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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Sep 26. 2020

최악의 주도는 안줏발?

100년 전 한국의 음주문화를 생각하며


우리 술의 역사에서 가장 궁금한 시기는 일제 강점기 시대다. 한국의 술 문화와 제도가 일제에 의해 요동을 치고, 새로운 술들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저 막걸리나 마실 듯한 시대상이지만 의외로 주종은 다양했다. 1930년대 초에는 일본 기린맥주와 삿포로 맥주가 영등포에 공장을 세우고, 포항에서는 산토리가 포도를 재배,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다. 안동소주는 흑국균을 이용, 본격적으로 해외 수출까지 하고, 의외로 위스키도 한국에서 판매를 한다. 당시 맥주는 저장할 냉장고가 없다 보니 우물 속에 넣어놓고 마시라고도했으며, 흔히 짝이라고 불리는 전용 맥주 상자가 없었던 시절이라 왕겨를 넣어 병을  보호했다.


별건곤 창간호.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그런데,  이 시절에도 술의 풍류를 즐기는 문화가 있었을까? 의외로 흥미로운 자료가 남아있다. 별건곤에  게재된 주국헌법(酒国憲法)이다. 별건곤은 1926년부터 1934년까지 발행된 대중적인 종합 잡지로, 여기서의 건곤은 천지라는 뜻으로 별건곤은 별천지, 별세계, 특이한 세계 등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특권 상위층에게만 향유되던 근대적 교양과 문화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100년 전에 생각한 최악의 주도란?

주국(酒国)이란 말 그대로 술의 나라. 한마디로 좋은 주도와 나쁜 주도를 설명한 글이다. 특히 나쁜 주도를 십불출이라고 하며 기록해 놨다. 대표적으로는 ‘술 잘 안 먹고 안주만 먹는 것’, ‘남의 술에 자기 자랑하는 것’, 술 먹고 따를 줄 모르는 것‘, ’ 상갓집 술 먹고 노래하는 것‘, ’ 남의 술만 얻어먹고 제 술값은 안내는 것‘, ’ 남의 술자리에 자기 친구 데리고 오는 것‘, ’ 술자리에서 인사를 길게 하는 것‘ 등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국 술자리의 얄미운 행동은 같았던 것이다.


100년 전에 생각한 술마시기 좋은 때란?

더불어 술 마시기 좋은 때도 소개해 놨다. 이 부분은 오히려 지금보다 오히려 낭만적이라는 평가다.  ‘천리 타향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비낀 바람에 가랑비 내리는 저녁때’, ‘눈이 하얗게 내린 달밤’, ‘꽃이 피거나 잎이 떨어질 때’ 등이 대표적인 술 마시기 좋은 때다. 여기에 그리고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우울하거나 슬플 때’와 ‘통쾌하고 흥분되는 날’도 마시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국헌법. 출처 한국인의 술문화

일제 강점기 시절의 한국의 전통주는 가장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한국 문화에 대해 이해가 없었던 일제는 어머님들이 집에서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를 금지시키고, 획일적인 술 제도를 만들었고, 오직 일본식 청주인 사케 방식으로 만들어야 청주라를 이름을 쓰게 했다.


주국헙법이 게재된 월간지 별건곤은 결국 1934년 폐간당한다. 당시 한국의 전통주 문화는 일본의 주세법에 의해 계속 사라져 가고 있었던 상황.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주국 헌법은 우리 술의 낭만을 보여준 마지막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PS:우리나라는 주도라는 단어는 전통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오히려 무도, 다도 등 일제의 표현에 가깝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기에 이해도를 높이고자 이번 글에는 소개해봤습니다. 참고로 저는 늘 술자리에서 안줏발을 세우는 사람이랍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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