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행복하든 고통스럽든 동일하게 소중하다.
우리에겐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다. 시대와 나이를 막론하고, 각자의 때에 각자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야 할 때 말이다. 이 노부부에게는 40년간 살아왔던 집을 이제는 내어줄 때가 왔다. 오래된 집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앞으로의 삶에 큰 문제가 될 거란 두려움은 그네들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짐이었다. 늙어 가는 것은 자신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그네들에게 이사 갈 집을 구할 돈이 필요하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죽게 되는 강아지와 돈의 무게 조차 혼동될 정도로 말이다. 무엇이 이들의 시선을 흔들어 놓았는가? 늙어 가고 있고, 제3의 시선의 무게다. 그들은 노인이었고, 그들의 행복했던 시절은 과거에 묶여있었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와 TV 속의 테러리스트의 이야기와 함께 진행된다. 화면 속 테러리스트는 중동계 미국인이었고, 단지 종교적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정해졌다. 알렉스는 흑인이고, 루스와 결혼할 때 즈음에는 흑인과 백인의 결혼은 미국의 30개 주에서 불법이었다. 그런 과정을 겪어온 그에게 TV 속의 테러리스트의 일은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다.
뉴욕, 세상에서 가장 빠른 트렌드의 출발점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곳에서는 과거에 해방되었던 인종차별은 흑인에서 중동인으로, 이슬람 종교로 넘어간다. 이런 고립과 차별을 극대화하는 것은 영화 내내 흑인은 알렉스 혼자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짧지고 길지도 않는 러닝타임의 끄트머리에서 알렉스 자신이, 제3의 시선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아닌 넘겨줘야 할 노인의 모습으로 변한 거다. 인생의 한 부분만 하이라이트이며, 어느 부분만 중요할 수 있을까? 결코, 삶은 행복하든 고통스럽든 동일하게 소중하다.
종종 교회에서 예수를 말할 때, 복음서 속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만 집중할 때가 있다. 구원에 관련된 문제려니 그냥 넘어갈 때도 있지만, 결코 복음서 속의 예수 이야기의 핵심은 죽음과 부활에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본 영화는 알렉스가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한 소중함을 지켜가는 과정을 그린다. 어느 순간 자신이 차별받던 사회에서 어느 순간 타인이 차별받는, 어느 순간 루스와 행복한 기억 속의 도로시를 돈과 비교했던 자신의 모습. 그는 어느 순간 제3의 시선이 되어서, 자신의 삶까지도 객관적으로 보려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까지도 객관적으로 보려 하는 제3의 시선에 중독되어 있지는 않나?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