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염병이라고 한다면 아마 흑사병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대 로마의 멸망을 부추긴 것도, 그리고 원나라의 흥망성쇠도 이 흑사병에 연관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특히 14세기에 본격적으로 유럽을 덮치는데, 당시 유럽인 구이 1/3 이상이 이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언제나 그렇치만 힘든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는 법. 그래서 종교인들은 끊임없이 회개를 요구하며, 더욱 함께 모여 기도하기만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먼저 흑사병에 걸린 것은 바로 종교인.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에만 의지해서는 안된다고 느꼈으며, 인권의 성장으로 시대가 바뀐 것이 르네상스의 시작이다.
흑사병 지도. 녹색이 흑사병 피해가 적었던 곳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특히 14세기 영국에서는 11세기 프랑스 산하의 노르망디 공국의 점령으로 프랑스어가 성직자 및 상류층의 언어로 사용되게 되었는데, 흑사병을 계기로 다수의 성직자들이 사망하게 되어 영어가 영국의 국어로 등장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베네치아에서는 외부에서 온 배는 40일간 부두에 정박해 있어야 했는데, 이탈리아어의 '40'을 뜻하는 「quaranta」에서 「quarantine(검역)」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 유럽의 약술도 이때 본격적으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바로 흑사병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제였다. 바로 증류주에 다양한 약재를 넣기 시작했던 것. 당시 수도원에서는 이러한 술을 불노불사의 술, 지금은 엘릭서(ELIXIR)라고 불리는 약술이었다. 다만, 이 흑사병의 원인이 쥐에 붙어 있는 벼룩이라는 것을 모른 채 치료를 했으니 쉽게 흑사병은 사드라들지 않았다.
폴란드 보드카 레오파드
그런데, 술을 마시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흑사병을 이겨낸 나라가 있었다. 보드카의 원조라고 불리는 폴란드다. 폴란드는 독특한 문화가 하나 있었는데, 증류주로 겨드랑이와 발, 손 등 몸을 소독하는 것이었다. 또한 몸뿐만이 아닌 다른 것도 세척했는데, 가족끼리 늘 함께 즐기는 식기 및 가구 등 모두의 손이 자두 닿는 곳을 세척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도시 위주로 발달한 서유럽과 달리 야생림이 많이 남아 흑사병의 원인인 쥐를 잡아먹을 수 있는 늑대 및 맹금류 등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폴란드는 흑사병이라는 유럽 속에 한줄기 희망으로 보이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흑사병은 인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흑사병에 있어서 유대인의 희생자가 적은 편이었는데, 이러한 핑계로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소문이 퍼져 박해 및 학살이 일어난 것이다. 유대인의 피해가 적었던 것은 미츠바(mitzvoth)라는 엄격한 규율 속에서 중세 기독교인 보터 위생적이었다는 것과 일반 기독교에 격리된 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결국, 흑사병은 19세기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흑사병의 발병 원인이 밝혀졌고, 이후 페니실린 등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흑사병은 점점 인류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상당히 완치가 가능한 수준까지 왔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모든 국민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가장 확실한 것은 바로 위생과 소독이라는 것. 그것을 중시한 폴란드의 사례로 이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