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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Oct 26. 2019

대한민국 소주 100년 간단 스토리

KBS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야 '불금의 교양학'

네. 매주 KBS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야에서는 한국의 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요

지난주는  한국 위스키 100년 역사를 다뤄봤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일까요?


1)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네 오늘은 위스키의 친척, 근대 한국 소주의 역사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2) 간단하게 한국 소주의 유래에 대해 말씀을 해주실래요?

네 고려말에 몽골을 통해 소주의 증류 기술이 들어왔고, 조선시대에는 어마어마한 고급술이 소주였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중화를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 세계에서 증류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 되겠습니다. 세계 1등이죠. 증류주 소비로는.


3) 본격적인 대중 소주의 도입은 언제일까요?

이미 1900년 전에 일본과 합작한 소주 회사들이 생깁니다. 대표적인 소주는 조일 소주 등이 있었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소주는 정말 최고급이어서 연회 등에 사용하는 술이었습니다. 대중적인 소주의 등장은 1920년대로 봅니다. 이때 양조장이라는 체계가 성립이 되고, 우리나라의 오래된 양조장이 이때 많이 등장을 하죠., 약주까지 포함을 해서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지평 막걸리의 지평 양조장도 1926년 전후로 보고요. 진로소주와 무학소주도 1920년대 등장을 합니다. 결국 근대 양조장의 시작은 아쉽게도 일제 강점기 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양조장. 출처 산사원


4)이 당시 소주는 남북 어느 지역에서 많이 만들었나요?

네. 일제강점기에 쓰인 조선주조사라는 기록을 보면, 북쪽은 거의 60% 이상이 소주, 남쪽은 막걸리가 주류를 이뤘죠. 왜냐, 북한 쪽은 쌀 재배량이 남쪽이 비해 많지 않았죠. 조와 수수로 막걸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맛이 별로 안 좋은 거예요. 그것에 비해 남한은 호남평야부터 곡창지대가 많았잖아요. 그렇다 보니 곡물 맛이 좋은 쌀을 중심으로 한 막걸리가 발달하게 된 것이죠.


또 하나는 당시 중공업은 북쪽이, 경공업은 남쪽이 발달을 했는데, 이것은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 많은 공장을 북쪽에 세운 것에 근거하죠. 소주공장은 막걸리와 달리 자본집약적인 성격이 있는데, 그렇다 보니 북쪽에 발달을 하게 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5) 소주가 남한으로 오게 된 계기는 뭐죠?

해방 이후에 북에는 공산정권이 들어오다 보니 모든 것이 사회경제체제로 진행되잖아요. 국가가 운영하는 시스템이 되나 보니 많은 소주 양조인들이 또 월남을 하신 것도 있죠. 한국전쟁 때도 많이 내려오고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소주회사인 진로도 원래 평안도 용강의 회사였죠. 즉, 지금의 현대 한국 소주의 기원은 남쪽이라기보다는 북쪽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해요.


6) 지금은 없는 독특한 소주의 이름이 있었을 텐데?

삼미 소주, 백구 소주, 제비원 소주. 금성 소주, 금련 소주, 삼학소주 등이 있었죠.

그중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소주가 바로 목포의 삼학소주죠. 재계 1970년대에 66위까지 올라갔고,

한때 워낙 인기가 많아 가짜소주까지 돌 정도였죠. 창립자가 가수 남진 씨의 부친이기도 했죠.

하지만, 비운의 삼학소주라는 별명이 있지 않습니까?


삼학소주. 60년대 말 대한민국 1등 소주였다.  출처 두레앙


1971년 납세필증을 위조해서 적발을 당하고, 이후 탈세라는 명목 아래 3억 2천만 원을 추징당하고, 최종적으로 73년 부도 처리되죠. 너무나도 승승장구하던 회사가 급작스럽게 없어지자, 끊임없는 음모설이 나돌았는데. 바로 삼학소주가 호남이라는 이유로 괘씸죄에 걸려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배경은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했다는 이유였죠.


