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지 Apr 03. 2019

자주 문장에서 떠올리는, 꼭 닮은 이름들이 있다.

너와 나의 책을 합치는 일, 그게 나에겐 결혼과 가까운 의미인지 모른다.

경유지인 프랑크푸르트까지 인천에선 꼬박 11시간이 걸렸다.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아 나는 연속으로 영화 4편을 보고 (그 중 마지막은 무려 3시간짜리 파드마바티 였다. Long live!) 공항 서점에서 산 정세랑 작가의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으며 밤을 꼬박 새웠다. 피로한 눈을 감는다고 1시간 쯤 눈을 붙인게 전부였으니 말 다했지.


포르투의 잔디 위에서도, 일정을 마치고 난 건조한 침대 위에서도 내내 읽었다. 돌아오는 11시간에는 마저 읽고 싶었지만, 기내식을 먹으려 겨우 눈을 떴을만큼 정신없이 잠이 든채로 날아와서, 그럴 수가 없었다.


책 읽는 사람이 많던 포르투의 잔디. 벌써 그립다.


어제는 분명 서점에서 책을 다 읽고 나올 요량이었는데 어느새 계산하는 나를 발견했고, 좋아하는 안전가옥의 '냉면'이 출간된 것을 보았고 (절대 한국 와서 제일 먼저 먹고 싶던게 냉면이라 고른게 아니다.) 이름을 기억하는 작가 중 한명인 김유리 작가가 목록에 있어서 집어들었다. 지금은 그 냉면에 수록된 단편 A,B,C,A,A,A 를 읽고 있다. 읽을거리가 한가득인게 너무 좋다. 바빠서 욕심만큼 읽어내지 못하는게 늘 아쉬울 뿐. 밀리의 서재를 잠시 써 봤는데 나는 역시 종이책이 좋은 것 같아.


종이책을 생각하니 김의경 소설 쇼룸의 장면이 떠올랐다. 결혼한 희영과 태환의 집에 처음 방문한 친구가 "신혼집이 아니라 헌책방 같네. 소설가 부부라 낭만적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


만약 내가 결혼이란걸 하게 된다면 비슷한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의 책과 나의 책을 합치는 일. 서로가 아끼는 책들이 한 공간에 모아지는게, 어쩌면 나에겐 그런 의미에 가까운 일들이 되지 않을까, 라고 말이야.


아무리 무겁고 부피가 커져도, 책장을 드러내고 대청소를 끝내도 책만큼은 매번 한 권도 덜어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게 된다. 어쩌면 도서관 같은 걸 하나 인수하는게 더 경제적일지도 몰라.





자주 문장에서 떠올리는 꼭 닮은 인물들이 있다. 웨딩드레스44에선 같은 위치에 타투를 새긴 사람이, 효진에선 새벽의 이름을 가진 친구가. 박준 작가의 산문집에선 아마도 이 글을 보지 않을 누군가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그가 사는 동네일테지만.


그 중 둘은 신기하게도 같은 책의 문장에서 떠올렸다. 비교적 최근 결혼(이거나 그와 비슷한 형태의 일)을 끝낸 사람들인 것도 신기했고, 그 책은 (이러나 저러나) 많은 부분 결혼에 관련된 책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세상엔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걸까?


어쨌든 좋아하는 책과 좋아하는 문장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주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내게 너무나 행복하고 멋진 일인 것 같다. 가끔은 이 인과에서 순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단 생각도 한다.


좋은 책이어서 닮은 사람들이 생각나는지, 좋은 사람들이어서 닮은 문장을 자꾸만 발견하게 되는건지



280319. 03:00.

잠이 안와서.


매거진의 이전글 <냉면>을 읽고 남극에 가보고 싶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