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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Apr 04. 2020

봄처럼 예쁜 술,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

수능에 자주 나오는 고려시대의 유명한 문인이 있다.  술을 너무 좋아해 청주(淸酒)를 주인공으로 가전체 소설(국선생전)을 쓴 이규보이다. 그는 계절과 연관되는 시도 자주 썼는데, 대표적으로 꽃샘추위를 소개한 '꽃샘바람'이다.  주요 구절로는  "꽃 필 땐 광풍도 바람도 많으니 사람들 이것을 꽃샘바람이라 한다.'(花時多顚風 人道是妬花(화시다전풍 인도시투화) , 꽃이 떨어져도 열매가 생기며 꽃을 대신한다(有實必代華유실 필대화)'등이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꽃잎이 떨어지더라도, 그 떨어진 꽃잎 자리에서 열매가 생긴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애주가답게 '술잔을 잡고 노래를 부르자(把杯且高歌 파배차고가)'라고 마무리를 한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지는 내용으로는 도대체 어떤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자라는 부분이다. 당시에 과연 봄날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술이 있었을까? 



고려 고종 때 나온 최초의 경기체가인 한림별곡(翰林別曲)에는 그 힌트가 나온다. 한림별곡은 한림의 유생들이 지은 노래로 여기에 당시 유명한 술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등장한 술 이름으로는 잣을 이용한 술로 보이는 백자주, 솔잎을 이용한 송례주, 대나무 잎을 이용한 죽엽주, 오가피주, 그리고 이화주다. 여기에 앵무잔이라는 앵무새의 부리 모양을 한 잔에 마시자고 한다. 이 중 가장 지금의 계절과 맞는 술이 있는데, 바로 봄을 피는 꽃의 이름을 딴 이화주(梨花酒)다. 배 이(梨), 꽃 화(花)를 쓰는 이 술은 특별히 배꽃을 넣는 술이 아닌, 새봄에 새하얀 배꽃이 필 무렵 빚어서 마시는 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빚어진 술이 배꽃처럼 새하얗기에 이화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봄에 핀 배꽃


이화주에 대한 구체적인 레시피는 조선 건국 이후에 등장한다. 최초의 기록은 1459년 어의였던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서’라고 불리는 이 책은 2001년 청계천 8가 고서점 폐지 더미 속에서 발견이 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최고(最古) 조리서는 『수운잡방()』으로 알려졌으나, 우연한 발견으로 역전이 된 것이다. 이후 17세기 안동 장 씨가 며느리와 딸에게 전수할 음식과 술 빚는 법을 알리기 위한 음식디미방, 주방문, 요록, 산림경제 등 다수의 조리서와 실학 서적에 등장한다. 



이화주 만드는 과정


이화주는 귀여운 모양을 하고 있지만, 만드는 과정은 무척 고단하다. 일단 이화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멍 떡이라는 도넛 모양의 떡을 삶아야 하며, 이후 이화곡이라는 달걀 모양의 귀여운 쌀누룩을 손으로 꾹꾹 눌러서 만들어야 한다. 이후 서로 삶아진 구멍 떡과 이화 곡을 섞어 놓고 2주 전후로 발효하면 어느 정도 완성이 된다. 이 과정까지 반고체 상태의 술덧을 계속 잘 저어줘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발효가 잘 된 이화주는 풍부한 과실 향을 머금으며 요구르트와 같은 떠먹는 스타일의 술이 된다. 물을 거의 넣치않았기에 반고체 상태의 신기한 술이 되는 것이다.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


그래서 이 술은 무척 귀한 술이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식감을 가졌던 만큼 나이 드신 노인 분과 당시에는 어린아이도 먹던  간식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여기에 딸이 시집을 가면 시댁과 같이 먹으라는 이바지 음식으로도 사용되었다. 시원한 여름에는 물에 타서 먹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 문화가 바꿔서 트렌드 세터들은 크래커에 발라 먹기도 하며, 딸기 등을 찍어먹기도 한다. 취향에 따라 즐기는 것뿐, 특별히 정해진 공식은 없다는 것이 정확한 답일 것이다. 이규보는 자신의 서사시 문집인 동국 이상국 집에서 이화주를 동지에서 105일 지난, 한식일, 양력으로 따지면 4월 5일 식목일에 먹자고 한다.  즉 뼛속까지 봄의 술인 것이 지금의 이화주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국민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 알고 보면 이 모든 것이 봄이 오는 것을 시 셈하던 꽃샘추위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강풍이 불어 꽃잎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규보의 시처럼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질 것이고, 시원한 술 한잔 하며 노래를 부를 날이 곧 오지 않나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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