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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an 31. 2019

1병에 3억 원, 일본 위스키의 성공 비결은?

장인정신과 마케팅의 결합, 일본 위스키

1병에 3억 원이 넘는 가격으로 낙찰을 받은 산토리 위스키 야마자키 50년

작년 이맘때 홍콩에서는 흥미로운 경매가 있었다. 바로 일본 위스키에 대한 경매였다. 해당 제품은 2011년 산토리 주류에서 출시한  싱글 몰트 야마자키 위스키 50년 숙성. 150병만 한정 출시한 제품으로 알코올 도수 56도의  위스키 원액이었다. 주류 경매는 프랑스의 와인 및 코냑,  스코틀랜드의 위스키가 최고가 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무리 일본 위스키가 떠오르는 별이라고 해도, 억대의 금액을 생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최종 낙찰 가격은 3,250만 엔. 우리 돈으로 3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일본 위스키의 최고가 갱신은 물론, 최고가 TOP10  위스키 반열에 드는 가격이었다. 현재 일본은 미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캐나다와 함께 위스키 5대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해외 수출도. 사케에 이어  2위(약 1,400억 원)를 달리고 있다. 일본 국내 시장에서는 무려  8년 연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위스키는 언제부터 이렇게 주목을 받았을까? 그리고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937년에 나온 산토리 위스키 가크빈. 증류소 기획을 세운 지 15년 만에 나온 성공 모델이다. 


마케팅의 토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郎)와 기술의 타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의 만남

일본 위스키의 시작은 약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 대, 요코하마의 한 호텔에서 위스키를 판매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약 70년 동안은 유사 위스키만 만들어서 판매한다. 주정에 색소 및 감미료를 넣어 만든 것이다. 우리로 따지면 70, 80년대의 대표 유사 위스키였던 베리나인이나 캡틴큐와 비슷한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장 속에서 제대로 된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이 1920년 전후로 생긴다. 그래서 당시 사케 양조장의 아들이며, 직원이었던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1916년 스코틀랜드로 위스키를 배우러 가게 된다. 스코틀랜드의 그라스고 대학(Universitas Glasguensis) 등에서 공부한 그는 두 권의 두툼한 노트에 위스키 기록을 가지고 4년 후 일본에 귀국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귀국한 1920년대는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를 시작할 시기가 아니었다. 미국에서의 금주령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등, 사회에서 술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때였고, 회사의 주주들 역시 위스키 제조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위스키를 만든다는 꿈을 가진 타케츠루 2년 후 사케 양조장을 퇴직하게 된다. 이때, 일본에서 와인사업을 하던  지금의 산토리 주류의 창립자 토리이 신타로가 그를 스카우트한다. 그 역시 위스키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타케츠루는 근속연수 10년을 약속받고 개발에 몰두하게 된다. 


증류소 부지에 있어서는 마케팅 전문인 토리이 신지로는 판매를 위해서는 도심 중심에 증류소를 세울 것을 건의하였고, 기술담당인 타케츠루는 스코틀랜드와 유사한 홋카이도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은 결국 합의를 통해 도심에 가까우면서 최대한 스코틀랜드와 유사한 지역을 찾아낸다. 바로 일본 역사상 최고의 다도가(茶道家)로 불리는 센리큐(千利休)가 차실(茶室)을 가지고 있었고, 세 개의 강이 합류하여 스코틀랜드처럼 안개가 낀다는 오사카의 야마자키(山崎)란 지역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본 최초의 위스키가 탄생을 하게 된다.


실패한 첫 작품

이 둘이 만든 첫 위스키는 1929년도에 나왔다. 하지만 오크통 숙성이 없는 화이트 리커였다. 제품명은 산토리 시로부타(白札), 산토리의 흰 라벨이라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이 제품은 실패를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져온 피트(Peat, 이탄) 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당시 위스키에서 나오는 피트 향음 몰랐던 일본 소비자들에게는 괜한 향내로 밖에 안 여겨졌고 결국 선택을 받지 못한다. 


