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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Oct 16. 2021

FIRE족과 YOLO족은 결국 같다

최근 MZ세대를 가장 욕먹이는 단어 중 하나는 'FIRE족'일 것이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빨리 돈벌어 40대에 은퇴하겠다는 야심찬 젊은이들 말이다. 젊은 것들이 국가경제에 기여할 생각은 않고, 주식으로 돈이나 굴리겠다는 거냐,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투기조장하는 놈들이다 등등.


바로 몇 년 전, 젊은층    을 휩쓴 단어는 'YOLO족'이었다. 인생 한 번이니 내일 따윈 생각 않고 열심히 놀겠다던 그 자세 말이다.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극에서 극으로 트렌드가 옮겨간 것처럼 보인다.




나는 '욜로'도 '파이어'도 아니다. 욜로로 살기엔 남은 생이 너무 길 것 같고, 파이어로 살기에는 자본이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마음 속에는 '욜로하고 싶은 욕망'과 '파이어하고 싶다는 욕망'이 상충한다. 욜로와 파이어가 서로 반대라면 이런 마음가짐은 그야말로 '진보'이면서 동시에 '보수' 이고 싶다라는, 말도 안되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두 가지 욕망이 정말로 다 들어있다. 그 이유도 알고 있다. 내게 욜로의 뿌리와 파이어의 뿌리는 같기 때문이다. '미래가 두렵다'는 강렬한 우려 말이다.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라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응답률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걸, 이젠 우리 모두 안다.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올해 60%에 달해 역대 최고라는 뉴스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건 '밥 먹으면 배부르다' 처럼 당연한 이야기니까.


나의 대학교 동아리 동기들은 전공이 모두 다르다. 졸업하면 천차만별로 살겠구나, 상상했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일찍 취업한 나를 빼면, 대부분이 시험―주로 고시 준비를 했다. 동아리뿐 아니라 학부 안에서도 시험 준비생들의 비율은 결코 낮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왜 그 공부를 하고 행시를 준비하는 거야" "전공 살리는 게 낫지 않아?"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우린 대부분, 누구에게 도전을 권유할 해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생에 패기가 흘러 넘쳐야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뒤 원룸촌을 보고 있노라면 "건물주들이 부럽다"는 말들이 절로 나왔다. 우리같은 애들이 월세를 50만원씩 내는 방이 한 채에 몇 개씩 들어앉아있는지 꼽아보며 "저 아담한 빌라로도 가만히 앉아서 한 달에 400씩은 족히 벌겠구나" 하고 셈하곤 했다. 간혹은 장난삼아 "나중에 늙어선 실버타운에 모여서 같이 놀자"와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도 "좋은 실버타운은 겁나 비싸대" 따위의 결론에 다다르기 일쑤였다.

학교 앞에 있었던 문제(?)의 도심형 실버타운. 여전히 탐난다.




흥청망청과는 거리가 먼 나도, 어느 순간부터 돈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비싼 옷을 입는다거나 해외여행을 언제고 마음대로 갈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저들은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걱정 없음'에 대한 부러움, 나이 들어도 여전히 괴로워보이는 삶에 대한 두려움, '나는 어떡하지'라는 불안함.  욜로든 파이어든 이런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각종 인터뷰에서 파이어족과 욜로족들이 하는 말들을 보면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 파이어족들이 하는 말
“대기업 타이틀이 삶을 보장해 주진 않더군요”
“더는 내 삶을 남(회사)에게 맡겨선 안 되겠다 싶었다”
“회사 업무는 만족스러웠지만 인생을 재설계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남의 기준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삶을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 욜로족들이 하는 말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해주는 곳은 회사가 아니라 나 자신”
“현재 내 오감(五感)이 즐거워하고 만족하도록 살고 싶어요.”
“큰돈 없이도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인생의 주체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불안감은 같지만 방법론(과 환경)이 다르다는 점이 이 둘을 가른다. '인생 2막 없을지도 모르는데'라는 마음에 미래를 회피하고 현실의 1막이라도 즐겁게 살자는 것이 욜로족이다. "삶이란 즐거운 것!!!"을 외치는 천진난만한 자들이라기보단, 오히려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한 사람들 말이다.  반대로 이런 '인생 1막'에서 공격적으로 벗어나 한시라도 빨리 2막으로 넘어가자는 사람들이 파이어족이다. 떼부자까지는 아니어도 자본을 어느 정도 확보한 '동수저'급이라면 이런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성실하게 일해 보답받은 삶을 사신 분들께서는, 직장 그만두고 투자로 생활비를 벌겠다는 이들이 "일할 생각은 않고 남의 돈으로 배나 불리겠다는 한심한 족속"으로 보일 것이다. 뼈 빠지게 살았지만 여전히 노후가 아슬아슬한 분들께서는, 고생해봐야 보람없을 인생 재미라도 찾겠다는 이들에게 "열심히 해도 나처럼 되는데, 너네는 빚쟁이로 살고 싶냐"고 성을 내실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YOLO족과 FIRE족 사이 어드메를 헤메는 건, "이제 뭐 먹고 살아야하나"라는 떄 이르고도 답없는 고민에서 헤어나기가 너무도 어려워서다. 때론 우리 머릿속 욜로 세포가 "걱정한다고 뭐가 되냐!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그냥 플렉스해버려!!!"를 고래고래 외치는 바람에 여행에 큰 돈을 지르기도 하고, 때론 파이어 세포가 "진짜 골로 가고 싶냐? 지금 덜 쓰고 바짝 모아서 빨리 이 모양 이 꼴 탈출할 생각은 안하고!!"를 외쳐대는 통에 난데없이 투자공부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침반도 없이 방향을 잡아가면서 우리는―적어도 나는 걸어가고 있다. 그 누군가가 택한 길이 설령 너무 이쪽이거나, 너무 저쪽으로 보인다고 해서 결코 비난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돈내산으로 갔던 처음이자 (현재까진) 마지막인 5성급 호텔. 아쉬운 맘에 풀을 낮에도 가고 밤에도 갔다.



참고

    [도시살롱] FIRE族, 밀레니얼의 은퇴를 생각하다(매일경제, 2019년 8월 10일자) 

    [업계 트렌드] 나 혼자서도 ‘잘’ 산다, YOLO!(월간중앙, 2017년 3월)

    [창간기획] 조기은퇴 꿈꾸는 MZ세대(중앙일보, 2021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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