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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Apr 08. 2019

너 이전의 나, 다시 불완전한 나를 사랑해 보려고 해.

영화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그 해 9월.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전국적으로 이례적인  지진이 있었다.

무섭다는 핑계를 대고 친구와 자취방을 나와 밤늦게 맥주가게로 향하며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여기는 지진 크게 느껴졌는데 거기는 괜찮아요? 걱정돼서 전화했어요."

" 괜찮아. 근데 수지야, 아빠가 암이래. 자세한 결과는 다음주에 나온다는데 얘기해줘야   같아서."


수화기 너머 평온한 엄마의 목소리가, 지진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소식을 전해왔다. 너무 놀랐지만  으레 장녀들이 그렇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괜찮을거에요. 너무 걱정하지마.

내가 불안해하면 안 될  같아서였다. 그렇게 애써 웃어 넘겼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아닐거라 생각했던 아빠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단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괜찮을거야. 주문처럼 되뇌인 것과는 상관없이 소식은 자꾸만 나빠졌다. 정밀검사 결과가 중기가 아니라 말기라고 했다. 위암 말기.


말기래. 초기도 중기도 아니고 말기. 위를 전부 잘라내야 한대.


명절이 지나고 수술이 있던 , 나는 수업 때문에 여전히 학교에 있었고, 종일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오전 9시에 시작한 수술은 저녁 6시가  되어가도록 끝났다는 소식이 없었다. 그날 저녁 늦게서야  끝났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나는 전화도 걸지 못했다. 애써 참은 불안감을 엄마가 모두 눈치 채 버릴  같아서였다.


 거리에, 일주일 가득한 수업에, 집으로 가지도 못한  일주일을 학교에서 버텼다. 매일같이 울었다.

수술 끝에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를 전화로 들으며 울고,  학기 내내 국가근로 중이라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출근 안한 사무실에서 혼자 울었다.

수업이 끝나고 자취방에 돌아가는 길에도 고개를 숙이고 계속 울었다. 길을 걷다 마주친 친구가 ‘ 무슨일 있어?’ 하고 말을 건넸을  와르르 삼키던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나는 괜찮다고 별거 아니라고 분명 웃고 있었는데, 친구가 보는 나의 얼굴은 오열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수업도 과제도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이 모든게 내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만에 병원에 찾아가 수척하게 웃고있는 아빠 얼굴을 보았을 , 장난치며 우리  안아보자 하시기에, '이제 살만한가 보네.' 하고 장난처럼 웃었지만, 우리에게 이미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는  알았다.

아쉬움과 후회와 자책감이  안에서, 어쩌면 우리 가족 모두의 마음에서, 떨어져 나간 아빠의 암덩어리 만큼 꾹꾹 들어차 앉았다.


수술실에서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장시간 수술이 미뤄졌고, 결국 개복을 했다는, 수술대 저편에 밀어져 의사들이 심각하게 상의하는 말소리를 들으며 ‘내가 여기서 죽을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 나는 역시  잘못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암덩어리는  탓에 생겨난 것이다.





  여름에 우리는 처음으로 다같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가족이라도 공유하는 부분은 한정적이고 달랐기 때문일까? 처음으로 2주넘게 아빠와 감정적으로 붙어지낸 결과는  날카로웠다. 


아빠는  이렇게 고집이 세고, 자기 생각만 하지. 비교하고 실망하고 서운해했다. 분명 함께 즐겁자고 온 여행이었는데 날이 갈 수록 은연중에 쌓인 감정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마지막 날엔 서로 기분이 상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가 토해내듯 울음과 함께 꺼낸 말은 “아빠 앞으로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였다.


