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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Oct 18. 2021

'바디프로필'과 '바디 포지티브' 사이

말로는 "당신이 누구든, 어떻게 생겼든 아름답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인스타그램에 '눈바디' 사진을 올리고 바디 프로필 촬영에 수백만 원을 기꺼이 쓰고 있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유행을 보고 있으면, 2030이 결국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율배반적 세대'라는 결론에 이르기 십상이다. "자기 몸 긍정주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멋진 몸 긍정주의' 아닐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MZ세대가 한 덩어리가 아닌 것처럼, 이들이 가진 '몸 가치관'도 하나가 아니다. 멋진 몸을 가꿔서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 굉장히 많은 반면, 몸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공통점은 있다. 우리 이제, 몸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는 것.



비난받아 마땅한 건 세상에 거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너무 많은 이들이 거침없이 창을 꺼내 든다. 인터넷 공간에서 유독 드러나지만, 현실에서라고 많이 다를까.  이래도 욕, 저래도 욕이다. '바디 프로필이 유행'이라는 글에는 "인스타 관종들의 필수 코스"라는 원색적 비난이, '바디 포지티브 운동'을 소개한 글에는 "못생긴 페미들의 자기 합리화"라는 얼토당토않은 욕설이 따라붙는다. 마치 '몸'이라는 주제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금기인 것처럼.




바디 프로필이 '관종의 필수 코스'라는 말에 나는 아주 조금은 동의한다. 요새 애들은 보는 것도 좋아하고, 보여주는 것에도 익숙하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생각에 한창 심취해있을 무렵, 나는 모바일 생태계가 '노출증과 관음증'에 의존해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과, 남들이 뭘 하는지 끊임없이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이 기형적 구조를 굴려간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젠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을 예전처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생각을 꽁꽁 안에만 묶어둔다면 세상은 손톱만큼씩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관종'이라는 말도 그렇게 나쁠 건 아니다.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단 마음을 부끄러워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보단, "관심받고 싶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편이 한결 솔직하다. 그런 점에서 바디 프로필을 찍는 사람들도 꽤 솔직하고 매력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새로운 공부를 하느라고 연락도 잘 되지 않는 친구 한 명은, 시험 준비에 돌입하기 직전에 운동을 맹렬하게 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SNS에 바디 프로필 사진을 올렸다. 체지방을 쪽 빼기 위해 닭가슴살과 방울토마토만 먹고살면서 평생 없을 고강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던 마지막 기간은 약간 지옥 같았노라고 시인하긴 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니 "살면서 딱 한 번 해볼 만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는 그의 말에 부러움이 든 건 사실이다.


사진 속 그의 멋진 모습은 조금은 어색해 보였지만 대단했다. 가장 젊은 모습을 후회 없이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단 한 번쯤 가장 탄탄한 몸을 만들어보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하고 하나의 목표에 몰입했던 그 열정이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 같다.




한편 바디 포지티브가 '못생긴 몸을 가진 사람들의 자기 합리화'라는 비난에도 아주 일부분에는 동의한다. 정확히는 <그간의 말도 안 되게 획일적이었던 미의 기준이 '못생겼다'라고 감히 규정했던 몸>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고쳐서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기준에서 벗어난 몸을 가지는 것은 때론 슬프고 때론 피곤한 일이다. 나는 상체는 총체적으로 빈약한 반면 하체는 근육이 꽤나 발달된 편이라, 인바디 측정에서도 "상하체 불균형 심함"으로 나온다. 어렸을 땐 엄마가 내 다리를 보며 "여자애 다리가 이렇게 튼실해서 치마도 못 입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애프터스쿨의 유이와 f(x)의 루나에게 붙은 '꿀벅지' '말벅지'같은 별명이 나를 향한 비난 같았다. 속옷을 살 때에는 딱맞는 치수를 찾기가 어려워서 '아하, 나 같은 사람은 고객 취급도 안 한다는 건가'하고 자조했다.


최근 유이의 바디 프로필을 다룬 기사에서는 아직도 "트레이드 마크인 꿀벅지를 되찾았다"라고 써놔서 내가 통탄할 지경이다.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울 수 있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어떤 몸이든 그 자체로 아름답다"라는 말이 어느 순간 많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들려오면서 나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새 나이가 조금 더 드신 어머니는 이젠 내 다리를 만지며 "넌 좋겠다. 다리가 이렇게 딴딴해서. 나이 들어보니 하체 튼실한 게 최고네"라고 말씀하신다.


언더웨어 브랜드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맞는 사이즈의 노 와이어 브라를 이제 꽤 많이 판다. '나 말고도 이 사이즈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타이트한 레이스 장식 대신, 편한 디자인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기도 한다. 내 몸이 어딘가 잘못됐거나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꽤나 많이 줄어들었다. 모두, 사람들이 몸에 대해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생긴 변화다.




정반대로 보이는 MZ세대의 바디 프로필 열풍과 바디 포지티브 운동은, 결국 '더 다양한 몸'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과정이다.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싶다는 목표를 향하는 다른 방식들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몸, 내가 생각하는 건강, 내가 즐거울 수 있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과정 말이다.


탄탄하든 물렁하든, 가늘든 두툼하든 상관없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생략됐거나 아예 금기시되어온 과정들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면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젊은 몸들! 그 멋진 과정에 동참하는 쾌감을 계속해서 더 많은 이들이 느껴갔으면 한다.   


@북한산. 어릴 적 내 다리를 튼실하게 만든 주범이라 한때 원망했지만, 이젠 고맙게 느껴진다.


참고 

    "운동하면 0칼로리" 야식 배달 1위 곱창, MZ는 왜 곱창에 열광하는가(스포츠조선, 2021년 10월 6일) 

    '섹시한 모델' 버렸더니 주가 3배… 여심 잃은 빅시의 부활(중앙일보, 2021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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