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실은 나는 술을 마냥 좋아하지는 않았다. 젊은 시절 선배와의 술자리, 직장 상사와의 회식이 언제나 불편했기 때문. 지금이야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 있다. 도대체 뭐가 그리도 싫었을까?
그래서 내친김에 정리해 봤다. 내가 회식을 싫어했던 이유를~~ㅡ.ㅡ
술은 왜 통일시키는데??
90년 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당시 개인적으로 마시던 술도 나름 있었다. 난 치킨과 생맥을 좋아했고, 청하 등도 조금씩 마시곤 했다. 하지만 회식 때만큼은 이상하게 이러한 술들이 허용되지 않았다. 오직 소주만 허용되었던 시대. 다른 술을 시키면 왜 너만 잘났냐고 욕만 얻어먹던 시절. 뭐든지 하나로 통일해야 했으며, 개인의 취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 이렇다 보니 회식은 늘 힘들기만 한 곤욕이었다.
특히 소주 먹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도수도 25도 내외로 높았던 시절. 도대체 이 술을 왜 다들 좋다고 마시는지, 실은 지금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ㅋ
사진 위키피디아
술도 강제로 먹임
술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그나마 낫다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곤욕은 건배하는 대로 계속 마셔야 했다는 것. 즉 내 페이스대로 술을 마실 수 없는 것이었다. 소주를 따르고 다 마시지 못하면 선배나 상사의 욕받이를 할 각오를 해야 했다. 회식 분위기를 깬다는 나쁜 놈으로 몰리기도 했다. 회식은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는 폭력과 같은 존재였으며, 회식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의 눈치만을 봐야 했다.
집에도 못 가게 함
이렇게 힘들게 술을 먹는 회식이 즐거울 리는 없다. 그렇다 보면 늘 집에 언제 가야 하나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슬쩍 일어나는 경우에는 바로 앉아라! 하는 선배의 불호령이 기다리고 있다. 빈 의자를 보면 흥이 깨진다는 이유. 그리고 아직 덜 취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다가 끝까지 가려고 하면 폭력이라도 쓸 듯했다. 같이 화라도 내면 술자리 분위기는 최악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역적이 된다.
격해지는 꼰대질, 생색의 대마왕
서로 좋아하고 격려만 해주는 회식이라면 때때로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의 회식은 그 반대가 더 많았다.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고, 감정이 격해지면서 강압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언제나 신사 같았던 사람도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여기에 얼마나 또 생색은 내는지. 들어주기가 참 힘듦의 연속이었다. 술은 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민낯은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본다.
허용되지 않은 늦은 출근
가장 힘들었던 회식은 상사가 집에 못 가게 하면서, 새벽 내내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그리고 아침 출근은 정확한 시간 내 하라는 것. 행여나 늦기라고 하면,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등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결국 말단 사원의 회식 시간은 노동시간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함께 놀았던 것이라고 스스로 착각한다.
하지만 나는 회식에서 한 번도 논적이 없다. 오히려 술 따라주고, 음식 챙기는 등 노동은 회식의 강도가 가장 셌다.
팔아야 하는 영혼
회식 자리에서 또 해야 하는 것이 선배는 멋있고, 상사는 존경한다는 입 발린 소리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것을 안 하면 은근히 기분 나빠하는 상사가 꽤나 있었다.
한마디로 회식은 회사 대표나 상사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자리. 말단 사원 입장에서는 편할 것이 없다. 결국 회식을 하는 동안 내내 내 멘탈은 피폐해져만 갔다.
건배사는 또 뭐니?
나이가 조금씩 들수록 건배사를 하라고 자주 시켰다. 술을 들고 무슨 말을 하라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할 말도 없고, 술 취한 상태에서 말해봐야 별 의미도 없다. 여기에 재미있는 건배사라도 해야지 그날의 인싸가 되는 부담감은 나를 저세상으로 보내버렸다. 정말 할 말 없으면 '위하여!!'라도 외쳐야 했다는 것. 도대체 뭐를 위하는지는 아직도 정말 모르겠다.
야근 수당도 안주면서!!
이렇게 죽어라 회식 때 일을 해도 절대로 인정받지 않는 것이 야근 수당이다. 실컷 마시기 싫은 술 마시며, 열심히 맞춰주면서 감정 노동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피곤함뿐. ㅎ
그래도 지금의 일을 하는 이유
결국 내가 술 관련 일을 하는 이유는 술의 모습이 이렇게 과음과 권위의 획일적인 모습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술에 내 페이스대로 마실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즐길 수 있다면, 이것 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의 회식은 취향을 반영하여 즐기고 싶은 술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문화가 커진다고 한다. 90년 대를 생각하면 많이발전했다고 본다.
여기에 사람과 사회, 그리고 역사와 문화, 여행과 인문학으로도 이어지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