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무쓸모

증명

by 수키니피그



난 참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성실해서가 아니다.

일찌감치 부모가 없어져 버린 아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매사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 맡겨진 일은 싫든 좋든 군말 없이 열심히,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열심히, 비난받지 않게끔 열심히.... 그래야 어른들이 좋아하고 그래야 혈육도 아닌 꼬마를 거두어 잡일이라도 시킬 수 있으니말이다. 난 아무튼지간에 기르기 쉬운 아이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몇 십 년을 살다 보면 열심히 하는 습관이 몸에 배는데 어느 순간 내가 왜 나를 갈아 넣으면서 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 건지가 투미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한 번쯤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하는 타이밍이다.




내겐 몇 되지 않는 좋은 어른에 대한 기억들이 있는데, 그 기억 중 하나이다.

땡볕이 내리쬐는 건기의 베트남이었다.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들어온 비전트립팀을 맞이하는 날... 그들은 갖가지 무거운 짐들을 잔뜩 싸가지고 왔는데 나는 역시나 그 열심히 하던 버릇으로 그날도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이 가지고 들어 온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옮기고 있었다. 무건운 짐일수록 어깨나 머리에 이는 게 편하다. '나는 여자니까 가벼운 것만 들어도 되지 뭐..' 식의 태도로 보이는 게 싫어 더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함께 같은 일을 진행하던 선교사님이었다.

"OO야. 너는 짐 들지 마. 무겁다. "

"에이~~ 아니에요! 저 들 수 있어요."

"OO야! (단호하게) 들 수 있어도 들지 마! 여기 힘쓸 사람 많아!"

그때 표현은 못했지만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고마움이 밀려왔다. 그날 선교사님의 말씀은 나에게

'네가 너를 증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너는 네 존재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어'라고 얘기해 주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의 쓸모를 증명하며 살아야 했던 그 모든 시간들에 위로를 받는 순간이었다. 선교사님은 내가 무리하면서까지 일을 하는 모습들을 쭉 보아 오셨고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네가 소중한 존재이고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셨던 거다.

그 후로 나는 그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무턱대고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내 역할이 뭔지를 찾아 성실히 해내려고 노력할 뿐.... 작지만 소중한 자유를 획득한 거다.

이제 그때 보다 더 나이 먹은 지금, 나는 나처럼 자신을 증명하려고 안간힘 쓰는 청년들을 보면 얘기해 주려한다. "너는 네 존재 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멋지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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