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부모님이 술 심부름을 시키면 늘 가는 곳이 있었다. 거리도 가깝고 사장님과 나름 안면도 있는 곳인 동네 구멍가게였다. 세월이 지나 이제 동네 구멍가게는 상당수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편의점이 자리 잡았다. 이러한 편의점에서 이제 스마트폰으로 주류 주문이 가능해진다. 국세청에서 지난 9일, 주류 판매점(식당, 마트, 소매점 등) 대상으로 다음 달 3일부터 '스마트오더'라는 온라인 주류 판매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기존에는 전통주만 인터넷 판매가 되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주류의 온라인 주문이 가능해진 것이다. 단, 제품 수령은 자택이 아닌 편의점 등의 소매점이다. 안 바뀐 듯 바뀐 이 상황에서 시장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코로나 19 시대, 늘어나는 편의점 매출
80년대 구멍가게를 재현해 놓은 모습. 영화 1987의 연희네 슈퍼 모습
2010년 이후, 편의점은 혼술, 홈술의 메카가 되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편의점을 갔다면, 이제는 주목받는 주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수입맥주 4캔에 1만 원 행사가 전국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이제는 맥주뿐만이 아닌, 작은 사이즈의 혼술용 와인으로도 영역이 넓어졌다. 여기에 사케, 위스키, 보드카, 진(Gin)에 막걸리 등 기존의 술이 아닌 다양성적인 측면도 확대 중이다. 무엇보다 애주가 입장에서 편의점이 가장 좋은 것은 간단한 안줏거리를 바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좀 멀고, 음식을 사려면 한참 매장 내를 돌아야 하는 대형마트와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편의점의 주류 매출을 상승시켰다. CU에 따르면 2월 8일부터 3월 9일까지 판매된 소주와 맥주는 전년 동기보다 13.6%, 7.9% 증가했다. GS25 역시 10~20% 성장세를 보였다. 중요한 것은 주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포장된 요리형 안주부터, 냉동만두, 마른안주 등 관련 매출도 전년대비 10~30% 올랐다는 것이다. 만약 온라인에서 주류를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수령하는 시장이 커진다면, 다양한 매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마트에서 주류 주문 가능한 시대, 레어템 많은 수입주류 기회
그렇다면 이렇게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제품은 어떤 제품일까? 일반적인 소주 및 맥주가 될까? 아마도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기존의 편의점에서 자주 못 봤던 레어템들이 주목을 끌 가능성이 크다. 멀리는 남대문 주류 상가부터 백화점 내 주류전문매장, 주류전문 소매점 등에 가야 겨우 찾을 수 있을 수 있는 제품이다. 중요한 것은 재고가 있는지 하나하나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했다는 것. 하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그러한 수고가 적어질 수 있다. 또, 연말연시, 기념일 등에 특별한 술이 필요하다면 굳이 멀리 갈 필요 없이 퇴근길에 받아오면 되는 것이다.
해외 위스키 온라인 사이트. 출처 www.thewhiskyexchange.com
주류 온라인 플랫폼 생길 수 있어
이번에 개정된 법 개정 내용만 본다면, 일반 개인 소매점, 레스토랑, 마트 등도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이 기존에 있는 편의점과 오프라인 판매 채널만 있는 일반 개인 소매점과는 체급의 격차가 너무 크다. 편의점은 GS25만 해도 작년 12월 기준으로 1만 3899개, CU는 11월 말 기준으로 1만 3820개, 세븐일레븐은 9880여 개다. 전국 방방곡곡의 4만여 곳의 편의점에서 물건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개인 소매점은 경쟁에서 이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전국의 소매점을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 새로운 비즈니스로 등장할 수 있다.
온라인 마켓 업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전통주 전문 유통기업 부국상사의 김보성 대표는 "이미 대형 온라인 마켓에서는 편의점에서 주류를 배송받을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착수하였다"라고 말하였으며, 청산녹수의 송충성 이사는"전국의 어느 편의점에서 수령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실질적인 모든 주류 온라인 판매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하였다.
