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배달원에서 프로그래머가 되다
콜이 그곳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대형 마트에서 직원으로 일하거나, 운이 좋으면 마을에 단 하나 있는 펍에서 바텐더로 일할 수 있었다. 그 작은 동네에서 콜은 돌아가며 마트 직원이 되었다가 주방 보조가 되었다가 피자 배달원이 되었다. 동네에는 대학교가 있었다. 콜은 바에서 일하며 늘 대학생들이 술에 취해있는 모습을 봤다. 홈파티가 열리는 집으로 피자 배달을 갈때면 술에 취한 그들의 권유에 못이겨 맥주 한잔을 얻어 마시고 나왔다. 콜은 자신이 분노에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저 아이들은 이렇게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고도 졸업 후 콜의 상사가 될 것이다. 콜은 혼자 학비를 감당하려다가 한 학기만에 중퇴를 해야 했다. 부모 중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한 번은 장학 프로그램에 지원할 기회가 있었다. 부모님의 서명이 필요한 서류가 있었는데, 그 당시 부모님은 세금 정보를 공개할 만큼 떳떳한 상황이 아니었다. 서명을 하면 가족의 경제상황을 공개해야 했는데, 콜의 부모는 자식의 미래보다 자신들의 현재를 더 걱정했다. 누구도 그의 진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고, 한 번도 미래에 대해 의논해 본 적도 없었다.콜의 엄마는 그가 아주 근면 성실하고 운이 좋다면 동네 카페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콜의 학비를 내준 사람은 신탁자산이 있는 엄마의 먼 친구였다. 그녀의 신탁 자산은 매년 몇십억씩 불어났기 때문에, 콜의 등록금을 내주는 것은 그녀에게 밥 한 끼를 사 먹는 정도의 지출도 아니었다. 콜은 그 돈으로 직업학교에서 프로그래밍을 수업을 들었다. 컴퓨터는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하루 종일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모니터를 쳐다보는 건 루저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가지고 있던 게임기를 모두 버리고 컴퓨터와 멀어지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제일 잘 알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건 컴퓨터였다. 콜은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후에도 교실에 앉아 계속 공부를 했다. 태어나서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고 깊게 파고든 건 그에게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배움과 구직의 세계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그래도 콜은 삶을 바꿔보고 싶었다. 직업학교를 졸업한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군데씩 5개월 동안 이력서를 돌렸다. 마침내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콜은 캘리포니아에서 네바다까지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 당일, 2월의 라스베이거스에 눈이 내렸다. 그는 한 스타트업 회사에 프로그래머로 취직하게 되었다.
늘 룸메이트가 북적대던 집을 떠나 처음으로 혼자 방을 구했다. 제대로 먹고, 저금을 할 수 있게 됐다. 가고 싶었던 체육관도 등록했다. 학교 동기가 콜에게 해외여행을 가야 한다고 했다. “해외 여행? 그거 돈 많이 드는 거 아니야?” 그는 평생 서부에서 살며 뉴욕에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콜은 잔고를 확인해봤다. 동기가 말한 금액 정도라면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다. 첫 여행지로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 나라가 좋을 것 같았다. 콜은 런던행 비행기표를 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