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의 나비효과

「농담, 밀란 쿤데라」

by 라벤더
어떤 여정을 거쳐 내가 내 인생 최초의 파멸에 일렀는지(그리고 그 파멸이 썩 호의적이지 못한 주선을 하여 루치에 에게 이르렀는지) 가벼운 어조로도 어렵지 않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재미있게까지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내가 바보 같은 농담이나 즐기는 치명적 성향을 지녔고, 마르게타는 농담을 절대 이해 못 하는 치명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다.(52쪽)


단 한마디의 농담은 인생의 전락을 만든다. 농담은 도미노처럼 그에게 학생, 자유, 꿈을 앗아간다. 많은 세월 고통받게 한 전락의 원인이라 믿었던 제마네크를 증오하며 복수를 계획하던 루드비크는 그의 부인 헬레나를 유혹하며 그 꿈을 이룬 듯 보인다.



공산당원과 학생신분을 박탈당하고 검정 표지

부대로 쫓겨간 루드비크는 루치에라는 순수한 여인을 사랑하며 증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지만 육체적 사랑 없이 모호한 이별을 한다. 시간의 심연을 건너 억척스러운 이발사로 변해버린 루치에를 보며 지나온 삶을 회상하는 루드비크. 코스트카가 들려준 루치에의 과거는 충격과 번민을 만든다. 그토록 사랑했지만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자신도 그녀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자책감. 자기가 만든 환상과의 사랑이었음을 깨달은 루드비크는 민속음악을 이어가려는 야로슬로프와 함께 화해의 연주를 하며 자신이 과거 속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는다.



루치에 에게 육체의 사랑을 회복시켜 준 코스트가. 전통의 발자취를 이어가려는 노력하는 야로슬로프. 증오를 점철되었던 루드비크의 복수의 귀향은 점점 소멸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복수의 의미와 대상은 변질되지만 과거의 한 순간을 부여잡고 복수를 실현하려는 루드비크와 과거 민속음악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야로슬로프는 또 다른 자아 같다. 제마네크가 자신에게 했던 과거의 배신에 갇힌 채 자신의 복수에 헬레나를 이용한 것은, 자신 또한 과거의 제마네크처럼 그 누군가를 배신하는 일일 뿐이다. 쉽게 마음을 내지 못하는 루치에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사랑에만 갇혀 있었기에 속절없이 떠나보낸 것 또한 루치에 에게 또 다른 상처였다.



사소한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나비효과. 그 파장은 엄청나다. 농담 한마디로 모든 것을 잃은 루드비크의 삶처럼. 그 거대한 인생의 파장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한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기억은 편집된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루드비크는 자신의 상처에만 매몰되어 루치에 와 헬레나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 야로슬로프도 과거의 영광에 빠져 민속음악계승을 고집했기에 거부하며 힘들어하던 아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복수라는 것, 용서라는 것이 과연 가능

할까. 과연 누가 누구에게 복수를 하고, 용서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복수와 용서를 한들 의미가 있을까. 그 답은 시간만이 알 것이다.


우리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은 단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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