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와 메신저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

by 수키니피그

오전에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이 식당은 주문한 사람이 직접 픽업하고 퇴식하는 시스템이다. 콩글리쉬라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이 다 아는 용어 소위 '셀프서비스'매장이다. 물론 반찬을 가져다가 먹는 것도 셀프이다.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기에 식당 곳곳에 가장 잘 보일 법한 곳에 '셀프'라는 것은 알리는 안내문을 써서 붙여 놓았다. 이용 방법까지 일일이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안내문을 보지 않는다. 아마도 안내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거다. 그래서 퇴식을 안 한다던가... 이용 방법을 몰라 두리번두리번거리거나, 혹은 물어보는 것도 귀찮은 건지 아니면 부끄러운 건지 그냥 반찬도 없이 국물도 없이 뻑뻑하고 맛없게 음식을 먹고 갈 때가 있다. 반찬도 국물도 공짜인데 누리지도 못 한 채말이다.

그럴 때면 난 다시 생각에 빠진다. 비단 주의력이 떨어지는 몇몇의 문제일까? 아니다. 나조차 다른 환경에 가면 같은 실수를 하니까.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시대'

수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의 이야기를 취사선택 하기에 용이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는 주로 내가 찾지만, 메지시는 내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쯤에서 옛날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옛날에 어떤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청년으로 키도 작고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데다가 출신지 또한 아주 가난하고 평판이 좋지 못한 동네였다. 그런데 그 청년... 오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은 거다. 심지어 일반인들이 범접하기엔 엄두도 못 낼 지혜마저 겸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메지시를 들으려 하지 않고 되려 메신저의 생김새와 출신을 들어 그의 모든 것을 폄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지위를 독점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더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예수는 그렇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한채 누명을 뒤집어쓰고 그 당시 가장 처참한 형벌인 십자가 형으로 공생애를 마감했다.

당시 위선에 가득 차 있던 사람들.. 혹은 자신이 잘났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예수의 폐부를 찌르는 한마디 한마디는 기분 나쁜 팩폭이었을 거다. 어떤 이의 메시지가 내 맘에 들지 않는데 그 메시지에 특별히 흠이 없을 때 사람들은 보통 그 메신저를 공격한다. 그런 사람의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내지는 그런 하찮은 사람이 하는 말을 너는 믿니? 하는 식이다. 물론 메신저의 신뢰도는 아주 중요하다. 보통은 건강한 나무에서 건강한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복잡한 인간 세상사가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이 나는 자연의 섭리처럼 단순 무결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질서와 상식에 비추어 윤리적, 도덕적인 사고를 통해 메시지를 바르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때 메신저는 고려 사항일 뿐 필요충분조건은 될 수없다.


세상엔 수많은 표지판이 있다. 사람들은 표지판에 화살표엔 관심이 많다. 그러나 그 화살표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엔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가끔은 어린아이가 해주는 말이 나의 행동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종종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에도 깨닫는 바가 있다. 이런 프로세스는 메신저를 보지 않고 메시지에 집중했을 때 이루어진다. 결국 이런 습관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더 귀를 열고 눈을 맑게 닦고 메시지에 집중해 보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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