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술라이 Oct 22. 2023

스레드의 세계

초짜의 쓰는 삶-도전

격일로 잘 때였다. 새벽에 책을 읽고 있는데 지인으로부터 톡이 왔다. 스레드에 관한 톡이었다. 바로 스레드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 보통은 책을 보려고 하지만, 원시인에 가까운 나는, 신문물을 접할 때나 생소한 분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필요해서 찾아봐야 하는 경우에 영상을 먼저 본다. <역행자>의 저자 자청은 그의 저서에서 '한번 뇌를 최적화해 두면 일평생 앞서나갈 수 있다'고 하며 '뇌 자극 방법들'을 소개한다. 그는 사업을 하다 위기가 찾아오면 경영학 책이 아닌 <삼국지> 같은 역사물을 보거나, 과학 관련 다큐 또는 유튜브를 본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해당 분야의 책을 읽을 때는 뭔가 더 진전이 안 되는 느낌이다가, 전혀 다른 분야의 콘텐츠를 볼 때 갑자기 더 높은 레벨에서 뭔가 파바박 떠오를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튜브는 학습의 깊이와 장기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따져보면 아주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아예 보지 않는 것보단 분명 나을 때가 있다고 한다. 기계치에 아날로그인인 나는 아예 보지 않는 것보다 분명 나을 것이라 정당화하며 재생 버튼을 터치했다. 유튜브에 스레드를 입력하자 관련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순식간에 작은 화면을 점령했다. 나는 수험생처럼 노트를 펼쳤다.



새 플랫폼이 나오면 바로 해보자고 결심한 적이 있었다. '새것'에 무심한 스스로를 잘 알기에 다짐한 것이었다. 나는 전에 했던 결심대로 스레드에 가입하고,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생각하며 텍스트를 써내려 갔다. 50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글을 쓰며 두려움 반 설렘 반,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 뭔가를 시작할 때면 늘 따라오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었다. 두려움이 커지면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두려움을 설렘으로 돌려야 했다.


                                                  

스레드는 메타에서 새롭게 출시한 플랫폼으로 인스타그램의 가입자라면 쉽게 연동이 된다. 스레드는 트위터의 대항마로 텍스트 기반이며 한 게시물에 최대 500자, 동영상 5분, 사진 10장을 업로드할 수 있다. 반면, 트위터는 한 게시물에 280자까지 가능하다. 스레드에는 DM기능이 없고 게시물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정을 하고자 한다면 삭제 후 다시 게시물을 작성해야 한다.



글자수를 맞추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500자 보다 적은 건 괜찮지만, 넘어가면 글이 둘로 나뉘었다. 대단하고 거창한 글이 아닌데, 줄이려고 보면 하나같이 중요해 보였다.

한동안 타임스탬프로 찍은 '운동 시간'을 올렸다. 글은 미니멈하게, 이모티콘은 멕시멈하게 불균형을 추구했다. 인스타그램 수업에서 배운 꿀팁을 떠올리며 적용한 것이었다.



<말의 트렌드>의 저자 정유라는 인증을 소유, 체험, 행위로 분류했다. 소유의 인증은 말 그대로 내가 가진 것에 대해 인증을 해야 하기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착장, 그릇, 아름다운 음식 등을 사진 찍어 올리는 행위가 이에 해당된다. 체험의 인증은 시간과 비용, 정보력을 필요로 하는데 새로 생긴 카페와 맛집, 힙스터들이 가는 갤러리 전시 등이 이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행위의 인증은 근면, 성실, 의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 비용이 적게 들며 높은 의지력을 요한다. 미라클모닝, 꾸준한 운동이나 필사, 꾸준한 공부로 따낸 자격증 등이 이에 해당된다.

정유라 <말의 트렌드>



나는 미라클 모닝과 꾸준한 운동을 전면에 활짝 내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 수업에서 배운 인사이트까지 더해 꾸며 놓으니 그럴싸해 보였다. <말의 트렌드>에서 저자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행위는 어쩌다 한 번 있는 우연이지만, 같은 행위를 반복해서 인증하다 보면 그것은 어느새 현재를 바꾼다. 그런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인증은 무척 귀한 기록이 된다."고 한다. 책까지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다.



한 달 정도 매일 '행위의 인증'을 했지만, 스레드 속에 홀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팔로우는 날마다 늘어나는 데 외따로 뚝 떨어져 있는 듯한 폐색감. 풍요 속의 빈곤, 이라고 하면 될까.

분명 팔로우와 좋아요, 댓글이 보여주는 간극의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앞서 나간 사람들을 보고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팔로우들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몇 있었다. 소위 쓰플루언서들의 글을 읽고 사진을 보고 밑으로 달린 댓글을 읽었다.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원활하게 잘.

소통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요즘 말, 요즘 감수성, 요즘 취향, 요즘 관심사일까? 자세히 들여다봤다. 안개가 서려 있는 듯 분간하기 어려웠다.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고 조금씩 해보자고 다짐했다. 주제를 바꿔가며 글을 썼다. '행위의 인증'도 같이 올렸다. 행위의 인증은 나의 정체성이자 유일한 무기라는 생각이 들어 단번에 그만둘 수 없었다. 생활 정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독서 모임 관련 글, 유익한 강연 내용, 일상, 나만의 인사이트 등 주제를 바꿔가며 일기처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마음에 남았던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와 영화 <말없는 소녀>의 감상을 날 것 그대로 올렸다. 그런데 반응이 있었다. '아하! 이렇게 하는 거구나!'

 

콤 바이레드 <말없는 소녀>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다시 <말의 트렌드>를 펼쳐 보니 새로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고가품이 필요한 것도, 남들이 모르는 희귀한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근면함과 성실함은 좀처럼 갖추기 힘든 능력이기에 큰 가치가 있는 인증의 한 종류다. 어떤 영역이든 잘된 인증은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되는데, 그 성공 여부는 게시글에 달린 '정보 좀요'와 같은 '질문'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질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인증한 것을 남도 인증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다."



<말없는 소녀> 밑에 댓글이 달렸다. "와. 리뷰가 너무 매혹적이서 꼭 읽어보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어 졌어요. 장바구니에 일단 책을 담았는데요. 책부터? 영화부터? 어떤 순서를 추천하시고 싶으셔요? 권해주시는 대로 시작해 볼게요."




이전 11화 인스타그램 보다 밴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