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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jeong Kang Feb 18. 2018

친절한 날에

Everyone deserves the chance to fly

(Antonio Mancini, Resting, c. 1887.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linois)


머리카락과 손톱은 부지런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뜨겁게 폈던 곱슬머리 

정수리부터 일어난다. 

바람 부는 눅눅해지는 어느 날

빗에 엉켜있는 수북한 머리카락


까맣게 바른 새끼손톱

뿌리부터 올라온다.

언제 발랐더라 기억나지 않는 날

손톱 끝 언저리 깨진 그 곳.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 머리카락은 자란다, 

내 손톱은 자란다. 

뜬금없다, 성실한 것이…


평생 자르지 않은 길고 긴 

곱실곱실 탐스럽지 않았던 여자의 부스스한 머리 

그 땋은 머리를 묶기라도 했다. 

절개가 있다.


평생 자르지 않은 길고 긴 

나선으로 빙글빙글 자라던 남자의 기괴한 손톱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한다 했다. 

배짱이 좋다.


뜬금없다, 성실한 것이…


아침마다 거울을 본다. 

눈썹을 대칭으로 그린다.

나는 나에게 이토록 친절하다.

나는 나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뜬금없다. 친절한 것이… 


난 나를 예뻐해주지 않는다.

난 나를 내버려둔다.


맑은 날 

헤어 샾에 앉아 거울을 바라본다.

네일 샾에 앉아 매니큐어 색을 고른다. 


뜬금없다. 친절한 것이…


좀 더 맑은 날, 좀 더 밝은 날

내 방 거울을 보다, 가지런히 빗질한다.

서랍 안 쪽을 더듬다, 라벤더 색 매니큐어를 꺼낸다.


좀 더 친절한 날,

나의 하얀 손으로 내게 머리핀을 꽂는다.

나의 하얀 손등 끝으로 라벤더 향이 베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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