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채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고백하자면, 사실 내내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스치듯 책장을 넘기는 와중에도 흘러가지 못하고 마음에 들어와 문장이 담겼다.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니라 편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볍고 흔한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몰라. 그렇게 가벼운 척 하면서 정말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던 진심을 숨겨둔 걸지도 모른다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 같아서 그랬나. 그냥 왠지, 이런 문장은 마음에 적어 둔 누군가가 있지 않다면 쉬이 나오지 않는 글자들 같아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희완은 많은 것이 결핍된 채로 살아 온 아이다. 사실 그 ‘많은 것’은 람우 하나로 전부 채워질 수 있었는데, 운명이란게 늘 그렇듯이 그 행복은 잠시 머물렀다가, 곧 없어졌다.
람우 하나가 사라진 것이었지만 희완에겐 ‘전부’가 사라진 삶이었다. 유일하게 의지하고 마음을 떼어주던 사람.
물론 희완만큼 내가 결핍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일면 비슷한 감정이 차올랐다.
나는 때로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지만 그럼에도 친구들, 가족들에게 나의 힘듦을 잘 털어놓지 않는 사람이라서.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속으로 삼키는 게 더 편한 사람이 되었다. 괜히 나의 감정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힘들고 지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나만 잘 갈무리하면 되는 것들이니까.
그러면서 웃었다. 표현하면 피해를 끼치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간혹 마음을 다 내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한없이 의지하고 싶어졌다.
그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한번 비집고 새어나온 틈은 겉잡을 수 없이 흘러넘쳤다. 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그에게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랬다. 다른 이들에겐 그렇게 어려웠던게 그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쉬워졌다. 더 알고 싶고 더 다가가고 싶을 수록 더 많이 이해받고 싶었다.
고민과 속마음을 털어놓고, 숨기고 싶던 우울함이나 외로움까지도 전부 꺼내놓았다. 밤늦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어느새 고민하던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있었다. 나는 깊이 위로받았고 안정감을 느꼈다. 자주 웃고 행복해했다.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인데도, 그렇게 자꾸만 마음 깊이 의지해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연이라는게 만나면 헤어지고 또 돌고 도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일했던 사람이 떠나갈 때면 마음이 무너져 엉망이 되었다. 알기 전보다 오히려 더 공허해지고, 의미를 잃었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의 한 부분이 날카롭게 도려내져 멀어져가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겐 그 누군가가 그렇게 커다란 사람이어서, 나를 마음 놓고 보여줄 수 있던 유일한 사람이어서.
유일함이라는 건 그렇게 나를 채우고, 또 텅 비어버리게 하는 단어였다.
비슷한 나이. 다른 듯 비슷한 감정. 희완의 문장이 너무나 나 같았다.
이십대,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혼란스러운 그 미숙한 시간에서, 한 사람의 상실이라는 건 그렇다. 빽빽한 책장 속 책이 한 권 떨어져 나온 것 마냥 눈에 크게 들어오는 구멍이라는 걸.
"불러. 내 이름."
아이와 어른의 중간점에서 람우를 잃어버린 희완은, 자라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죽음을 일주일 앞둔 날이 되어서야 겨우 람우를 다시 만난다.
저승사자라면서, 이름을 두 번만 더 부르면 편히 죽게 해주겠다고 하더니 일단 밥이나 챙겨 먹으라고 말한다. 텅 빈 냉장고를 보며 타박하는 람우를 보며 희완은 내내 헷갈려한다. 죽으라는 거야, 살라는 거야?
희완이 스스로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다섯번째 페이지를 읽을 때 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렇게 죽음을 결심한 와중에도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람우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쉬운 일이다. 단지 이름을 부르는 것. 두 번. 그게 뭐라고. 그러나 나는 발을 재촉해 너를 지나쳐 빠르게 걸었다. 적어도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그건 너무, 너무나 쉬운 일이니까."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유일했던 람우가 없었고, 그래서 삶에 그 빈자리가 너무나 생생했고, 그래서 포기했고. 하지만 죽음을 앞두자 람우가 다시 나타났고, 그래서 희완은 다시 살고 싶어졌다. 아니, 살고 싶어졌다기 보다 그냥 조금 더 오래, 이 시간을, 람우와 함께인 지금을 더 머물고 싶었을 뿐일텐데.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 나는 다른 이유가 좀 더 마음에 남았다. 이름 두 번, 그건 너무나 쉬우니까.
