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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라이 Oct 22. 2023

50통의 레터

함께 성장

출발은 독서 모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나는 게 아쉬웠다. 읽고 있던 책에서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모임을 갖는 게 좋다고 했다. 모두가 지식을 탐했고, 성장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눌러온 지적 욕구와 나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동시에 건강한 엄마로서의 정체성도 확고했다. 그러나 엄마로 살아온 세월 속에 목표는 희미해졌고, 꿈은 서서히 잊혀졌다. 모두에게 꿈이란 게 있었을 텐데, 유의미한 목표가 있었을 텐데, 아쉽고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진지하게 상황을 들여다보고 조화롭게 시작해 보자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두 번 모이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각자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레터로 소통하면 어떨까요?"라고 묻자, 다들 적극 찬성했다. 같은 엄마로서 부담이 가중될까 진심 어린 걱정도 해줬다. 고맙고 따뜻했다.


레터를 쓰면서 가장 수혜를 본 사람은 나였다. 레터를 위한 독서를 하기 시작했고, 쓰기가 습관이 되도록 하려고 했다. 독서력과 쓰기가 자연스럽게 향상됐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고, '들을 준비'게 되었다. 회원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구글 설문지를 만드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글을 쓰다 보니, 글을 쓰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이미지가 잘 그려지는 것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는 것이 유용했다. 손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나 문장이 샘솟을 때는 키보드로 빠르게 쳐서 기록하는 게 중요했다. 판단의 뇌가 정지되고 영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신묘한 기분을 만끽하면서.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할 때는 손수 몸을 사용해 해결을 봐야 했다. 펜을 들고 종이에 적어가며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익한 경험들이었다.


처음 레터를 쓸 때는 독서 모임만을 위한 레터였는데, 이제는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발송한다.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면서 레터를 쭉 살펴보니 새록새록하면서도 손발이 오글거린다. 그러나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성공 경험이 있는 저자들을 따라 하는 게 좋다.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저자 오바라 가즈히로는 과정 그 자체가 가치로운 것이니 과정을 공유하라고 했다. 민망하고 쑥스럽고 부끄럽지만 그의 말을 믿고 따라 해 본다.



1. 사소한 시도를 해봐요


약해지지 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너무 늦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뭔가를 시작하기 어려우신가요?

이 시를 지은 사바타 도요 할머니는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에 첫 시집을 냅니다.

그리고 시집 ‘약해지지 마’는 베스트셀러가 되죠.


또 다른 할머니를 소개해 드릴게요.

76세부터 101세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모지스 할머니는 사랑하는 남편과 딸 애나를 잃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손자의 방에 있던 도화지와 그림물감을 보고 자신의 어릴 적 꿈을 떠올린 거죠.


우리는 '시작'을 두려워합니다.

‘한다고 될까?’, ‘이거 한다고 얼마나 달라지겠어?’, ‘괜한 짓 말고 하던 거나 잘하자’, ‘해도 안될 거야’, ‘난 안 돼’, ‘애도 있는데 못해’

시작도 하기 전에 마음으로 결론을 내죠.


사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인간에게는 의식보다 3만 배 강한 무의식이 있는데 그 무의식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어 도전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이죠.

만약 뭔가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두려우시다면 오늘은 '사소한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요?

늘 커피만 마셨다면 이번에는 홍차를 마셔보기, 빠른 길을 선호했다면 오늘은 일부러 빙 둘러서 집에 가기, 비문학 책만 읽었다면 문학책 읽기에 도전해 보기.

그리고 도서관 수업에 참여만 해왔다면 자신이 주인이 되는 동아리에 주체적으로 참석하기.


우리는 그동안 ‘듣는 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참여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선택한 동아리에 내적 동기를 갖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네요.  


뭔가를 시작하기에 가장 빠른 날은 바로 오늘이라는 생각과 함께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두 할머니를 기억하며

도서관에서 만나겠습니다^^






2. 작은 시도가 선물을 가져다줄 거예요


지난 한 주 동안 모두들 '사소한 시도'를 해 보셨나요?

