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되어도 그리운 나의 선생님 1

by subitopiano








스승의 날을 맞이해 나의 선생님 Emile Naoumoff와 포레에 대해서 긴 글을 쓰다가 괜히 쑥스러워서 다 지워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날리고 싶지 않은 단 하나의 문장이 있었는데 그것은 '포레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 해도 선생님의 포레는 포레 자신이 연주하는 포레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다.'라는 문장이었다.


선생님은 불가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여덟 살에 프랑스로 가서 공부를 시작했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다 30대 초반에 미국에 정착하셨다. 국적이 셋이나 되는 셈이다. 선생님의 곡에 대해서 박사 논문을 쓰다가 위와 같은 이유로 궁금증이 있어 공식 인터뷰 중에 '그렇다면 선생님의 고향은 어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쭈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가브리엘 포레'라고 대답하셨다.



KakaoTalk_20220516_225413668_01.jpg 선생님에 얹혀 발매한 시디, 프랑스 파리에서 녹음 마치고 나온 날 선생님이 아이스크림 사주셨다.



미국을 떠나온 후에도 나는 선생님 생각을 안 한 적이 없다. 거의 매일 밥 먹듯이 선생님 생각을 한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어제/오늘 스승의 날이라고 가르치는 학생들,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문자를 받으니 더욱 선생님의 레슨실이 뚜렷해 진다. 나는 본격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보면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이제는 선생님이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헌신적이었을 수가 있을까. 그 에너지, 열정, 헌신, 그 무한한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나는 정말로 없는데도 그 사랑을 넙죽 다 받아먹고 제대로 되지도 못했다. 정말 철도 염치도 없다. 그리하여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더더욱 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KakaoTalk_20220516_225413668.jpg 미국 오하이호 협연 후, 선생님과 함께.


선생님과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를 쓰는 것은 마치 우리의 길고 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 일인 것 같아 자꾸 주저하게 된다. 무용담으로 차마 꺼내어 쓸 수 없는 이야기. 선생님을 만나 뵙지 못한 채 세상에 2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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