일본의 편의점은 기본적으로 200종류 가까이 술을 구비하고 있다. 술을 사면 부대적인 먹거리 매출도 오르기 때문이다.
혼술의 성장세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일본 편의점 시장
편의점의 주류시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장이 일본이다. 현재 일본의 편의점은 2018년 기준으로 56,000여 개로. 약 2만여 가명점이 있는 세븐일레븐 재팬이 1위다. 한국과 달리 매장 크기가 큰 일본의 편의점은 다양한 음식 및 잡지 등 작은 마트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1인 홈술, 혼술 시장을 위해 다양한 술을 준비해 놓는다는 것. 그것도 100ml의 아주 작은 용량부터 2리터 급의 대용량까지 준비되어 있다.
세븐일레븐 재팬은 2012년부터 홈술과 혼술의 트렌드에 맞춰 전용 냉장고 케이스를 2개에서 3개로 늘리고, 맥주 및 와인, 그리고 사케 등 50% 제품 종류 확대를 진행했다. 주류 전체 매출은 5% 정도지만, 고객의 30% 이상이 다른 제품도 함께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일본의 다른 편의점도 이 트렌드를 따라갔고, 현재 주요 일본 편의점의 주류 종류는 200여 종에 가까운 상황이다. 한국과 달리 매장 크기가 큰 일본의 편의점은 다양한 음식 및 잡지 등 작은 마트의 역할도 함께 하고
일본 최대 쇼핑몰 락텐 이치바와 편의점의 제휴. 각 편의점으로 택배를 보내준다는 내용이다.
편의점에서 수령, 자리 잡은 일본 시장
일본에서도 편의점에서 택배 물품을 수령하는 경우가 일상화되었다. 1인 가구의 경우 도난 및 파손 등으로 집 앞에 택배 물건을 놓기가 애매한 상황이 많았던 것이다. 편의점은 대형 쇼핑몰과 제휴, 집 앞의 편의점에 택배를 수령할 수 있게 진행하였고, 고객의 구매를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한국의 경우 대형 온라인 서점 등과 제휴를 통해 책 배송 서비스는 진행되는데, 이번에 주류도 추가되었으며, 매장의 규모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푸드 비즈니스랩 문정훈 교수는 기존에도 온라인에서 예약하고 편의점에서 수령하는 시스템은 있었지만, 정작 수령할 때는 고객들의 노쇼가 많았다며, 온라인상에서 완전 결제를 통해 이러한 부분이 사라지면, 주류 마케팅 영역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하였다.
실효성 관련하여
이 법에 관련하여 회의적인 시각들도 있다. 실질적으로 배달도 안 해주는 편의점 온라인 주문이 무슨 의미가 있냐라는 것이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의 이대형 박사는 집까지 배달을 안 하는 것이라면 반 쪽짜리 효과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너무 자본집약적인 업체들에게만 유리한 구조라는 지적도 있다. 대형 온라인 마켓 및 대기업 매장만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발표한 개정안을 보면 모든 주류 유통 소매점(소매점, 음식점) 등도 이러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정보가 한 곳에 모여 있지 않아 소비자가 사이트를 찾아다녀야 한다. 또, 전국망이 아닌 만큼, 수령을 할 때도 먼 곳에서 가야 할 수 있다. 아니면 또 택배를 보내야 한다.
규모의 경제를 가진 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 개정안
이번 개정안은 다양한 온라인 주류 판매채널의 확장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명절에는 전통주 특별전을 진행할 수 있고, 기념일에 맞춰 특별한 와인도 편의점에서 주문할 수 있다. 위해 온라인 판매를 위해서는 제품 사진은 물론, 제품 개요, 맛 표현, 나아가 잘 맞는 음식도 같이 소개가 될 것이다. 기존에 연예인 위주의 자극적인 광고 콘텐츠가, 이제는 꼼꼼히 읽고 구입하는 세심한 콘텐츠로 이동, 마시고 취하는 시장에서, 맛이 음미하는 시장으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편의점 고객이 많아져 부대 매출이 늘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여전히 규모의 경제를 가진 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 소규모 양조장 및 주류 업체, 전통주 업계도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가치 있는 비즈니스가 더욱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