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시간, 한강」 침묵이 남긴 여운
세상은 환幻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이다,라고 그때 문득 중얼거려 보았다. 그러나 피가 흐르고 눈물이 솟는다.
말을 잃은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 너무나 많은 명징한 말들로부터 달아나듯 침묵을 선택한 여자. 희미해지는 시력에 시간의 흐름이 시시각각 몸을 통과하는 남자.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존재한다. 여자는 들을 수 있으나 말하는 걸 포기했다. 남자는 말할 수 있으나 볼 수 없다. 침묵으로 마음으로 이어지는 독백 같은 대화.
# 말을 잃어 가는 여자
이십 년 만에 다시 온 침묵은 예전처럼 따스하지도, 농밀하지도, 밝지도 않다. 처음의 침묵이 출생 이전의 그것에 가까웠다면, 이번의 침묵은 마치 죽은 뒤의 것 같다. 예전에는 물속에서 어른어른한 물 밖의 세계를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딱딱한 벽과 땅을 타고 다니는 그림자가 되어 거대한 수조에 담긴 삶을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것 같다. 모든 언어가 낱낱이 들이고 읽히는데, 입술을 열어 소리를 낼 수 없다. 육체를 잃은 그림자처럼, 죽은 나무의 텅 빈 속처럼, 운석과 운석 사이의 어두운 공간처럼 차고 희박한 침묵이다.
너무 빨리 단어들의 세계로 들어왔기 때문일까. 글을 배우면서 일기장 뒤에 인상 깊은 단어들을 적었던 그녀였다. 그런데 입을 열어 내뱉은 말들이 낯설다. 문장들에서 느껴지는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게 소름 끼치게 고통스럽다. 예민한 감성을 할퀴어대는 말들을 포기하기로 한다. 결국 침묵을 선택하는 여자. 단체생활이 침묵을 깨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의사와 어머니의 기대를 무시하듯 그녀는 그녀만의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 그녀는 마치 거대한 비눗방울 속에서 움직이듯 무게 없이 걸었다. 마치 영화 "그래비티"의 주인공처럼.
동기가 어떻든,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걸음걸이와 말의 속력이 대체로 느리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아마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일 테지요). 오래전에 죽은 말, 구어口語로 소통할 수 없는 말이라서일까요. 침묵과 수줍은 망설임, 덤덤하게 반응하는 웃음으로 강의실의 공기는 서서히 덥혀지고, 서서히 식어갑니다.
여자는 말을 하는 것도 질문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시력을 잃어 가는 남자에게 희랍어를 배운다. 극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규칙을 갖고 있는 희랍어를 배우려는 것은 침묵 속에 있는 그녀가 소통을 거부하는 몸짓 같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난해한 고어를 배우려는 것.
# 눈을 잃어 가는 남자
어리석음이 그 시절을 파괴하며 자신 역시 파괴되었으므로, 이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함께 살게 되었다면, 내 눈이 멀게 된 뒤 당신의 목소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이는 세계가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말을 하지 못했던 애인에게 소통을 강요하던 남자. 시력을 잃어가기에 조급했던 마음이 사랑을 어리석음으로 변질시킨다.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을 독일에서 보낸 남자. 두 언어사이에서 모호해지는 정체성.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상실감. 할아버지처럼, 아버지처럼, 점점 시력을 잃어가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의 만류에도 한국행을 결심한다.
인간의 몸은 슬픈 것이라는 걸.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 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 샅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 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그 시절이 지나가기 전에 너를, 단 한 번이라도 으스러지게 마주 껴안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결코 나를 해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끝내 무너지지도, 죽지도 않았을 텐데.
사랑을 어리석음으로 흘려보내지 않았어야 했다. 소통의 조급함으로 떠나보내지 않았어야 했다. 냉담하게 이별을 선언하는 여자. 독일에 남겨두고 온 그녀는 여전히 가슴을 아리게 하는 존재다. 침묵으로도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너무도 늦게 깨달은 남자. 한국에서 전해 들은 그녀의 부고 소식은 안타까운 후회와 상실감의 깊이를 더한다.
# 행복과 고통의 무게
그녀는 아이에게 제안했다. 오늘은 인디언 식으로 그들의 이름을 지어보자고. 아이는 재미있어하며 자신의 이름을 '반짝이는 숲'이라고 지은 뒤, 여자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었다. 마치 가장 정확한 작명이라는 듯 단호하게.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
응?
그게 엄마 이름이야.
그녀는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아이의 말간 눈을 들여다보았다.