증류소 기획부터 15년 후, 드디어 히트작이

그로부터 7년 후, 메가 히트작이 나오게 된다. 지금도 산토리 위스키의 대표 제품인 카쿠빈(角瓶)이 나온 것이다. 증류소 부지를 찾고, 세우고, 성공까지 15년이 걸렸다. 이후 산토리 올드, 산토리 리저브  등 다양한 제품으로 라인업이 형성되었다. 대중적인 제품과 고급 제품의 라인업이 형성된 것이다. 참고로 산토리란 의미는 토리이 사장의 '토리'에 태양(SUN)을 붙인 것이다. 또는 토리 이상(鳥居さん)을 거꾸로 부르면서 산토리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술 만들기 더 좋은 환경을 찾아서

10년 계약을 끝낸 후, 기술자인 타케츠루는 스코틀랜드와 더 유사한 자연환경을 찾아 떠나는데, 그곳이 바로 홋카이도의 오타루에서 60km 떨어진 요이치란 지역이다. 스코틀랜드처럼 춥고, 안개가 많으며, 그래서 습기가 많아 숙성에 좋은 곳이며, 요이치 강에서 나오는 물로 충분한 수원이 확보가 되었다. 더불어 피트(이탄)까지도 나오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보다 기술집약적인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위스키가 바로 닛카 위스키로, 닛카는 일과(日果), 즉 일본 과일을 뜻한다. 초기에는 사과 등을 수매해서 사과주스 또는 사과와인(시드르)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타케츠루 곧 자신의 이름을 달고 제품을 출시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일본인에게 진짜 위스키의 맛을 보여주자고. 


4년 전 방문한 타케츠루의 홋카이도 요이치 증류소. 이 지역 자체가 스코틀랜드와 닮았고 증류소의 스타일도 스코틀랜드 풍이다. 출처 닛카 위스키


너무 잘 팔려서 사회문제 대두, 희석해서 마시는 위스키 문화 선도

일본 위스키는 1964년도의 도쿄 올림픽을 전후로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된다. 상류층의 술이 아닌 서민의 술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위스키가 독주라는 이유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한다.  위스키가 과음을 유발한다는 것이었고, 도수 높은 술은 건강에 나쁘다는 것이었다. 이때 일본 위스키에 얼음, 소다, 따뜻한 물을 넣는 문화가 본격적으로 생겨난다. 바로 사케(일본식 청주)와 비슷한 15도 전후의 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서양에서는 일본만큼 이렇게 얼음 등을 넣어서 마시지 않는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또는 칵테일 정도다. 온더록스 문화는 거의 일본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도수를 낮춘 일본 위스키는 천천히 일식 문화와 더불어 식중주로도 성장을 하게 된다. 유흥주점에서만 마시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인 것이다. 결국 제대로 된 음주문화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폭음이 아닌 음식과 잘 맞는 주류로서의 자리매김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투트랙 마케팅

일본 위스키는 2000년대 들어와서 세계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2001년에 닛카 위스키의 싱글 캐스트 10년이 월드 위스키 어워드로 최고 득점을 받고, 2006년에는 가루이자와 퓨어 몰트가, 2015년에는 야마자키 싱글 몰트 셰리 캐스트, 최근에는 산토리의 히비키 21년(響21年)이 위스키 바이블(Whisky Bible)에서 세계 최고의 위스키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에는 산토리 학슈 25년(白州25年)은 월드 베스트 싱글 몰트, 요이치 증류소의 타케츠루 17년은 월드 베스트 블렌디드 위스키로 선정이 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던가, 이렇게 평가가 높아지는 2000년 대 이후, 산토리가 취한 마케팅은 투트랙이었다. 바로 고급 소비층만 노리는 것이 아닌, 대중적인 소비층을 적극 노렸다는 것, 그것은 도수를 낮춰서 맥주처럼 편하게 마실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하이볼(위스키 탄산수)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이었다. 이를 통해 위스키를 어려워하던 여성 소비자조차 위스키에 다가갈 수 있었고, 회식 때 '일단은 맥주 한 잔부터(とりあえず ビール) '라고 말하던 일본 음주 문화가, 이제는 하이볼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위스키가 맥주를 대체하기 시작한 일본의 주류시장,  일본의 맥주 소비량은 13년 연속 소비량이 줄고 있다. 


