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적 커피소비에 대한 변론
' 나 돌연사하면 범인은 카페인이야 '
하루에 커피 세네 잔(그중 벤티 사이즈 포함)을 해치우는 나에게 주위에서 우려의 시선을 건넬 때마다 그들의 걱정 어린 얼굴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하는 말이다. 인류 보편적으로다가 카페인이 몸에 좋든 안 좋든, 어차피 이에 대해 논쟁하는 박사님들이야 연구에 매진하시니 카페인이 나에게 미치는 지극히 개인적 영향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카페인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해 더 국지적으로 들어가자면 나라는 사람의 뇌일 터인데, 사실 카페인이 나의 뇌가 돌아가는 바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긍정적이라 카페인과 나 을 옹호하고자 쓰는 글임을 들키기 전에 미리 밝힌다.
오전이던 오후던, 시간에 상관없이 카페인을 먹는 순간 이상하게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냉정해진다. 그리고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오감이 살아나고 기운이 든다. 동의보감 본초강목 아님 주의 뇌에서 일어나는 사고 작용이 빨라지는데, 평소 게을렀던 뉴런들 간의 상호작용이 마구마구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 실제로 단순한 느낌을 넘어서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이 정리되거나 실행으로 옮기는 원동력이 생긴다. 나도 가끔 들여다보고 싶은 내 머릿속이라 카페인의 작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고등학교 때 물리시간 관성 파트에서 예시로 들었던 '마찰력 없는 당구공'이 적절하다. 카페인이란 큐대로 톡 하고 건드려 주는 순간 머릿속 생각들은 마찰력 없는 당구공이 되어 지네끼리 무작위적으로 스파크를 내며 충돌한다. 운이 좋으면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오늘의 커피의 결과물은 이 글인 듯 허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내가 카페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혼자 힘으로 살아나가기 귀찮아서인 것만 같은 슬픈 기분이 든다. 내 힘으로 사고하기 귀찮고 기운도 솔찮으니 어디서 모터 좋은걸 잠시 빌려오는 것. 그래서인지 피곤하거나 일이 많은 날은 커피를 대여섯 잔을 넘기는 데, 이때는 나도 살짝 불안하다. 돌연사 ㄷㄷ그래도 끊을 수 없는 것은 사실 카페인이 몸에 좋은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상당하지만, 커피가 인간의 취미생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생각하고 마시는 시간은 나의 미개한 하루에 있어 문화를 행하는 시간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선 손에 든 커피잔이 끼니도 안 되는 주제에 컵라면+삼각김밥 패키지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비하의 상징이 되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뭐 다들 알다시피 커피는 하나의 문화 카테고리로 자리잡아 꽤 괜찮은 부가적 문화 생활을 향유하게 해준다. 일반인인 나도 커피 마시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카페라는 공간을 탐구하거나 직접 브루잉을 해보는 것과 같이 2차적 취미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아무리 미각이 둔해도 하루에 세네잔씩 마시면 어떤 커피가 내 입맛에 맞는 지 정도는 알 수 있는터라, 커피의 맛에 대해 비슷한 취미를 가진 이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재미가 있다. 와인은 얘기하고 싶어도 잘 모르니까...
물론 남들이 나를 우려하는 것은 커피보다는 나의 남다른 카페인의 섭취량 자체일 테지만, 카페인이든 커피든 이 매력적인 피조물은 도저히 끊을 수도, 줄일 수도 없다.
이 글을 나의 커피 섭취량에 항상 걱정해줬던 뮤뱌지와 옷거리 학회원들에게 바치는 바ㅎ
+ 그리고 이상하게 이것은 커피의 카페인으로만 가능하여, 레드 x과 같은 카페인 음료는 오히려 카페인의 부정적 영향만 부각한다. 재수생 시절 즈음에 출시되어 왠지 마시면 공부를 잘되게 해줄 것 같았던 카페인 음료를 삼분의 일쯤 마시고 내 심장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날 공부를 접고 조퇴를 했던 트라우마가. 쩜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