마침내 어떤 감정도 없이, 먼 친분이 있을 뿐인 타인을 기억하듯 그녀는 그날의 자신을 기억한다. 미쳤군. 막 의식을 차린 그녀에게 어둠 속의 사람이 내뱉었다. 미친 여자한테 그동안 아이를 맡기고 있었어. 세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
아이가 지어주었던 인디언 이름이 남긴 행복을, 속이 안 좋아 양배추를 먹는 그녀에게 토끼가 될 거냐고 하던 모습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죄스러워 검정옷만 입는 그녀에게 할머니는 엄마의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 이쁜 모습을, 되뇔수록 남편의 차갑게 찌르는 말은 고통의 파편들을 만든다. 감정이 묻어있는 말들을 거부하자. 그녀는 살아야 했기에 말을 잃기로 한 것이었을까.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파편으로 다가와,
파편인 채 그대로 흩어진다. 사라진다.
단어들이 좀 더 몸에서 멀어진다.
거기 겹겹이 무거운 그림자처럼,
악취와 오심처럼,
끈적이는 감촉처럼 배어 있던 감정들이 떨어져 나간다.
오래 침수돼 접착력이 떨어진 타일들처럼.
자각 없이 썩어간 살의 일부처럼.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도, 남편의 날 선 말들이 가슴에 남긴 생채기도, 이혼 후 아이를 빼앗긴 공허함도, 꾹꾹 눌러 담기엔 가슴이 너무 좁다. 끓어오르는 증오로 마음을 가눌 수 없어서, 어스름한 새벽잠에서 깨어 느끼는 공포와 공허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그녀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집을 나선다. 그리고 피곤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 걷는다. 켜켜이 쌓여있는 단어들의 무거운 그림자를, 악취 나는 감정을 떨어내기 위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 죽은 듯 쓰러져 잔다. 불행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있는 그녀의 삶. 오롯이 고통의 무게를 견디는 삶.
# 소통의 시작
그녀는 다치지 않은 그의 왼손을 끌어다 잡는다. 숨을 들이쉬고, 떨리는 검지손가락 끝으로 그의 손바닥에 또박또박 쓴다.
먼저
병원으로
가요.
남자는 건물 안으로 날아든 새를 창문밖으로 날려 보내주려다 발을 헛디딘다. 안경은 깨지고 손에는 상처를 남긴다. 공포의 순간에 다가오는 발걸음. 말을 잃은 여자는 예비된 인연처럼 남자를 도와준다...... 내 말이 들리나요?...... 거기서, 듣고 있나요? 치료를 마치고 함께 집으로 돌아와 독백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태어나서 가장 긴 말을 했다는 남자.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소통을 거부하기 위해, 내면으로 침잠하기 위해 희랍어를 배우려는 여자는 눈을 잃어 가는 남자를 만나며 조금씩 고통의 더께를 걷어낸다.
어두운 초록색 흑판에 백묵으로 문장을 쓸 때 나는 공포를 느껴요.
방금 내가 쓴 글이지만, 십 센티미터 이상 눈에서 떨어지면 보이지 않아요.
암기한 대로 소리 내어 읽을 때 공포를 느껴요.
태연하게 내 혀와 이와 목구멍으로 발음된 모든 음운들에 공포를 느껴요.
내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공간의 침묵에 공포를 느껴요.
한번 퍼져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단어들, 나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단어들에 공포를 느껴요.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는 혼자만의 비밀을 감추고 있다. 칠판에 적어야 하는 모든 것들을 암기한 채 공간의 침묵을 가르고 말해야 하는 공포. 말을 잃은 여자의 내밀한 고백처럼 들리는 남자의 고통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그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고통이 그녀에게로 천천히 스며든다.
안경점이
문을 열
시간이에요.
밤새 남자의 고통을 공유하며 자신의 외면하고 차단했던 내밀한 고통을 들여다보게 된 여자. 첫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잠들지 못하고, 뜨거운 물과 아이의 거품비누로 샤워를 하고, 식탁 앞에 앉아 희랍어 공책을 펼치고, 죽은 희랍어 문장들과 생생한 모국어 문장들을 끊임없이 적으며 얼음 아래서 일렁이는 고통을 들여다보게 된다. 고통이라는 얼음을 뚫고 사람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어본다. 고통의 응시를 통해 소통을 시작하려는 여자. 그리고 침묵으로도 소통할 수 있음을 알게 된 남자. 말없이 눈 없이 가슴으로 소통하게 될 여자와 남자를 응원해 본다.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잃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얻게 된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할 때, 당신을 잃음으로써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보이는 세계를 이제 잃음으로써 무엇을 얻게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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