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임자 음료가 유행하는 것,
배우 윤여정에게 CF 러브콜이 쇄도하는 것,
펑퍼짐한 치마와 꽃무늬 카디건이 팔리는 것,
MZ세대가 할매 스타일을 좋아한다며 '할매니얼'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역시, 최신 기술에 환장하고 부모세대는 손쉽게 무시하면서도 할머니 스타일엔 열광하는 MZ세대는 알다가도 모를 존재인 걸까?
우리 엄마는 전업주부였다. 우리 집의 가장은 아빠였고 육아를 전담한 건 엄마였다. 내가 할머니 손에 맡겨진 것은 인생을 통틀어 몇 달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동생이 갓 태어났을 때다. 말씀이 별로 없으시지만 늘 나를 짠하게 여겨주시는 친할머니, 아직도 에너지가 넘쳐서 '왈가닥'이란 말 밖엔 표현할 길이 없는 외할머니. 두 할머니는 고맙고 익숙한 분들이지만, 나와의 관계에선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구석들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친구 A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오래도록 슬퍼하던 모습이 내게는 조금 색달랐다. 나도 언젠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게 되면 저렇게 눈물 흘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될 정도였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던 A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요만한 꼬마 시절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지금 같지 않았던 시절, 아빠는 집에 거의 없는 사람, 엄마는 그보다는 좀 덜 없는 사람이었고, 자신 곁에서 자신을 강아지처럼 귀여워해 준 것은 오직 외할머니였던 것이다.
꽤 많은 친구들은 외할머니와 이모들의 품에서 자랐다. 친구 B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지구 반대편으로 유학을 떠나더니 그곳에 눌러앉아 일하고 있다. 한국에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나 들어올까 말까 하지만, 친구들보다 먼저 찾는 건 할머니다. 말하는 것만 보면 부모님과는 비즈니스 파트너보다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은데, 할머니에게는 사랑스러운 손녀가 된다.
역시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던 지인 C는 할머니에게 마음의 빚이 너무나 크다. 학교에 다닐 적 할머니께 온갖 생떼를 부렸던 게 나이가 들수록 죄송스럽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C의 친구들 역시, 육아휴직이 끝나면 좋든 싫든 자기 엄마(아이에겐 외할머니) 손에 맡기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왜 내 옆에 없어주냐며 원망했던 엄마에게, 왜 엄마 말고 늙은 당신만 있는 거냐며 원망했던 할머니에게 동시에 미안한 C는 할머니에게 잘해드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잊을만하면 또 하고, 또 한다.
이게 우리에게 할머니의 의미다. 여느 친인척들과는 달리, 할머니와 이모는 깍듯하게 존대하는 어르신이 아니라, 반말로 농을 치고 떼를 쓰고 애교를 부려도 되는, 그런 가장 살가운 가족이다. 동시에, 당신께서는 6.25 전후의 비참함을 겪고 극심한 가부장제에 짓눌리며 살아오셨으면서도 손주에게는 모든 것을 내주려 하던 문제의 '전통적이고 희생적인 어머니상'을 간직한 분들이기도 하다.
일하는 엄마들이 심한 경우 '자식 농사 놓아버린 여편네'라는 서러운 취급까지 받았던 80년대와 달리, 90년대의 엄마들은 맞벌이를 꽤 많이들 했다. 피아노, 태권도, 보습학원으론 한계가 있어서였을까? 어렸을 땐 방과 후에 근처의 할머니 댁이나 이모집으로 하교해서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가 시골에 사시는 집은 방학에는 아예 한두 달씩 그 시골에 애를 맡겨놓기도 했다. 개학날 새까맣고 통통해진 채 돌아온 애들은 대부분 그런 경우였다.
대가족 틈바구니에서 자란 중장년층에게도 물론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인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그들만의 집단적 감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밀레니얼 세대의 감정과는 같진 않다. '부모님의 커다란 빈자리'를 메운 존재로서의 할머니, 대체 불가한 존재로서의 할머니라는 맥락을 잃은 채 마케팅 용어로 쓰이는 '할매니얼'이라는 말은, 그래서 약간은 공허한 분위기를 풍긴다.
'복고' 유행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어도, 어느 시대에나 대중문화의 한 부분을 단단히 차지해왔다.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렸던 90년대가 이제 '지나간 시대'가 돼버리면서 현재의 복고 마케팅이 화려해지는 것 같기는 하다. 다만 그걸 MZ세대론과 엮기 위해 재미는 있지만 맥락은 놓친 '할매니얼' 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팔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아쉽다.
중장년층에게는 촌스럽고 그리운 것이 MZ세대에게는 신기하고 새로운 호기심의 영역이라서, 그래서 이들이 재미 삼아 찾는 할머니 스타일이 인기라는 생각은 조금 납작하다. 혹시, 자신들에게 추억의 대상인 것들이 하나둘씩 다시 유행하니 그저 반가워하는 데에서만 그쳐버린 해석이 아닐까?
사실 멋진 할머니들을 향한 열광은 소수자(여성과 노인)를 향한 차별적 시선이 뒤집힌 것이라든지, 평균 수명이 길어지며 생겨난 사회적 변화라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하다. 헐렁한 핏이 유행하는 것은 90년대 스키니-2000년대 힙합-2010년대 스키니에 이어 다시 헐렁한 유행이 돌아온 것으로 느껴진다. 흑임자는 2000년대 후반에 이미 '슈퍼푸드'로 한차례 유행한 '검은깨'를 이름만 바꾼 것이고 말이다.
할매니얼을 MZ세대의 선호와 더 깊게 연결 지어보려면, '할매의 입맛'이 쑥인지 인절미인지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조금만 나이 든 사람들이면 다 '꼰대'라며 무시하는 MZ세대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왜 유독 '할머니'라는 존재는 거부하지 않는지, 왜 할머니의 것을 아끼고 더 확장시키려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난 할매니얼이라는 단어가 그저 마케팅이 좀 더 예리해지고, 네이밍이 좀 더 화려해지며 나타난 '한 철 유행어'로만 여겨지길 바라지 않는다.
참고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통계청)
[컬처 읽기] MZ세대는 요즘 ‘할매앓이’ 중(CHIEF EXECUTIVE, 2021년 7월)
일‧가족 양립 문제의 시대적 변화에 대한 고찰(이정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