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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Apr 25. 2017

전기뱀장어가 되고 싶다.

콘센트 찾아 삼만리

인쇄 매체는 대부분 기사 분량을 '장' '매'로 센다. 옛날 원고지 쓰던 시절의 습관이 남아있는 것이다. 1장 또는 1매는 200자를 뜻한다. 아침에 기사 발제를 할 때에도 1000자로 쓰겠다고 하는 대신 5매로 쓰겠다고 발제하고, 기사 매수 수정을 해야 한다고 알릴 때에는 "6장에서 4.5장으로 줄여"라고 말한다. 온라인 기사로만 쓸 때에는 "분량 제한 없이"가 아니라 "매수 제한 없이 적당히 써라"라고 한다.

하지만 이건 그냥 언어적 습관일 뿐, 실제로 우리의 모든 삶은 전부 다 노트북이다. 노트북과 핸드폰을 손에서 뗄 수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전기와 관련된 버릇들이 생기곤 한다.


1. 가방 속엔 언제나 충전기

상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전화를 안 받는 것"은 대체로 가장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전화를 안 받으면 정말 '뒈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사회부와 정치부처럼 발생(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들) 속보가 중요한 부서들 더더욱 그렇다. 카톡을 제때 안 보는 것은 "속 터지는 새끼. 하지만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카톡이 아닌 전화를 하는 경우는 좀 다르다. 특히 "고객님의 휴대폰이 꺼져있어..."로 시작하는 안내 음성이 나온다면 "뭐야 이 새끼??"가 되는 것이다. 주요 부서 기자들은 그래서 평일에 퇴근한 뒤에도 영화도 제대로 못 본다. 굳이 굳이 봐야겠다면 (내가 휴대전화 액정 불빛을 켜더라도 뒤에서 방해받는 사람이 없도록) 맨 뒷줄에 앉거나, (데스크들한테 전화가 온다면 즉시 뛰쳐나가 받을 수 있도록)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곤 한다.

이렇게 연락 안 되는 것이 용납 안 되는 직장이기 때문에 휴대전화 배터리는 항상 빵빵해야 한다. 성능 좋은 보조배터리들이 등장하면서는 아예 'always 충전 중'인 상태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2. 어딜 가든 콘센트부터 확인

1번의 연장선상에서다. 기자들은 기자실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의외로 카페에서도 일을 많이 한다. 사무실이라는 게 따로 없기 때문이다. 회사가 아닌 출입처로 출근하기 때문에 내 '나와바리' 안에만 있다면 어디에서 일하든 크게 터치 안 한다. 기자들이 선호하는 카페는 오래 있어도 눈치 안 보이는 규모이면서 취재원들과 통화하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소음이 있는 곳인 동시에, 무엇보다 '콘센트'가 많아야 한다. 노트북이나 핸드폰 배터리 나가면 굉장히 곤란해진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이 좋아하는 카페는 커피빈이 아닌 스타벅스일 수밖에 없다. 거의 사무실 수준으로 풍부한 콘센트에 무료 와이파이까지 있으니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급한 대로 들어간 카페에 콘센트라고는 단 하나, 그나마도 내 자리에서 먼 화분 뒤에 숨어있는 경우라면 낑낑대며 슬픈 표정으로 어떻게든 충전기를 끼워보려 애쓸 수밖에 없다.

일을 하다 보면 길바닥이나 남의 회사 건물, 지하철 등 말도 안 되는 각종 '바닥'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고쳐야 할 때도 있다. 특히 뻗치기(취재원을 무한정 기다리는 일)가 일상화된 부서에서는 복도 바닥, 건물 입구에 죽치고 앉아있는 게 일이다. 이 때에도 넋 놓고 앉아있는 게 아니라 계속 아까 풀어낸 워딩으로 그 자리에서 빨리 속보를 치고, 타사 단독기사가 뜨는지 끊임없이 확인을 하고, 안에서 들어오는 지시사항을 체크하고 등등의 일을 하다 보면 배터리가 아주 급속히 사라진다. 노트북을 험하게 다루며 하루 열 시간도 넘게 켜놓다 보니 배터리가 맛이 가서 사실상 '데스크탑' 수준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경우 많다. 야외에서는 화면을 밝게 해야 볼 수 있기 때문에 더하다. 웬만큼 접근 가능한 개방 콘센트는 대체로 '풀방'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타사 기자에게 "저기요... 저 잠시 10분만 충전 좀 해도 될까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날도 꽤나 많았다.



3. 데이터는 무조건 무제한

사내 사외를 합쳐 족히 10여 개에 이르는 카톡 감옥 속에 허우적대며, 이슈가 좀 있는 날에는 YTN 실시간 뉴스를 보며 '빨간 자막(중요한 속보)'을 계속 확인하고, 취재원이나 나와바리의 관련 SNS 계정을 습관처럼 확인하고, 폰만 켜면 네이버 뉴스에서 내 출입처 이름으로 나온 단독 기사나 발생사건이 있는지 검색 검색 또 검색... 뿐만 아니라 랜선이나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는 휴대전화 테더링이나 핫스팟이 필수다. 그래서 많은 기자들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쓰는 11GB짜리도 다 쓰고 나면 3G로 추가 사용이 가능한 요금제. 문제는 여기에 한 번 익숙해지면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도 데이터만 쓰고, 심지어 주말에 2시간짜리 영화도 스트리밍으로 거침없이 보는 좋지 않은 습관이 생긴다는 사실... 대한민국 기자들이 1년에 쓰는 총 전기량을 합하면 작은 화력발전소 하나쯤 되지 않을까. 



옛날에야 기사도 천천히 쓰고, 독자들도 천천히 읽고, 뉴스도 하루에 한 번만 있고, 원고는 손으로 썼으니 달랐겠지만 요새는 정말 전기 없으면 취재도 기사 작성도 송고도 못하는 세상이 됐다. 콘센트를 찾아 간절히 헤매거나 다 떨어져 가는 충전 게이지를 보며 가슴 졸일 때마다 '그냥 내 몸이 전기뱀장어라면...'하고 바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왕이면 한 번에 '지이잉' 하면 급속 충전시킬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고.....


#커버: 2016.1.3. V10. 전망은 좋지만 콘센트가 구석에 하나밖에 없어 자주 앉지 못했던 카페 '봄마다 푸름'의 통유리 창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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