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와인만큼 주목받은 술이 있다면 아마 수제 맥주라고 불리는 컬래버 맥주일 것이다. 컬래버 맥주라고 하는 이유는 주로 대기업과 중소 맥주 양조장의 협업 작품이기 때문. 또, 수제라고 하기에는 이미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제품이기에 '수제'라고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제품이 곰표 맥주, 말표 맥주, 유동 골뱅이 맥주, 백양 맥주, 금성 맥주, 최근에 등장한 캬~ 맥주 등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품이 왜 이렇게 급작스럽게 늘 수 있었는가? 그리고 왜 이전에는 이런 제품이 없었을까?
주세법의 변화, 수제 맥주의 가격을 내리다.
일단 2020년부터 수제 맥주의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금체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맥주 세금 체계는 종가세. 가격에 세금이 붙는 구조였다. 이러한 종가세는 원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또 R&D 비용이 많이 들면 들수록 세금도 더 많이 내는 구조였다. 모두 원가에 반영되니 세금이 올라가고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소품종 대량생산에 유리한 대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세법이다.
이러한 종가세가 종량세로 바뀐다. 말 그대로 술의 용량에 따라서 세금이 붙는 구조. 좋은 원료를 사용하거나 디자인 등에 비용을 들이더라도 세금이 추가로 붙는 것은 없어졌다. 이것으로
비싼 맥주 영역에 있던 수제 맥주들이 가격을 낮추기 시작한다. 즉, 대기업보다는 제품 하나하나의 가치를 담은 제품은 이러한 종량세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이후 편의점에서는 4,000원 이상이던 맥주를 3,000원 전후로 팔기 시작했다. 4캔에 1만 원 행사에 동참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4캔에 1만 원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제 맥주라고 부르는 컬래버 맥주. 실제로 수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다. 출처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아차산 날밤클럽
일본 맥주가 비워놓은 냉장고 매대, 그것을 채운 수제(컬래버 맥주) 맥주
수제 맥주(컬래버 맥주) 입장에서 운이 좋았던 것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일본 맥주 불매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전까지 수입 맥주 1위는 아사히, 그리고 기린 맥주도 4~5위 정도는 유지했다. 탑스타 등도 광고 모델로 많이 등장하면서 TV광고도 매우 적극적으로 했다. 전체 수입 맥주의 30%는 차지했었고 편의점에서의 위상은 더욱 대단했다. 하지만, 이 일본 맥주가 빠지면서 냉장고의 맥주 매대가 비기 시작한다. 이곳을 수제 맥주(컬래버 맥주)가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드디어 4캔에 1만 원 행사에 동참한다.
하지만 정말로 수제를 추구하는 작은 맥주 양조장은 자사 제품을 넣지 못했다. 전국의 편의점에 넣기 위해서는 수억,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고, 또 냉장고 매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높이와 넓이의 제품이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결국 이것을 할 수 있는 곳은 정형화된 캔 시설을 갖춘 거대한 설비가 있는 대규모 맥주 공장. 그나마 코로나 전에는 이태원이나 경리단길 등 힙한 곳에서 판매가 가능했다. 하지만 해당 상권이 무너지면서 작은 업체들은 아예 판로가 막혀버린다. 이것으로 수제 맥주 업체들 사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하게 된다. 결국 거액이 있어야 성공하는 기간산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완화된 맥주 OEM 규제. OB맥주도 하이트 공장에서 만들 수 있다.
기존에 맥주 산업에 있어서 국내 OEM은 거의 없었다. 해외로 자사 브랜드를 지우고 수출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지만, 다양한 세금 및 국민 건강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주류 산업은 그야말로 대표적인 규제산업이었다. 하지만, 2020년 5월에 발표된 국세청의 주류 규제완화에 따라 같은 주류 면허를 가진 곳끼리는 OEM이 가능해졌다.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도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만 있으면 대기업 맥주 공장을 활용하여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자사 브랜드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 산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곳이 롯데칠성이다. 클라우드 등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지만, 코로나 등으로 공장 가동률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중견 맥주 양조장과 협업, 현재 히트치는 대다수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곰표 맥주, 유동 골뱅이 맥주, 쥬시후레쉬맥주 등이다. 여기에 백양 맥주는 OB 맥주에서 생산하고 있다. 결국 기획은 중견 양조장이, 생산은 대기업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제 맥주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이러한 부분에 있다.
꾸준한 4캔의 1만 원 맥주 행사. 홈술 영역 든든 지원
2010년 대 들어서 최초의 맥주 붐은 실은 수입 맥주였다. 일본 맥주는 물론 독일, 벨기에, 체코, 미국, 싱가포르, 필리핀, 중국 맥주까지 다양하게 들어오면서 4캔에 1만 원 행사가 홈술 시장을 꽉 잡았었다. 덕분에 편의점 맥주는 이 행사를 꾸준히 유지하며 여기에 수제 맥주(컬래버 맥주)가 들어간 것뿐이다.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외식, 회식 등이 줄면서 홈술 문화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을 잘 탔다고 볼 수 있다.
수제 맥주 붐이 남긴 과제
2010년 수입맥주, 크래프트 맥주, 이제는 수제 맥주(컬래버 맥주)로 유행을 이어오고 있는 맥주 산업은 앞으로가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소비층이 다양해지면서 맥주 미식가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수제 맥주(컬래버 맥주)는 맛보다는 이미지와 콘셉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이미지 마케팅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곧 소비자가 식상해 할 수 있다. 오히려 콘셉트보다는 오히려 맛과 향에 집중을 하면서 팬을 키워가는 것이 맞지 않나란 생각이 든다.
컬래버 맥주이후에는 어떤 맥주가 나올까? 개인적인 바람은 우리 맥아, 우리 농산물로 만든 맥주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현재 나오는 맥주 원료는 99%가 다 수입이기 때문이다.
국산 농산물을 통해 작은 양조장과 대형 양조장 모두가 상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작은 양조장의 제품은 가치 소비로, 대형 양조장의 경우는 일상의 술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