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심취했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것만 찾아다닌다.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따라다녔다. 어느 날 맑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별이 반짝일 수 있는 건 까만 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공연이든 예술이든 화려한 작품 뒤에 숨은 고통과 기다림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몇 년 동안 글을 쓰지 않고, 책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수없이 스쳐가는 영상이 주는 메시지에, 그러한 편리함에 글이 주는 깊이를 잊게 된다. 이제 영상 미디어뿐만 아니라 모든 스마트 기기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글보다는 영상이고, 우리는 상상으로 창조하기보다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에 제한된다. 상상은 직급, 나이, 경험과 상관없이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디든 존재할 수 있는 자유다.
사회는 복잡해지고, 우리는 단순해지길 원한다. 복잡한 삶의 갈등들을 놓고, 오롯이 자신만을 생각한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 모든 잡념을 없애고,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려는 듯 삶의 터전에서 떠난다. 필자도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을 피하고, 단순함에 몰두했다. 그러나 단순함은 다시 단순함을 낳는다. 끝없는 단순함의 탄생은 사고를 멎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복잡함에 진절머리를 내며, 사고하지 않고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집중한다.
단순함의 사고는 모든 것들 간단하게 정리하려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자신과 타인, 아군과 적군, 편안함과 불편함.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헤아려 볼 수 있다. 사회는 복잡하지만, 단순함을 매체로 우리 삶에 침투한다. 모두가 전문가가 될 수 없다면, 모두가 알기 쉽게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왜곡과 차별의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벽을 인지 못할 수도 있다. 그저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이 훨씬 편하니까.
앞서 말한 작품의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상대적 단순함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화려함과 단순함이라는 구분을 넘어 그 자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예술은 결과가 아니라 사고에서 출발한 과정이고, 끝이 없이 나아가는, 확장되는 무한한 우주다. 제한할 수 없다. 단숨함을 부추기는 것들을 주의해야 한다. 끊임없이 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