삼학소주 관계자는 음모설 등은 사실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했으나,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목포에서는 비운의 삼학소주라는 이름 아래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삼학소주 포스터. 출처 두레앙


7) 막걸리는 양조장이 1000여 개 가까이 되는데 소주 양조장이 지금은 10개 남짓이잖아요.

왜 소주 양조장은 막걸리 양조장에 비해 적은 것이죠?

1970년대 하면 새마을 운동 때잖아요? 그때 슬로건 중 하나가 빨리, 많이, 싸게라는 것 아닙니까?

소주 양조장이 여러 곳 있으면 세금 확보에 번거로운 일이 생기죠. 그래서 시도별로 하나씩만 허용하고,  생산량의 50%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게 했죠. 그래서 1970년대 200여 개의 소주 양조장이 다 통폐합이 됩니다.


실은 막걸리도 마찬가지죠. 왜 양조장 보면 합동 주조장이라고 되어있는 곳들이 다 이러한 곳들이죠.

대표적인 곳이 장수 막걸리를 만드는 서울탁주제주협회 등이죠. 당시 51개의 막걸리 양조장이 합친 곳이니까요. 또 생탁을 만드는 부산합동양조도 비슷한 개념이죠.  


다만, 소주는 시도단위에 1곳, 막걸리는 면단위마다 1곳으로 정해져서 막걸리는 훨씬 많이 남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양조장들이 통폐합된 것을 보고 효율은 좋아졌을지 모르나, 한국 술의 다양성이 이렇게 사라져 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8) 우리가 지금 마시는 소주는 주정에 물을 탄 희석식이잖아요. 언제부터 이랬나요?

일제강점기 시절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는 1965년도부터입니다. 바로 쌀로 술을 빚지 말라는 양곡관리법인데, 이때 많은 증류식 소주 양조장이 희석식으로 모두 바뀌게 돼요. 한마디로 전통 소주가 아예 명맥을 잃게 된 것이죠. 진로소주도 실은 이때 본격적으로 희석식 소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는 쌀소주, 보리소주, 찹쌀 소주 등등이 있었는데 아예 사라지게 되고, 겨우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민속주 부활운동이 생겨서 30년간의 암흑기를 끝내고 겨우겨우 세상에 등장을 하죠.


9) 80년대 관광 소주라고 있었는데 이것은 뭔가요?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뭔가 고급스러운 제품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일반 소주는 너무나도 조악한 디자인에 고급스러움은 전혀 없다 보니 외국인에게 보여주기 민망했던 것이죠.


그래서 나온 것이 관광업소용 소주입니다. 줄여서 관광 소주라고 불렸는데, 이것이 어디 관광 가면 꼭 사 오시는 술 중 하나였죠. 가격이 일반 소주에 비해 3배 정도 비쌌는데, 내용물은 똑같았죠.

오직 병만 고급스러운 사각 디자인이었죠. 병값만 다르다 보니 관광 소주만 가격이 높았다는 조금 웃픈 역사를 가진 술이기도 합니다.


   <출처 하루 한 곳 여행하고 추억 만들기 여니워니마미 >



10) 요즘은 보통 소주병이 360ml거의 하나인 느낌인데 예전에는 병도 다양했어요?

그렇죠. 일단... 소주.. 됫병이 있었습니다. 1.8리터 소주병 ㅎㅎ

한 손으로 절대 따를 수 없는 머리와 끝을 모두 잡고 따라야 하는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제품이 있었죠.

하지만, 이러한 제품도, 결국은 획일화되가는 모습에 따라 사라지게 되죠.


11) 소주 됫병이 맞나요? 댓병이 맞나요?

둘 다 맞을 수 있습니다. 되는 부피를 나타내는 것으로 1.8L를 나타내죠.

소주 1홉은 180ml, 되(升)는 1.8L, 말(斗)은 18L를 뜻하는 것이죠.

