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가치 :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

by Wenza

누구나 한 번쯤은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보통 “죽고 싶다”라는 표현은 ‘자신이 기대했던 무언가가 좌절’되거나 ‘자신이 사랑하는 무엇을 잃었을 때’ 하게 된다. 보통의 사람들은 죽음의 열망보다 ‘삶의 가치의 우선성’이라는 생각으로 괴로운 상황을 극복한다. 그렇다면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면 어떨까?


movie_image (8).jpg


본 영화에서 등장하는 ‘나세르 알리 칸’은 자신의 삶을 다 바쳐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그에게 바이올린은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는 바이올린을 위해 존재했고, 바이올린은 그를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 투어 연주를 돌던 그에게 한 여자 이레인이 운명처럼 다가온다. 그녀는 자신의 털 끝까지 가득 채우던 바이올린의 자리를 밀어냈고, 진정한 사랑을 찾은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나세르 알리 칸의 부족함 가득히 채워버렸다.


5.jpg


그러나 그의 사랑을 이뤄지지 않았고, 그는 결국 원하지 않은 맞선을 통해 결혼하게 된다. 나세르는 그의 아내 파리귀세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는 나세르의 사랑을 받기 위해 히스테리를 부리게 된다. 파리귀세는 질투심에 못 이겨 나세르의 바이올린을 부숴버리고, 나세르는 이레인과의 사랑의 마지막 추억도, 바이올린도 잃게 된다. 그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구하러 떠나지만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도 그를 채우지 못한다. 결국 그는 죽음을 결심한다.


3.jpg


본 영화는 그의 죽음을 결심한 뒤로 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의 화면 연출의 미장센이나 심리적인 불안함을 색감과 음악으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피식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되새기면서 집중한 것은 주인공의 “죽음의 결심”이다.


6.jpg


보통 죽음이라 함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행위를 뜻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의 가치가 죽음의 가치의 중요성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할까? 그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다. 바이올린, 진정한 사랑 말이다. 자신의 가장 귀한 가치를 위해 나세르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그것들’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movie_image (9).jpg


그렇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사랑했던 것에 대한 최선을 자부하지 못하고, 앞으로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앞으로의 살아갈 삶이 중요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사랑했던 것에 대한 전심이 아니라는 반증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를 보라. 예술가는 본인이 목숨 걸고 사랑한 그것에, 진심으로 목숨을 건다.


4.jpg


나는 이 행위를 위대한 죽음이라 일컫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보기보다 초라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죽음과 성의 하모니 : 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