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생겼다. 비밀이 생겼다는 것은 무언가 자신만의 영역이 생겼다는 것. 어린 시절, 우리는 알 수 없는 감정과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오그라들진 모르겠지만 그때는 진지하고 어려운 일들이었으리라. 영화 <톰 보이>는 사춘기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잘 그려낸다.
톰 보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남성 이름 철수 같은 이름의 Tom과 boy의 합성어로써 영어권에서 남자 같은 여자 아이를 의미한다. 새로운 동네에 이사 온 로레는 마을 친구들이랑 친해지게 된다. 로레는 남자아이들처럼 뛰어놀고 싶어서, 이름을 미카엘이라고 소개한다.
부모와 숨김없이 공유하던 아이에게 비밀이 생겼다. 자신을 남자아이라 속이고, 아이들과 함께 한 것이다. 그 와중에 한 여자아이는 미카엘에게 관심이 생긴다. 여기서 미카엘의 비밀은 한층 더 쌓이게 된다. 부모와 공유하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와 아이들과 공유하지 않은 자신의 비밀을 말이다.
미카엘은 점점 더 아이들에게 스며들었고, 남자아이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미카엘은 단지 남자아이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평범하게 같이 놀고 싶었을 뿐이다. 무엇이 아이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이미 정해진 규칙과 질서, 즉 다수의 시선과 기준이다. 사회적으로 당연시 여겨지며 구축된 기준들은 이질적인 존재를 걸러낸다. 이렇게 구성되고 발전된 기준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남자답고, 여자답다는 표현 자체가 주는 사회적인 이미지는 자칫 그렇지 않은 이들을 틀린 존재로 만든다. 다르다는 이유로 틀린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기준. 이 기준이 로레를 미카엘로 만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로레가 진짜고 미카엘이 거짓된 가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로레의 모습도, 미카엘의 모습은 모두 자신의 모습이었다. 다수가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막상 그 다수 앞에 서거나 다수 안의 설 때 우리의 모습은 다르게 반응한다.
10살 미카엘의 모습은 어땠을까? 함께 했던 시간들은 아이들의 놀림거리로 바뀌었고, 숨겼던 미카엘의 모습은 모든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드러난다. 로레의 엄마는 로레의 모습이 여자아이답게 원피스를 입히고, 그 가족들에게 여자아이였음을 보여준다. 로레에겐 그 상황을 버틸 수 없었는지 뛰쳐나갔다. 그리고 원피스를 숲 속 공원 어딘가에 벗어버린다.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정의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거절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타인이나 다수의 기준이 아니다. 로레에겐 미카엘이든, 톰보이든 자신을 정의하는 것은 본인이다. 부모에게 주어진 원피스를 공원에 벗어두고 나온 것은 부모로부터 이어진 사회적인 기준에 대한 본인의 저항 의지가 아니었을까?
로레는 틀린 존재이자 다른 존재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