오늘은 얼마 전에 있었던 저의 경험과 글을 공유할게요.


새벽에 책을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일어나서 잠깐 몸을 움직이거나 따듯한 차를 마시고 다시 책을 읽는데요.

오늘은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새카만 어둠이 깔린 이른 아침에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제 책에서 읽은 건데요. 책을 보다가도 가끔 일어나서 ‘10분 산책’을 하라고 쓰여 있었어요. 이왕이면 새로운 장소에서요.


하지만 새벽 시간이고, 어제부터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히 새로운 장소가 떠오르지 않아 집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천천히 집 주변 눈길 위를 걷는데, 아무도 가지 않은 일이 보였습니다. 눈길 위에는 일렬로 행진하는 군인들이 지나간 것처럼 곧게 뻗어 있는 발자국의 길이 만들어져 있었고요. 간혹 그 길에서 이탈된 발자국들이 듬성듬성 있었어요. 사람들은 주어진 길 중에서도 다니는 길만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번도 밟지 않은 눈 위를 밟으며 걸었습니다. 폭신폭신하고 뽀드득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좋았습니다.


눈은, 눈 위는 태양이 비출 때와는 다르게 새롭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움직이는 은빛가루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어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요. 묘하고 신기한 기분으로 걷는데, 얼마 전까지 눈사람이었을 크기가 다른 눈두덩이 두 개와 눈사람의 목도리로 쓰였을 길고 긴 크리스마스 용품이 바닥에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사람은 아무도 없고 공터 너머의 주유소에서 희미한 음악 소리만 흘러나왔습니다. 오늘 가로등 불빛의 색깔이 핑크색, 노랗고 흰색 모두 다르다는 것도 알았고요. 텅 빈 버스 두 대가 지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매일 볼 수 있고 다니던 길이었지만, 시간만 변경해도 세상은 새롭고 새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나왔던 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따듯한 시 한 편을 어둠 속에서 만났습니다. 그건 평소 친근하신 한 동네 주민분이 동네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시였습니다. 플래카드에는 나태주 님의 시가 쓰여있었습니다.



새해 인사

                                   -나태주-

글쎄, 해님과 달님을 삼백예순다섯 개나

공짜로 받았지 뭡니까

그 위에 수없이 많은 별빛과 새소리와 구름과

그리고

꽃과 물소리와 바람과 풀벌레 소리들을

덤으로 받았지 뭡니까


이제, 또다시 삼백예순다섯 개의

새로운 해님과 달님을 공짜로 받을 차례입니다

그 위에 얼마나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덤으로

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잘 살면 되는 일입니다

그 위에 더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딱 10분만 산책해야지' 하고 나갔는데, 30분이 훌쩍 넘도록 천천히 그리고 고요히 걷다 왔습니다.

사소한 시도가, 작은 습관의 파열이 저에게 여러 가지를 선물로 주었네요.


큰 변화는 어렵고 막막하지만 작은 변화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도서관에 오실 때는 작은 변화의 빛을 마음에 담고 오시면 어떨까요?

평소보다 10분 일찍 집에서 나와 천천히 혹은 새로운 길로 와 보는 것. 어떠세요?

마음에 작은 빛이 돌 거예요.


그럼 오늘도 마음에 작은 빛을 얹고, 도서관에서 만날게요^^






3. 즐겁고 기대되는 '새날'이 될 거예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며칠 전, 아이가 마카롱을 만들겠다며 베이킹 도구와 재료를 잔뜩 꺼내 놓았습니다.

아이는 고소한 아몬드 가루와 달콤한 슈가파우더를 촘촘한 스텐 채망 위에 한가득 부어 놓고, 고운 가루를 내렸어요. 그리고 달걀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한 뒤, 달걀흰자를 먼저 내려놓은, 몽글몽글한 크림색 입자들과 섞었습니다. 이제 머랭을 만들어 반죽에 섞어야 했는데요. 아이가 “최악!”이라고 말하며, 글을 쓰고 있는 제게 다가와 안겼습니다.


