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은 교육과 지식에서 나온다"
탄탄한 공교육만으로 높은 PISA 점수를 달성해냈다는 점에서, 핀란드의 교육정책은 전세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 우리나라는 모든 특목고를 없애버리겠다는 정부에 맞서 '4차산업혁명을 준비하려면 경쟁력이 필요하다'며 맞서는 이들로, 여전히 수월성 교육 논쟁이 뜨겁다. 평등(equality)를 강하게 지향하는 핀란드의 공교육과는 상극이다.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아주 존경받는 직업이다. 국가 건설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인정받는다. "교사는 대체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모든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더라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반드시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교사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사회에서는 이 역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방문한 헬싱키의 라우타사리 중등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 7~15세 대상)에는 아이들이 칠한 색색가지의 물고기로 가득한 벽이 있었다. 한가운데에 쓰여있던 문구 "우리는 서로 다른 물고기이지만, 이곳에서 함께 헤엄쳐요"에서 평등의 가치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고학년들은 숫자로 평가를 받지만, 저학년들은 서열화된 점수조차도 받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 숫자를 보고 자신이 이제 뭘 해야하는지 알 수 있겠냐"는 것이다. 줄세우기로 당신의 위치만을 알려주기는 대신,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더 많은 '피드백'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평가를 하기는 하지만 '숫자'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키워주는 모습은 곳곳에서 보인다. 종교(religion) 과목도 따로 있는데, 모두 같은 종교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학생 세 명만 모여도 새로운 수업을 조직할 수 있다. 종교가 없는 경우에는 윤리를 배운다.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물론 수업 중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발생하지만 그냥 둔다. "하지 말라고 하면 어차피 더 하고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핀란드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도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사회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도 중요한 교육목표다. 학교폭력은 '무관용'이 원칙이다. 특히 왕따 문제에 관해서는 KIVA라는 시스템을 모든 학교가 활용하고 있다. 라우타사리 학교의 경우 왕따관련 문제가 한 해에 4, 5건밖에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드물다. 성평등 교육도 세심하다. gender conscious teaching 이라고 부르는 교육방식은 차별적인 언어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드러나지 않게(hidden agenda)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을 부르거나 지시할 때 "girls! boy!"같은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 식으로 남녀 학생의 활동도 구분하지 않는다. 교사가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아이들도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공교육의 가치는 공간구성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물론 전문 건축설계사가 교사들과 협업해 디자인한 이 학교의 인테리어는, 여기에서도 상당히 모던하고 새로운 구성이다. 어쨌든 핀란드 공교육이 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 했다.
Satu Hakulinen 교장은 공간에 관련한 학교의 목표는 "아이들이 교실 하나하나가 아닌 '공간 전체'를 전부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의자와 책상은 그룹을 짓기 쉽도록 한 삼각형 모양이다.바퀴가 달려있어 옮기기도 쉽다. 벽을 따라 1인용 책상과 의자도 마련돼있다. 바닥이 둥근 스툴은 앉으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몸을 움직일 수 있어서 허리도 아프지 않고 굉장히 재미있다. 일부 교실들은 교실 두 개가 한 공간에 있고 가운데에 이동식 벽이나 커튼이 설치돼있다. 교사 재량에 따라, 또는 과목에 따라 두 공간을 나눌 수도, 분리할 수도 있다.
복도에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배려한 기구들이 많았다. 미니 도서관 앞에는 명랑한 색깔의 '완전히 열려있는' 공간과 '기어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동시에 마련했다. 계단식, 서랍식으로 되어있어서 아래를 당기면 쭉 늘어나는 스탠드나 거대한 빨간 해먹, 아래부분에 빈 공간을 만들어놓아서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기어들어가서' 아늑하게 놀 수 있는 디자인의 또 다른 스탠드처럼 말이다.
이런 디자인들은 최대한 학생들이 많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school on the move" 캠페인 때문이기도 하다. 건물 외부 운동장은 물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꾸며진 실내 체육관도 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사다리같은 것은 아이들이 당기면 쉽게 펼쳐지는 구조다. 음악교실도, 교회식 의자로만 채워진 우리나라와는 달리 의자를 자유롭게 들어 옮길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렇다면 다른 학교,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핀란드 사람들은 "핀란드인 모두가 교육 전문가"라고 할 정도로 정말로 교육에 관심이 많다. 교육문화부(Ministry of Education and Culture)는 지난해 전체 예산의 12%에 해당하는 65억4800만 유로를 땄다. 전체 부처 중 세 번째로 큰 규모다.
핀란드 공교육을 관통하는 철학은 단순하다.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의미다. 우선 배우는 개인의 일생에 걸쳐 천천히 변화하며(without shoking changes) 이뤄지는 평생교육을 의미한다. 교육시스템을 개발하고 개조하는 일 역시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울 수 있게, 특히 고등교육을 평생교육화 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직업교육의 경우 개인의 환경별로 아주 세부적,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교육부 사람들끼리 농담으로 "헤어디자이너 과정도 갈색 머리용, 검은머리용, 짧은 머리 전담, 긴머리 전담 디자이너 등등을 전부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할 정도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웰빙은 교육과 지식(education and knowledge)에서 나온다"는 철학에 기초해 정책(커리큘럼 가이드라인 링크)을 짠다. 외국의 많은 언론에서는 핀란드가 "기존의 과목구분을 모두 없애버렸다"고 쓰고 있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여러 과목들을 혼합해 넓히는 것이지 결코 기존의 과목개념을 없애버리는 건 아니라는것이다. 이를테면 미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면 미술과 영어 교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식이다. 모든 교육은 과목에 맞춰 재단되는 것이 아니라, 현상(phonomenon)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는, 대학진학률을 현재 30%대에서 2030년까지 5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핀란드의 대입은 우리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모든 대학, 모든 단과대가 서로 다른 시험을 요구하기 때문에, 개수로만 따지면 총 1700여개 종류의 시험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수시 제도가 말 그대로 '끝까지' 가면 현재의 핀란드와 비슷한 형태가 될 것이다. 물론 학교 입장에서야 가장 훌륭한 학생을 뽑을 수 있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수, 삼수를 하는 학생들이 꽤나 흔하다. 반드시 붙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한국처럼 공부에만 올인할 수도 없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나면 일부터 시작하고 시험공부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
핀란드는 공정과 평등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대학진학시험에도 적용하려 노력중이다. 하지만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 무조건 대학생 숫자를 늘리자는 건 아니다. 온라인 무료 대학강의를 제공하는 open university를 늘리려는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누구나 대학에서 제공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서비스다. 교육의 목적이 학위가 아니라 능력과 지식의 습득이라면, 자유로운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점에서는 실질적인 보완책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국 사태의 나비효과로 대입 정책이 '정시확대'로 난데없이 급선회했다. 겉으로는 비슷한 방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도 충분히 깊은 고민과 확고한 목표를 토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