그래서 1.8L 병이 됫병인 것은 맞습니다.


다만, 이러한 됫병을 일본에서는 한자로 대병(大瓶)이라고 합니다.

이 음을 따온 것이 유래가 된다면 댓병또한 맞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홉, 되, 말이 모두 일본에서도 사용한 표현이고, 그 계량형도 일본 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도 여전히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소주병 송학, 제비원 안동소주 등

 


12) 초록색병 소주는 언제 나왔나요?

네. 강원도의 소주 회사 경월에서 나온 그린 소주가 히트를 치면서 다른 소주 업체들이 같이 이 초록색병을 쓰게 됩니다. 그러면서 2000년대 들어와서는 자연스럽게 대부분 초록색병을 사용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소주업체들이 2003년에 병을 함께 쓰자고 결정을 했고, 2009년에 아예 디자인도 하나로 통일을 하자고 해서 현재 소주병은 공용병으로 평균 8~9회 정도 재사용되고 있죠.

특히 1.8리터 소주 됫병은 2003년도 이후 급속도로 사라지게 됩니다. 추억의 됫병이 무척 아쉽기도 하죠.


무엇보다 이 초록색병이 가장 저렴하기도 합니다.

 

경월의 그린 소주


13) 예전에는 소주 도수도 다양했죠?

1920년대 나온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35도였죠. 1970년대 25도 정도로 바뀌면서 최근에는 대부분 20도 이하잖아요. 가장 낮은 것으로는 13도짜리도 있죠. 물론 이것은 과일소주라고 불리는 리큐르지만.

제가 20대였던 90년대에는 25도의 도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 듯해요.


다만, 예전에는 소주 도수가 높아서 화재가 나기도 했어요. 지금과는 달리 열차에서 흡연이 가능했을 때 깨진 소주병에 담뱃재가 떨어져 화재가 났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리고 마시고 사망하는 일도 정말 많았죠.도수가 낮아진 지금은 적어진 일이죠.


14) 왜 이렇게 도수가 낮아지는 것일까요?

세계 그 어느냐라도 우리나라처럼 음식과 증류주를 먹는 나라는 드물거든요. 대부분 맥주, 와인, 청주 이렇게 되는데. 그런데 도수가 너무 높으면 음식하고 먹기 불편해요. 음식과 맞는 도수가 되려면 발효주의 도수가 돼야 하는 거죠. 20도 이하. 그래서 천천히 이 발효주의 도수에 맞춰가는 것이라고 저는 보고요.


그래서 소주가 도수가 낮아지면서 청주, 약주 등의 전통 발효주의 시장이 계속 작아지고 있어요.

소주가 다 차지한 것이죠. 아니면 소맥으로 가거나. 소맥이 10도 전후, 소주가 17도 전후거든요.

결국 음식과 잘 맞는 도수로 가기 때문에 이렇게 낮아진 것이라고 현재 청주와 약주를 마시지 않는 이유는 소주의 도수 저하로 굳이 청주나 약주를 마시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15) 예전에 소주 빈병은 엿도 바꿔먹고 했는데 지금은 얼마인가요?

네. 2016년도까지만 해도 40원이었는데요. 지금은 100원입니다. 꼭 소주병 돌려주시면 100원 다시 보증금이 되고, 참고로 맥주병은 130원입니다. 이것 가지고 병 테크를 하시는 분도 계시죠.


16) 한국 소주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일까요?

결론적으로 국산 농산물 비율이 지극히 낮습니다. 일부 잉여 농산물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죠. 이 부분이 한국 소주가 전통주로 인정을 못 받는 부분이죠.  


17)네 오늘은 어떤 노래일까요?

소주는 중장년층부터 젊은 세대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술이지 않습니까? 60년대 곡이지만 아직도 사랑받는 곡. 아이유와 최백호 씨가 부른 낭만에 대해서 한번 신청해 봤습니다.




그 외 대한민국 소주병의 재활용 역사 및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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