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불쾌함 말고 이 불쾌함에 대한 이야기
*핑거스미스의 원작을 모릅니다. 스포일러 많구요
혼자 <아가씨>를 봤다.
시험기간이어서, 근데 공부를 하기 싫어서, 좋아하는 이성이랑 보기에는 너무 야하다고 해서, 사람도 없지만서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혼자 보고 왔다.
그래, 이렇게 괜히 사람 궁색하게 변명하게 만드는 '혼영화'의 묘미는 영화가 건네는 감정에 잠시나마 폭 젖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영화 내내 나를 거쳤던 감정 중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남아 척척하게 하는 이 것은 분명 '불쾌함'이다.
물론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불쾌함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그닥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지금껏 그의 영화 세계 특유의 불쾌함은 여러모로 매력적이었고 그 정도를 얘기하자면 나 스스로 정신상태를 의심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올드보이>를 처음 보고 나서 그것이 내 정신에 때린 충격파는 인생 전체에 영화라는 것이 차지하는 쿼터 자체를 키워놨으며, <친절한 금자 씨>와 <박쥐>또한 이하 생략. 어쨌든 내가 지금부터 얘기할 불쾌함의 범주가 박찬욱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란 말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나에게 일종의 경고를 날렸던 친구는, 이 영화의 동성애 표현 수위를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 견주었다. 사실 이 말을 듣고 그냥 혼자 봐야겠다 싶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지라 그 정도의 성행위 표현 수위에는 <블루> 이후로는 (심장을 잠시 부여잡고) 익숙하기에 그냥 혼자 감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이 불쾌함은, 동성애 성교 장면에 대한 거부감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 사전에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신 분이 얼마나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화의 동성애 표현 수위는 다시 한번 심장을 부여잡고 상당하다. 2015년 어느 한가로운 주말, 아침부터 문화 교양을 쌓기 위해 롯*시네마 아르떼 관에 마실 나오셨던 아주머니는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쫓기듯 자리를 떴으며, 중년의 부부는 잔뜩 무언가에 화가 나서 환불을 요청했다. 깨어있는 지성인으로서 졸리다 호모 포비아가 아닌 나조차 독립영화관 특유의 비좁은 공간에서 관객에게 짓누르듯 쏟아지는 여성과 여성의 살덩이의 향연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그것에 비하면 <아가씨>에 나오는 성교 장면은 지나치리만큼 야하지 않다.
베드신의 수위를 생각하면 이렇게 안 야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하다. 그냥 뭐랄까, <아가씨>의 성교 장면은 판타지적 요소가 너무 커서 현실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블루> 속 베드신을 보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을 강제 배움 당한 느낌이 들 정도로 현실성이 강하다. 반면 이 영화의 베드신은 그저 일반 남성의 판타지 속 레즈비언 베드신의 실체화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사춘기 소년의 레즈비언 판타지'라고 요약한 문구가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그 판타지적 요소가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남은 모든 불쾌함의 원천인 것 같다.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요약해보면 두 여성이 두 위악적 남성 캐릭터로부터 도망쳐 자유를 쟁취하는 해피엔딩의 스토리이다. 그러나 두 여성이 처음 가지는 잠자리에는 백작의 이름만이 가득하고, 심지어 엔딩신의 성교 장면에서 조차 영화 속 신사들의 판타지를 위한 책에서 묘사된 성교 장면을 실제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꼴이다. 어렸을 때부터 성적, 정서적 학대를 받은 여자가 해방의 순간에서 학대의 도구였던 책에서 본 그것을 과연 실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얘기는 재미없으니까 하지 말자.
아직 한국 사회에서 난해한 레즈비언 물의 당위성을 스토리로 풀어내기 위한 장치인 것 마냥, 조진웅은 쓸데없이 너무 못됐고, 하정우는 너무 지질하다. 아니 뭐 캐릭터의 악함의 정도야 모든 창작인의 자유인 바이지만, 그 두 위악적 캐릭터로부터 해방이라는 허울 좋은 병풍 뒤에 (남성)감독의 위선적인 판타지가 숨어있는 듯하다. 바다 같은 오지랖으로 숨어있는 판타지를 꺼내와 펼쳐보니 동성애 그려내는 느낌이 사춘기 소녀들 아이돌 BL물 수준과 동급으로 의심되는 것은 내가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얕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이쯤 되니 수업시간에 깔짝 배운 프로이트적 시선에서 박찬욱 감독의 사춘기 페티시와 이 영화와의 관련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이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영화를 너무 얕게 해석해서 박찬욱 감독의 심오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던 감독을 비판하고 싶지 않은 팬심적인 느낌 아니면 시험기간이라서 스트레스 받았나보다. 다 내 탓이로소이다.
한줄 요약 : 남자로부터의 두 여자의 해방을 그려내는 이 모든 과정 위에 다시 한 번 남성 감독의 판타지를 뒤집어 씌운 이 모순적 상황이 난 불쾌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