들이 다는 아닐 게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는데, 마음속 구석구석에 던져놓은 것만 같고, 뒤죽박죽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채 섞여 있는 것 같다. 그 생각 하나하나 들춰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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