어쩌면 그동안 아빠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잘못이기도 한데 뭐가 그렇게 밉고 싫고 짜증이 났을까. 평생 그런 생각을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을 떠나있던  짧은 2주의 시간동안, 나는 잠시 우리 아빠가 ‘이런 사람이라서  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나, 내가 상대에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면, 상대도 나에게 그만큼의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 마련이다. 내가 밉고 서운했던 만큼, 아빠도 나에게 서운하고 미웠을 것이다. 유난히 끼니마다 과식을 하고, 우리보다 다른 일행에게  친절을 베풀고, 숙소에만 들어가면 그대로 곯아떨어지던 아빠는, 어쩌면 피할수 없는  공간과 나의 미움에서 회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후회와 슬픔과 자책은 한데 응어리져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아빠를 미워했던 것도, 지난 여행에서 미워하고 화내고 싸우고 울었던 것도. 어쩌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게 사무치게 후회되고 슬프고 아팠다. 언제나 곁에 있을  같았던 사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생각보다 내게  두려움을 주었다.



그 즈음 내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감정이었지만.


 탓이라는 자책감이 들자, 겉잡을  없이 포기가 빨라졌다. 어쩌면 내가  곁에 다른 한사람을  욕심내서,  자리만큼 하늘이 다른 것들을 가져가려는 걸지도 몰라. 다른 아무 것도  이상 욕심내지 않을테니, 소중한 사람들만 곁에 있게  달라고. 매일매일 빌었다.


시작도 못한 작은 감정은 그날로 정리했다. 따뜻하고  알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아무 것도 욕심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음 한조각을 욕심내는 순간 가차없이 운명이란 몹쓸 것이 다른 소중한 것을 가져갈  같았다.


나는 가벼운 사람들과는 매일 날이 새도록 술을 마시고 방에 들어와 울다 잠들었고, 어른 같아 의지하던 동기에게는 새벽내내 눈물과 마음을 털어놓았다. 가만히 들어주는게 전부였지만, 나에겐  어떤 대화와 시간보다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었다. 조용히 아픔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다시 잠들 용기를 가지게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갈수록  친구에게 의지하고 집착했다. 마음은 불안정하고, 버티질 못하겠고. 속내를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었던 나는 유일한  숨구멍에 매달렸다.

어느 순간  사실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했다. 솔직히 이야기도 했다. 나에게 너는 놓치고 싶지 않은 좋은 친구인데 나의 힘듦이 나를 너무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래서 너에게 나도 모르게 집착하게 되는  같다. 상대의 힘든 이야기를 매일같이 들어주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어느 순간엔 감정 배출구처럼 느껴질 거다. 그래서 우리가 멀어질까봐 겁이 .

친구는 너를 이해하니 괜찮다 했지만 나는 거리를 두려 노력했다. 힘들다 하지도 않고 불러내 위로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너무 힘든 날엔  나도 모르게 울음을 가득 털어놓고 칭얼거렸다. 닦달하고, 불안해했다.  즈음의 나는 하루도 안정적인 날이 없었다. 몇 초 단위로 웃고 울고 짜증을 냈다. 웃었다가 화냈다가, 자책하다가 술을 마시고 토하고 감정을 게워냈다.


결국 유일하게 의지했던  친구는 어느 순간 연락을 피했다. 하루가 지나서 답이 오고, 얼굴을 보는 일도 한 달이 넘도록 한 번 없었다. 나는 결국 내가  망쳐버렸구나, 깨달았다.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다시 먼저 연락주기 전까지 이제는 연락하지 않을게 하고 그렇게 인연이 끊겼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게  탓일 거라고  때도 지금도 느끼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을 전부 내준 사람과 영영 다시 보지 않을 사이가 되어버린다는  내게 큰 상처로 남았다.

트라우마처럼 나는,  이상 내가 남들에게 나의 진짜를 보여주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의도했든 아니든, 나의 불안정한 내면을 전부 보여주는 순간,  사람은 나의 예민함을 견디지 못하고 지쳐 떠나버릴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건 결국 주변사람  아니라  자신까지도 힘들게 하는 일이라는  알았다.


남들에게 보인  없던  고독을 나는 이전보다  심하게 꽁꽁 감췄다. 영원히  고독을 이해할 사람은 없을 거라 그런 생각을 했다.  


