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마음을 사려면―정확히는 '지갑을 열려면'― 친환경을 넘어 필(必)환경을 담아야 한다고들 한다. '친환경'이 젊은 세대의 유별나거나 새로운 취향쯤으로 여겨진다고 느낄 때마다 마음 한 켠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MZ세대는 친환경을 좋아해"라는 인식의 가장 큰 맹점은 '선긋기'다.
"요새 젊은 애들은 그런 거 좋아하더라구"라는 말 뒤에 숨은 괄호엔 (우리는 그냥 살던 대로 살래. 지금까지도 별 문제없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없을 것 같고, 나 죽은 뒤에야 알 바 아니니까)라는 뉘앙스가 명확하게 반영되어 있다.
얼마 전 회사 동기들과 점심을 먹으며 한참 수다를 떨다가 카페에 갔다. 예상보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은 바람에, 머그잔 대신 챙겨갔던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서 마시다가 들고 나왔다. 그 시간대 사무실로 향하는 회사 엘리베이터는 으레 그렇듯, 빽빽-하다. 그 와중에도 내 텀블러에 눈길을 주던 한 선배는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오, 텀블러에 커피 담아오는 거야? 환경을 생각하다니 역시 멋져~"
분명 비아냥거리는 게 전혀 아닌데도, 어쩐지 달갑지 않다. 당신은 원래 환경까지 고려하기는 귀찮아하는 '성격'의 사람이라 일회용 컵을 쓰고, 나는 지구를 걱정하는 MZ세대라 '기특하다'는 칭찬 정도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행동이 멋지다고 생각하면, 왜 당신은 말로만 칭찬하고 여전히 일회용 컵만을 쓰나요? 그냥 남의 얘기, 중요하지 않은 얘기로만 생각하는 것 아닌가요? 쓰레기산이 날마다 불쑥불쑥 높아진다는 걸 알지만, 그저 귀찮고, '그래도 된다'라고 합리화하고, 쉽게 잊고 마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다. 그저 '그래, 내가 속이 꼬였지...'하고 삼키며 눈웃음과 목례로 인사하고 내리는 수밖에.
동남아 최대 쓰레기산인 인도네시아 반타르 그방 매립지. @한국일보
운이 좋아 별 변을 당하지 않는다면, 난 앞으로 수십 년을 이 땅에서 살 것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지구에서 살아가야 할 미래의 생명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생각할테다. 한때 아름다웠으나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해변들, 신기하게도 매년 경신되는 폭염과 태풍, 홍수의 기록, 이젠 전세계적 규모의 전염병까지. 난 진지하게 "이런 세상에 나를 왜 낳았냐고 원망할까 봐 아이를 낳지 못하겠다"라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그걸 듣는 대다수의 '어른'들은 "그게 진짜 이유라고?"라고 되묻는다.
같은 땅에 살고 있지만, 기성세대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환경문제를 현재의, 나의 문제가 아니라 어렴풋한 이야기, 기술이 발전하면 어떻게든 잘 해결될 문제라고만 여기는 것 같다. 친환경을 표방한 제품을 내놓는 것은 그저 그런 옵션을 달아야 잘 팔리기 때문이라는 듯 말이다. 소비시장을 이끌 MZ세대를 공략해야 한다며, 그들에게 '그린슈머'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이고 거짓 '그린마케팅'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기업들에 덩달아 박자 맞추는 정부 역시 미덥지가 못하다.
막바지 학생운동에 몸을 걸쳤던 한 지인이 말한 적이 있다. 환경·여성·인권 문제 같은 것들은 한때 한국 진보운동에서 곁다리 의제에 불과했다고. 70, 80년대 반자본 운동에선 계급 타파나 재벌 해체 같은 노동 문제나 남북관계 같은 이념 문제들만이 무엇보다 근본적인 의제로 여겨졌다고 말이다. 생태주의와 환경주의는 '반자본주의'라는 말을 드러내 놓고 하기 어려울 때 우회적으로 쓰던 표현일 뿐, 실제로 핵심 영역에선 비껴있었다던 시절. 그때를 지나온 사람들은 지금 '오피니언 리더'로서 사회 지도층과 기업 경영진에 포진해있다.
시간이 약간 지나 이젠 친환경이 아예 '패션'으로 인식될 지경이다.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에 동참하면 굿즈를 드려요"처럼 모순된 말이 별문제 없이 받아들여진다. 재사용이 가능한 보냉백으로 배송을 해주겠다는 기업은, (실제로 훨씬 더 복합적이고 영구적인 쓰레기가 될) 그 보냉백을 제대로 회수하지도 않는다. 너도나도 친환경 전기차로 파란 하늘을 열겠다는데, 정작 그 배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드러내지 않는다.
@스타벅스 커피 코리아 얼마 전 스타벅스의 '리유저블 컵 대란'은 이 모든 기만을 종합한 상징 같았다. '1인당 20개 한도'라는 무시무시한 이벤트 속에서 지쳐 나가떨어지는 직원들을 보자니 '스타벅스의 전성기가 곧 지나가겠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종류의 프로모션과 마케팅들이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걸 대중에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선 그나마 의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의 표를 더 얻기 위해서든, 돈을 더 벌기 위해서든, 진정성이야 어떻든 친환경 '바람' 자체는 없는 것보단 낫다. 어차피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 MZ들이 정치 사회 경제의 중심 연령에 서게 될 것이고, 생태주의도 보편적 가치관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진 "내년 S/S 시즌 유행은 플로럴 패턴"같은 식으로 '환경'이란 단어가 소비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진 지금의 파괴적 행위들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말이다.
몇 달 전 인스타그램에 새 계정을 팠다. 환경 관련 피드들을 팔로우하고 싶어서다. 채식을 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등 쉽지 않은 주관을 지켜나가며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구경하노라면 무력감이 조금은 잦아든다.
한 시절의 유행, 특정 집단의 선호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을 이해하는 사람들, '그린슈머 MZ세대' 따위의 표현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아니, 더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9년 봄 들렀던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한 민박집에서
참고
진보진영 ‘성장동력 확충’에도 힘 쏟아야(한겨레, 2006년 1월 1일)
"제발 좀 가져가세요" 쿠팡 프레시백이 골칫거리 된 사연(중앙일보, 2021년 8월 2일)
축구장 140개, 높이 40m 쓰레기산에 핀 고귀한 새싹들(한국일보, 2019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