저는 아이를 안아주며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신이 나서 즐겁게 마카롱을 만들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싫증이라도 난 걸까 싶었어요. 아이는 만들기 싫은 건 아닌데 우리 집 휘핑기가 무겁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튜버들처럼 스탠드형 전동 휘핑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저는 아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마음도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래, 그런 거 있으면 정말 편하겠다. 알아서 다 만들어 주고. 그런데 생각나? 우리 전에는 이 휘핑기만이라도 있었으면 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이내 찡그렸던 얼굴을 펴고 환하게 웃더니 “오랜만에 손머랭 쳐 볼까?”하면서 베이킹을 하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손으로 계속 휘핑을 했던 건 아니었고, 조금 하다가 ‘우리가 소유한 소중한 핸드믹서’로 머랭을 만들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망치지 마라. 지금 가진 것이 한때는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음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감사를 느끼면 우리의 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감사할 때 우리의 뇌에는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로 행복의 알갱이인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수치가 올라가는 것이죠.


행복 물질인 도파민은 동기부여의 씨앗이며, 우리를 행복감에 젖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 쾌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과 행동이 하나로 묶여 더 강한 쾌감을 얻기 위해 다음에도 같은 행동을 하려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입니다. 일단, 도파민이 분비되면  집중력과 기억력, 정보처리 능력이 향상됩니다.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세로토닌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치유물질이며, 세로토닌이 분비되면 오늘 하루도 잘해보자는 긍정적이고 의욕적인 마음이 들게 됩니다. 활기찬 기운이 솟아오르고 머리가 쾌적해져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향상된 상태가 되는 것이죠.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자동사고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뇌에는 '감사의 길'이 만들어지고 물길이 만들어진 것처럼 감사가 수월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생각이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지게 되니 그것을 알아차리고 감사의 풍요로움을 느껴 보는 것입니다. 알아차리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재정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계획을 세우거나 성취했을 때 나오는 도파민을 감사함으로써 누려보면 어떨까요? 또, 햇빛을 5분 이상 받아야 나오는 세로토닌을 감사함으로써 만끽해 보면 어떨까요?

감사하는 것을 자꾸 잊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누구나 처음엔 다 낯설고 서툴다는 것을 떠올리며 ‘이건 실행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럴 때, 행복의 알갱이들이 우리의 하루를 즐겁고 기대되는 새날로 만들어 줄 겁니다.

오늘도 행운을 빌겠습니다^^





4. 누구라도 시작할 수 있어요


아이가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놀잇감처럼 여기고 좋아하게 되었다면 저는 도서관에 다니며 도서관 문화를 접하고 차츰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익숙해졌습니다.


동네 도서관은 차를 타고 외출할 때마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인지하지 못했지만,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설득의 심리학>으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인간의 생각은 철저히 공간과 상황에 종속된다고 얘기합니다. 주변 환경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도 이런 문구가 있어요.

“행동은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 간의 함수 관계다.”

또 이런 내용도 있어요.

“기타를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면 연습하지 않게 된다. 손님방 한구석에 있는 책장에 꽂아두면 책을 읽지 않게 된다. 찬장의 맨 위쪽에 비타민 통을 두면 비타민을 먹지 않게 된다.”


집과 가까운 도서관에 다닌 덕택에 저는 도서관에 다니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께서는 매일 오는 아이를 예뻐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 오가는 수많은 아이들 중 한 명이었겠지만, 볼수록 정이 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태주 님의 <풀꽃>처럼요.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아이는 도서관에 매일같이 다니며 그곳에서 재미난 책을 읽고 선생님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기억을 쌓았던 것 같아요. 사서 선생님들만 다니는 비밀 통로를 가보고, 이동도서관 차를 타고 도서관까지 가는 경험을 했는데, 그건 아이가 유달리 예뻐서가 아니라, 자주 오니 ‘예뻐 보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생텍쥐페리는 이런 말을 했어요.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오늘은 친구처럼 도서관과 가까워지고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던 아이와 저의 경험을 떠올리며 글을 써보았습니다. 책과 친해지는 아주 사소한 법칙은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모두들 행복한 기억을 쌓는 일요일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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