 이후로 나는 친구관계나 다른 모든 관계에서, 내가 껍데기로만 겉돌고 있다고 종종 느꼈다. 어느 선에 이르면 도무지 마음과 감정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제동장치가  걸린 것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어색한 웃음만 삼켜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추석, 우연히 TV에서 < 비포 > 다시 보았다.  1 만이었다.  





 전에는 새드엔딩이라 느껴졌던 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자꾸 남았다. 그래서  이야기는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인가? 정말 슬픈 결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제목이 혀끝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이전의 . 1 전에는 그저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건 ‘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어쩌면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루이자와 윌은 서로로 인해 서로가  자체로 아름답고 사랑받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취향이 조금 유별나도,  어떤 부분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래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사랑스럽고 멋지다고 말이다.

윌이 안락사를 선택한 것은, 그가 그제서야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고. 지금을 사랑할  있게 되어서. 


루이자를 만나기 전의 윌이, 돌아갈  없는 이전의 삶에 좌절하고 낙담해 안락사를 선택했다면, 이후의 윌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지금의 행복과 사랑을 온전히 가지고 아름다운 기억 안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 안락사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윌에게 있어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하고 행복하게 마무리   있다는 것은  없이 중요하고 소중한 기회였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 자신이 망가지고  이상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어떤 순간이 온다면  어떤 집착 끝에 맞는 죽음은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비참할지도 모르니까.






일 년이 지나 최근에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나는 깨달았다. 나만큼  친구도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 또 다시 상처를 받을까봐 서로가  그만큼의 선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일 년 전의 무언가는 우리 모두에게  상처였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 나는 생각한다. 아직은 극복한  아니라 그저 익숙해진 것일 뿐이지만, 그래서 아직 무섭고 나를 꽁꽁 닫아버리고 있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이다.


껍데기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껍데기가 아니라 새 살을 돋우기 위해 덮고 있는 딱쟁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필요하니까 조급해 말자. 나는 나를 다시 사랑하기 위해 잠시 다른 복잡한 것들로부터  몸을 숨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책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 탓이야. 엄마가 진작 건강검진에 아빠를 데려갔으면 초기에 발견했을텐데.’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탓이라 자책했지만, 엄마는 엄마 탓이라 생각했다. 동생은 동생 탓이라 여겼을테고, 아빠는  당신 탓이라 여겼을 거다. 사랑해서다. 나를 사랑한만큼 가족을 사랑하니까.


사랑은 결국 사랑으로 메꿔진다. 나는 나만큼 가족을 사랑해서 나를  사랑하려 했고, 나를 사랑할 공간이 없어 다른 이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 어긋나는 사랑은 상처로 남는다.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른 이에게도 사랑을   있고, 나도  사랑으로 메꿔질  있다는  알았다.  


아직 나는 두렵고 조금 어렵다. 하지만 이전보다 불안하지는 않다. 크게 넘어졌으니 멍들고 오래 욱신거리는게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공허하지만 기다리고 싶어졌다. 기쁜 나도, 슬프고 우울한 나도, 전부를 사랑하기로 했다. 내가 나를 불완전한 그대로 사랑하니까, 다른 누구도 불완전한 나를 사랑할  있다. 그리고 설령 그런 누구가 없더라도, 나는 나와,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그런 세상을 모두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로 했다.  다시 소중한 순간 순간을 놓치고 후회하는 일은 겪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다시 지금. 내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를 하나 꼽자면 3년 전 9월, 그 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미 비포 유>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 9월이 떠오른다. 삶의 기준이 크게 변화한  달을 기점으로,  이전에 한 번,  이후에  한 번. 달라진 마음으로 2번을  유일한 영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루이자의 활짝 웃는 미소가 너무나 예뻤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튼 어느 따뜻한 봄 날에 이불 속에서 다시 꺼내어봐야겠다. 나는 지금의 나를,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




071117. 22:21

08041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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