그냥 그렇게 쉽고 간단한 형태로 마지막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나의 마지막이든 너의 마지막이든 간에, 이왕 이렇게 두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면 좀 더 천천히, 더 외롭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를 기억할 수 있는 끝을 마무리 짓겠다고, 그래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내가 망쳤다. 다 나 때문이다. 내가 욕심냈기 때문에, 내가 멍청했기 때문에, 내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희완은 내내 생각하고 자책한다. 내가 망쳤고, 내 탓이라고. 내가 욕심내서 그런거야.
나도 그랬다. 사실 지금도 조금은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모른다. 이러나 저러나 모든 게 아팠던 그 때의 나는 매일같이 생각했다. 내가 욕심내서 그런거야. 이제 다른 건 아무 것도 욕심내지 않을테니 그냥 이대로만 내게서 빼앗아가지 말아달라고.
그런데 람우는 말한다. 네 탓이 아니야. 그러니 그렇게 벌 받듯 널 채찍질 하며 살 필요 없어. 재밌게 살아. 기다림은 곧 설렘이라잖아. 분명히 재밌을 거야. 울지 마.
기다림은 설렘이라잖아. 기다림. 그 불확실하고 불안한 삶 속에서도 주저앉지 말라고, 설레고 재미있을 거라고. 그러니 울지 말라고 람우는 말한다. 억지로 웃을 필요는 없지만,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영화 <리틀포레스트> 에서도 주인공 혜원이 그런 말을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다림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고 나와서, 람우의 말을 페이지에서 넘겨 읽으며, 내내 입 안으로 ‘기다림’ 이라는 단어를 속삭였다. 기다림. 기다림. 기다림.
나에게 필요한 건 기다림이야. 기다림은 곧 설렘이야. 기다리면서 즐겁게 살자. 와야할 것은 언젠가 돌고 돌아 반드시 마주할테니 조급해 말고 설레어하자. 즐겁게 기다리는 시간을 나로 채우며 기다려보자. 좀 더 멋지고 행복한 웃음으로 마중나갈 수 있도록. 기다리자. 기다려보자. 하고.
람우와 희완이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지,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시 잘 만났을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재밌게 살다가 예쁘게 채워진 기다림으로 마중나가 인사했을까? 내가 알 수 있는 건 어떤 모습이던 분명 참 예쁘고 다정하게 둘의 삶이 각자의 색으로 채워졌을 거라는 거.
그래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도, 아직 꺼내놓을 수 없는 나의 문장도 많지만, 그건 아직 이대로 여기서 내 마음 안에 적어두기로 했다. 언젠가 다정함으로 내 페이지가 많이 채워진다면 그 많은 것들을 다시 꺼내둘 수도 있겠지. 아직은 여기에.
저승사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어딘가 흘러가며 본 SNS에서는, 키우던 강아지가 마중을 나오기도 했고, 전생에 남편이었던 사람이 저승사자로 찾아온 꿈을 꾸었다고도 한 것 같다. 나라면 누굴까 하고 괜히 생각해본다. 어쩌면 당신일 수도 있겠다. 하고.
별 것 없는 삶이 이렇게 사랑으로 엉망진창이다. 근데 조금은 재밌고 그래서 조금은 즐거운 그 엉망진창.
마음에 담은 책 속 많은 문장들 중에 세 번째로 좋았던 영현의 문장으로 마무리 해야지.
"그 모습이 무척 다정해 보여서 말해 주고 싶었다. 너, 사랑받고 있구나."
사랑받고 있음을 느껴지게 해 주는, 그런 당신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240318. 4:16.
황금가지 서평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