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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Apr 10. 2019

나에겐 최선이었던 삶이, 그대에겐 차선이었음을 알았을때

영화 <45년 후>

넌 내 인생의 여자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이란 영화에서 마이클이 줄리안에게 말하는 대사다.

결혼을 앞둔 마이클과, 오랜 친구인 그를 좋아해서 식을 망칠 계획으로 찾아온 줄리안이, 함께 배 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처음엔 이 씬의 문장이 참 좋았다가, 나중엔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그 중간의 어디 즈음에 오래 남아있다. 내가 줄리안의 입장이면 고맙고 따뜻할텐데 또 반대의 입장이라면 무너지고 아플 것 같아서 말이다.

사랑하는 이의 '인생의 사람'이 나였으면 하는 건 모든 사랑의  종착이니까.


45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둔 케이트도, 자신이 제프의 인생의 사람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 장면을 보고 인생에 남을 누군가가 꼭 반려자는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그게 반려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배신의 의미, 다른 마음을 품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어서 그렇게 서로의 추억 어딘가에 오래 남을 수도 있겠다고. 


조금 이기적인 마음을 섞자면 그래, 어찌되었든 인생의 사람. 곁에 있지 못할 거라면 네 인생의 기억에 오래 각인돼 남을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애가 있었어.' 하고 추억 속에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나도 언젠가 꼭 그런 같은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제프의 첫사랑 카티야의 시신이 알프스에서 발견되었다는 편지가 도착하며 시작된다.


제프에게도 카티야가 그랬을까. 45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죄책감과 얕은 애정, 젊고 자유로웠던 날에 대한 추억과 씁쓸함. 갈망, 회한 같은 것들이 남아 모두 뒤섞여 버린 거라고.

그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이 제프에게 그녀를 더 '인생의 사람'으로 남게 만들고, 한밤중에 다락방에 올라가 카티야의 사진을 찾아내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곁에서 지켜보는 케이트에겐 배신감과 혼란함, 아픔, 애증으로 다가왔을테다.


온종일 첫사랑 얘기 뿐인 제프 앞에서, 케이트는 애써 덤덤해 하지만 점점 불안해진다.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



그래서, 이제와서, 함께 노년을 걸어가는 둘에게 감히 이 인생이 틀린 것이라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그저 원래 계획이 틀어져 버려서 어쩌다 우연히 그렇게 인연이 이어진 사고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프는 당신을 잡은 것이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어 라고 말하지만, 케이트는 결국 복잡한 표정으로 울어버리고 만다.

 
운명인 줄 알았던 사람과 사랑이, 함께한 인생과 삶이. 나를 선택한 그 모든 것이 그저 그의 '차선'처럼 느껴질때의 허망함이란.
어렵다. 인생은 정말 마지막까지도 정답이었는지 아닌지 모르는 걸까.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둘의 마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몇 십년을 살아내 겪어와도, 인생은 왜 여전히 어렵고, 아프고, 막막하기만 한 건지.




세상에 아주 많은 만남과 인연이 있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것이 영원한 함께함을 의미하진 않음을, 인생의 유일한 어떤 존재임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란 것을 나는 아주 잘 안다.


그럼에도 항상 터무니 없는 기대를 하고, 알면서도 모른 척 또 속으며 믿고 살아가는 존재가 결국 인간이라서, 조금 씁쓸하고 막막하고, 함께 슬퍼졌다.


신뢰와 불안. 결국은 나의 마음의 문제.


후반부의 영사기 씬은 정말 숨을 삼키며 봤다. 그 조용한 고요가 그렇게 충격적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둘의 대화와 작은 소리들 만으로 온전히 꽉 채우는 95분이 지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시선을 옮기지 못했는지도.




"내가 보기에 늙어가면서 가장 나쁜건 그 목적의식을 잃는단거야."


"넬슨 제독은 살해됐죠?"
"그래도 우승했죠. 그만하면 축하받을만한 일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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