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왜 내 친구들 엄마보다 늙었어?"
다섯 살 쯤이었을 거다. 이웃 친구 집엘 놀러 갔다 온 날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내 친구 엄마는 머리가 까만데 우리 엄마는 머리가 온통 희끗희끗했었으니까.
"엄마가 니를 늦게 논기라"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더 알고 싶어 해서는 안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갔었는데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나는 머지않아 내가 누군가가 맡기고 간 업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니 친엄마한테 보내 주꾸마! 느그 엄마는 내처럼 할매도 아니고 젊다 아이가"
그 무렵 우리 집은 위암을 앓던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느라 가세가 기울고 병세 또한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엄마는 고심을 했을 거다. 지금 상황에 저 천지분간 안 되는 어린것을 그것도 나이 많은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맞는가? 그리고 얼마지 않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곧 친부모의 집에 보내졌다. 열 밤만 자고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거짓말을 남기고 간 내 늙은 엄마를 그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리고 맞닥뜨린 내 친부모라는 사람들의 정체.
당연히 생경할 수밖에 없지만 그 분위기는 정말이지 이상했다. 내 엄마는 멀뚱하게 날 이웃집에서 놀러 온 아이처럼 대했고 아빠는 별말이 없이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내겐 난데없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오빠와 언니가 있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언니는 날 볼 때마다 찬 바람이 불었고 초등학생 오빠는 동생이 생겼다는 기쁨에 처음엔 나에게 초콜릿 공새를 펼치더니 어느 날부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잔인할 정도로 박해졌다. 그랬다! 나는 내 아빠가 밖에서 낳아 온 혼외자였다. 결국 드러난 건 내 부모의 정체가 아니라 나의 정체였던 거다.
그때부터 나는 아주 착하고 기르기 쉬운 아이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틈틈이 내 아빠의 아내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애썼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내가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를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어깨춤을 추면 그녀는
"아이고 야좀 보래이~ 쪼만한 게~~ 니 그런 건 어데서 배웠노?"
하면서 웃곤 했는데 그 웃음을 볼 때마다 난 조금씩 안도했다. 그것은 철부지 어린아이에게는 일종의 보증 같은 거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얼음판 같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난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 머리 좀 잘라주이소."
"어데까지 잘를 까예?"
"마.... 단발로 끊어 주이소."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인정사정 볼 거 없이 숭덩 잘려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내가 잘 보이려고 애썼던 내 아빠의 아내가 입에 물고 있던 뜨거운 감자를 뱉으려 하고 있었다.
"돈이 억수로 많은 부자 할매가 니 키워준단다. 어떻노 좋제?"
좋냐고 묻는다. 좋을 리가 있냐고 되묻고 싶다.
그렇게 보내진 부자 할매의 집에서 적응하며 버티며 성인이 되었다. 나를 마지막으로 맡으신 할머니는 인색했고 의심이 많았으며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나에게 욕을 하며 던진 "너 말 안 들으면 내쫓는다."는 말은 갈 곳 없는 아이에겐 협박이었다. 매번 그런 일을 겪을 때면 언제나 속으로 생각했다. '난 커서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렇다. 할머니들이 전부다 인심이 좋고 포근하지만은 않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접해온 어른들의 모습은 불행히도 나에게 '어른'에 대한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나에게 다루기 쉬운 아이가 되길 기대했고 때로 그들이 곤란할 때는 가장 버리기 쉬운 카드여야 했다. 나는 최대한 쓸모 있는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생모에게 한 번, 양부모에게 또 한 번, 친부에게 또 한 번. 이렇게 세 번이나 버려진 나는 더 이상 버려지기 싫었다. 그렇게 착한 아이로 살다가 성인이 되고 어느 날.... 베트남에 몇 년 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해야 할 즈음이 되었을 때 나는 그곳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선교사님과 마지막 식사 자리를 가졌다. 그분은 흰머리가 성성하신 아버지뻘 되시는 분이셨는데 어릴 적 부모가 있었음에도 형편이 너무 어려워 고아원에 맡겨진 후 상상도 못 할 어려움을 겪으며 살다가 선교사가 되신 분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날 그분께 내 얘기를 담담히 들려드렸다. 얘기를 가만히 듣고 나서 선교사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내가 그런 어린 시절을 살았구나. 넌 너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니?"
"글쎄요...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이야기도 들은 적 없고 얼굴도 본 적이 없어서요" 실제로 그랬다. 막상 나에게 생모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그래서 딱히 밉지도 그립지도 않은 잊힌 인물이었다.
"어머님이 왜 너를 끝까지 품지 못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보내셨는지 난 모르지만 아마도 네 어머님은 참 성품이 좋은 분이셨을 거 같다. 네 좋은 성품을 보니 그래. 너의 그 좋은 성품은 네 어머님을 닮은 게 아닐까 싶다."
처음이었다. 이런 말을 나에게 해준 어른은... 사람들은 언제나 내 얘기를 들려주면 "아이고 그래도 참 밝게 자라셨네요"와 같은 결의 말들을 해주곤 했었다. 하지만 선교사님이 나에게 해주신 그 한마디는 나뿐 아니라 내겐 이미 잊힌 존재였던 나의 생모를 동시에 존중해 주신 최고의 칭찬이었던 거다. 그날 난 내가 살아온 삶 전체를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어른은 있다.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나도 저런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어른이 내 성장기에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돌이킬 수도 없지만 내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좋은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날, 어떤 순간, 나와 같은 유년기를 지나온 청년을 만난다면 그때 그 선교사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을 많이 하기보다 더 많이 듣고, 무심하기보다 더 세심히 살피며, 뻣뻣하지 않은 친절한 '어른'이 되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