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빠 : 초콜릿 도넛

좋은 부모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by Wenza

지난달 서울 시청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도부터 매년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시청에서 열린다. 어쩌면 성소수자들에게 또는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에게 큰 행사 중 하나다. 한편 보수적 기독교에서는 퀴어 퍼레이드 반대 운동도 격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혐오라는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싫어하는 단순한 배척이 아닌 상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배척이다.



두려움으로 인한 혐오의 감정은 물리적이나 정신적인 안정을 위한 환경 조성으로 향한다. 즉, 두려움의 존재, 다른 것의 소멸을 원한다. 이런 소멸은 폭력을 낳는데, 폭력으로 상대를 없애서 평화를 얻는 방식은 PAX ROMANA(로마의 평화)이다. 이렇듯 다름에 대한 두려움은 배척과 차별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으로 이어진다.



영화《초콜릿 도넛》은 1970년대 한 게이 커플이 다운증후군 아이 마르코를 입양하려는 노력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게이바의 여장 립싱크 가수 루디는 이혼한 검사 폴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한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루디의 옆방에는 마약중독자인 마르코 엄마와 마르코가 살고 있고, 마르코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버려서 살게 된다. 어느 날 마르코 엄마가 마약 복용으로 구속되고, 루디는 그런 마르코를 들이게 된다.



본 영화는 미숙한 부모와 준비된 부모, 그리고 세상의 편견을 통해 보이는 정의의 부재를 그린다. 루디는 수없이 정의를 찾아 외친다. 세상은 게이에게만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법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텍스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루디가 마르코에게 열심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이라는 이유일 게다.



루디는 폴과의 대화 속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르코 양육에 대한 대화 속에서 루디는 마음을 담아 말한다.


좋아서 약쟁이 부모를 만난 것도 아니고
좋아서 남과 다르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혼자 고통받아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 대사는 루디가 마르코를 생각하며 하는 말이지만, 성소수자들에게 세상의 각박함을 보여주는 대사이기도 하다.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영화는 끝까지 사회의 배척과 무관심에 대한 그림을 멈추지 않는다. 정의라는 고상한 말은 고상한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게다.



루디와 폴이 할 수 있는 것은 당신들의 선택이 정의로운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일이다. 그리고 정의를 증명하는 일은 포기하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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