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여정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by 라벤더
그는 자기 존재의 내면 속에 삼라만상과 하나이자 불멸의 존재인
아트만(영혼)이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 깨달음, 그 지난한 여정


그는 고통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고뇌를 감내함
으로써, 그리고 고통과 굶주림과 갈증과 피로와 권태를 극복함으로써 자기 초탈의 길을 갔다. 그는 명상을 함으로써, 그리고 온갖 사념들로부
터 생기는 감각적인 사고를 마음으로부터 비움으
로써 자기 초탈의 길을 갔다.... 수천 번이나 그는 자기 자신의 자아를 떠났으며, 몇 시간이고 며칠
이고 비아(非我)의 경지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러한 길들은 비록 자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통하기는 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그런 길들이었다.... 또다시 자아가, 싯다르타가 되어 있었으며 또 다른 고통스러운 윤회의 업보를 느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사람들의 기대와 안락 속에서도 불안과 고독에 빠진다. 바라문이 전달하는 최고의 지혜를 탐구해도 영혼의 허기는 커져만 간다. 결국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친구 고빈다와 깨달음의 여정을 떠난다.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철저히 배제한 채 깨달음의 희열만을 추구하던 싯다르타는 바닷물을 마신 듯 계속된 갈증을 느낀다. 자아를 넘어서려는 지난한 수련의 끝은 여전히 자아로 돌아온 자신을 발견하는 일뿐. "세존께서 몸소 겪으셨던 그 비밀이 그 가르침 속에는 들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살아있는 부처의 설법을 듣고도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깨달음의 체험을 배운다는 것이 가능한 걸까. 고타마 싯다르타에게 자기 초탈의 수련법을 배워도 목마름은 여전하다. 끝없는 의심, 불안, 고뇌 속

에서 자신에게 또 다른 삶이 준비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스승의 곁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깨달음. '자기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곳까지 뚫고 들어간 사람만이 그렇게 진실하게 바라보고 그렇게 걷는 거야. 좋다, 나도 나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곳까지 뚫고 들어가 보도록 애써볼 터이다.' 결국 살아있는 부처에게 매혹된 고빈다를 남겨두고 싯다르타는 자신만의 깨달음의 여정을 떠난다.


# 나를 낯설게 본다는 것


철학을 공부하는 주된 이유는 나를 낯설게 보기 위함이다. 타인을 낯설게 보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나를 낯설게 보기란 싯다르타의 고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려운 과정이다. 싯다르타가 고뇌의 여정

을 통해 깨달은 것은 결국 자신을 낯설게 보기 위한 자기 인식이었다. 일상의 삶과 유리된 채 반쪽의 깨달음을 찾아 떠난 여정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

온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깨달음의 몫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낯설게 보는 것일 뿐. 깨달음을 가르쳐 줄 스승 따윈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싯다르타는 속세의 삶, 쾌락의 삶을 살았으나, 그런 삶에 완전히 빠져들어 동화된 것은 아니었다. 격렬한 사문 시절에 억눌렸던 관능이 다시금 눈을 뜨고 깨어났으며, 그는 부유함을 맛보았으며, 환락을 맛보았으며, 권력을 맛보았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색하기, 기다리기, 단식

하기로 세상 속에 첫 발을 내딛는 싯다르타. 모든 게 배워야 할 것이고 궁금한 것이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세상을 배워가는 싯다르타는 인간들의 희로애

락애오욕을 경험하게 된다.


속세의 삶 속에서 내면으로의 관심을 갖고 있던 초기와 달리 싯다르타는 점점 환락의 세계로 빠져

든다. 쾌락과 탐욕의 세계에서 자신마저 잃어버린 채 균형감을 잃은 것이다. 결국 도박으로 불안감을 해소하려 든다. 싯다르타는 꿈속에서 카밀라가 키우던 새의 죽음과 그것은 내던지는 자신을 본다. 내면에 소중하게 간직해 온 무엇인가 를 내던지는 상실감. 죽어있던 새는 세상 속에서 휩쓸려 살아

가며 잃어버렸던 자신의 또 다른 자아였다.


# 어둠에 대한 응시와 받아들임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의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 두
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편안한 환경을 버리고 깨달음의 구도여행을 떠나

고, 진정한 배움은 자신의 내면에 있음을 알고 세상 속으로 나왔으며, 결국 환락과 탐욕의 고통으로

죽음을 선택하려는 싯다르타가 미련해 보이기도

한다. 결국 내면을 찾아가는 여행을 돌아 돌아한 것만 같은 덧없음. 싯다르타는 관능의 쾌락, 허영심, 절망까지도 받아들이고 경험해야만 고통

의 의미를 이해하고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상상해 낸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고통의 절망도 필요한 것이었다.


흰 것을 알면서 검은 것을 유지하십시오. 세상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본보기가 되면, 영원한 덕에서 어긋나지 않고, 무극(無極 )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 중에서)


어두움이 없으면 밝음도 없다. 빛을 빛답게 하는 것은 어두움이 있기에 가능하다. 상처가 있기에 상처의 의미를 알고 이겨내는 희열 또한 알 수 있다. 쾌락이 있었기에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쾌락과 깨달음이라는 반대극이 결합함으로써 무극의 단일성에 이른 것이다. 어둠의 저편에서 빛만을 쫓아 금욕적 수행만으로 한평생을 바친 고빈다가 해탈의 길에 이르지 못한 까닭도 어둠에 대한 응시를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 절망 그리고 강물이 준 깨달음


세상이라는 광풍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잃어버린 싯다르타는 극심한 공허감으로 결국 죽음을 결심

한다. 강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시도하려는 순간, 무의식의 내면으로부터 "완성"을 뜻하는 성스러운 "옴"의 소리를 듣는다. 모든 바라문들이 기도를 시작하는 말이자 마치는 말인 "옴". 깊이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이 갑자기 눈을 뜨고 자신의 행위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 중에서)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리고 더러움을 씻어준다. 더러움에게 허물을 묻지 않고 말없이 그 더러움을 받아들인다. 자기를 비우고 모든 것을 섬기며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 모든 것을 이롭게 할 뿐 자신의 영광을 찾지 않는 무욕의 상태. 안온함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는 어머니 같은 품. 화복, 선악, 미추의 이분법적 사고에 얽매인 삶 또한 강물 속

에서는 경계가 흐려지고 모호해진다. 강물은 양극의 일치를 만들어낸다.


싯다르타는 강물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흘러가는 물결 속에 여러 모습들이 나타났다. 자기 아버지의 외로운 모습이 나타났는데, 아들인 자기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으며, 자신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자기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에게 그리움의 끈으로 묶여 있는 외로운 모습이었다. 어린 아들의 모습도 나타났는데, 아들 역시 열망에 사로잡혀 자기의 길을 미친 듯이 치닫고 있는 외로운 모습이었으니, 모두가 스스로의 목표를 향하고 있었고, 모두가 그 목표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모두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강은 고통에 찬 소리로 노래 부르고 있었으며, 강은 그리움에 사무쳐 노래 부르고 있었으며, 강은 그리움에 사무친 채 목표를 향하여 흘러갔으며, 강은 비탄에 젖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카말라의 모습도 나타났다가 스르르 녹듯이 사라져 버렸으며, 고빈다의 모습과 그 밖의 다른 모습들도 나타나 모두 한데 어우러져 흘러가다가, 모두가 강물이 되었다.... 이런 것들이 합해져서, 그러니까 일체의 소리들, 일체의 목적들,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번뇌,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과 악,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합해져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합해져서 사건의 강을 이루고 있었으며, 생명의 음악을 이루고 있었다..... 그의 상처에서 한창 꽃이 피어나고, 그의 고통이 빛을 발하고, 그의 자아가 그 단일성 앞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자기도 모르게 태어난 아들을 곁에 두려 한다. 실제 고타마 싯다르타는 아들의 탄생을 알고도 깨달음의 여정에서 제외시켰지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카말라가 남겨준 아들을 사랑으로 품고자 한다. 그러나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가 반갑지 않으며 다른 성향과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버린다. 낳았으되 가지려 하지 마십시오.라는 노자의 말처럼 싯다르타의 헛된 욕망을 일깨우는 뱃사공 바주데바.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강물처럼 싯다르타의 방황과 고통, 욕망을 품어준다. 강을 통해 침묵과 경청을 배운 바주데바는 싯다르타를 정신의 평온에 이르게 한다. 그는 강으로부터 경청하는 법, 그러니까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영혼, 활짝 열린 영혼으로, 격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배웠다... 강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 나의 인생도 한 줄기 강물이었습니다.


# 싯다르타의 살아있는 미소


고빈다는 허리를 굽혀 큰절을 올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그의 늙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으
며, 그의 가슴속에서는 진정에서 우러나온 가장 열렬한 사랑의 감정, 가장 겸허한 존경의 감정이 마치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 싯다르타의 미소는 그에게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치 있고 신성하게 여겼던 그 모든 것을 떠오르
게 해 주었다. 그는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싯다르타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다.



평생 수행의 길을 갔음에도 해탈의 길에 이르지 못했던 고빈다. 싯다르타의 지난한 구도의 여정과 해탈의 깨달음에 감동과 존경의 눈물을 흘린다. 속세를 배제한 채 맹목적인 지식과 깨달음을 추구하던 싯다르타가 나르치스라면, 고통, 번뇌, 쾌락, 선과 악들을 강처럼 품어낸 싯다르타는 골드문트이다. 기꺼이 속세의 고통들을 감내하고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났던 싯다르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존재가 아닐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처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었으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싯다르타_헤르만 헤세_민음사 #도덕경_노자 #2016년 6월 2일 쓰다 #헤르만 헤세 책 중 최애 #읽고 쓰고 그림책수업하는 전직 초등교사 책방지기 #북샵라벤더 #bookshoplavender #경주그림책서점 #경주독립서점 #경주서점 #경주읍성서점 #사진출처_예스 24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6화환경의 차이가 역사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