위스키 장인을 주인공으로 한 NHK 아침 드라마의 대히트

일본 위스키를 대히트시킨 가장 최고의 공로자는 실은 드라마였다. NHK에서 타케츠루를 모티브로 드라마 '맛상'을 제작한 것이다. 2014년 9월부터 2015년 3월까지 91화로 진행된 이 드라마는 아침이라는 시청률이 낮은 방송 시간대에도 불구, 23%라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 일본 위스키의 저변 확대 및 소비촉진을 불어넣었다. 특히 타케츠루의 유학시절 리타라는 영국 여성을 만나는데, '맛상'이라는 드라마 제목은 당시 리타가 타케츠루를 부르던 호칭이었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국제결혼은 특별한 것이었고, 이러한 내용이 드라마 스토리로 충분했던 것이다. 

타케츠루와 부인 리타. 이 둘의 국제결혼은 드라마의 소재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출처  요이치 증류소

드라마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위스키와 타케츠루 대한 서적은 나오자마자 절판이 되었고, 닛카 위스키의 요이치 증류소의 견학자는 36%가 늘었고 그가 기술자로 있던 산토리 위스키도 최고의 인기를 달렸다. 닛카 위스키 증류소가 있는 북해도 요이치 시에는 타케츠루 동상이 세워졌고, 주력 제품의 매출은 50% 가깝게 올랐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예상치 못한 판매고에 산토리 위스키는  히비키 17년(響17年)과 학슈 12년(白州 12年)의 판매 중지를 결정한다. 당장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위스키는 완성까지 10년 이상이 걸린다. 결국 앞으로 당분간 정가로 이 제품을 마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고, 이러한 상황이 산토리 위스키의 위상을 오히려 올려줬다. 즉, 경매시장 등에서 슈퍼 프리미엄이 붙어버린 것이다. 


일본 위스키의 가장 큰 매력은? 

산토리 위스키와 닛카 위스키 증류소를 모두 방문하고 맛을 본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일본 위스키는 정통 위스키에 비해 훈연 향이 적고, 맑은 느낌에 단맛이 느껴지는 편이다. 한마디로 부드럽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부분은 일본의 물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일본 자체가 유럽에 비해 물이 연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사카의 산토리 위스키 야마자키 증류소도, 닛카 위스키의 요이치 증류소도 결국 좋은 수원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산토리 위스키 히비키 30년. 약 600만 원 전후에 판매되고 있다. 5년 전 마셔봤지만 부드러운 촉감, 진한 초콜릿향 등 개인적으로 마셔본 위스키 중 최고였다.  

추억이 깃든 일본 위스키, 인간미 있는 위스키 추구

일본 위스키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미 있는 광고 콘텐츠를 많이 만든다는 것이다. 50년 전, 아버지가 마시던 똑같은 위스키를 만나는 주인공, 결혼할 남자 친구를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딸의 모습, 동네의 평범한 여성에게 다가온 훈남의 모습 등, 위트 있고 공감 가는 내용으로 구성을 많이 했다. 이는 단순히 많이 마시고 취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그들의 삶 속에 잔잔히 존재하는 위스키를 그려낸 것이다. 



<아버지에게 약혼자를 소개하는 외동딸의 모습을 통해 아쉬워하는 아버지를 그린 산토리 위스키 광고>



상장하지 않는 기업, 산토리가 존경받는 이유

일본 위스키의 대표주자 산토리는 실은 일본 국내에서도 존경받는 기업 중 하나다.  술에 대한 철학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매출이나 규모로는 언제든지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었지만 산토리는 하지 않았다. 이유는 상장을 하면 1년에 한 번씩 또는 분기별로 실적 및 이익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산토리의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는 술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평가를 받는 데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리는데, 어떻게 매년 평가를 받는 주식 시장에 상장을 하냐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주식시장 상장이라는 허울 좋은 것이 아닌, 좋은 술을 끝까지 만들겠다는 것, 이로써 일본 국민은 산토리에 대해 더욱 신뢰성이 높아졌다. 현재 일부 자회사 등은 상장했으나 일본 소비자에게는 여전히 철학 있는 기업으로 기억되고 있다. 


5년 전에 다녀온 오사카 산토리 위스키 야마자키 증류소의 숙성창고.

실질적으로 산토리는 문화적인 부분에 혁신을 이루며 달려왔다. 파격적인 포스터로 일본에 와인 문화를 본격 보급시켰으며, 1961년도에 미술관을 설립하였고, 예술인들을 후원해오며  술과 예술을 함께 이어 오기도 했다. 인간미 있는 산토리의 위스키 CM이 그냥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산토리 위스키 학슈 증류소의 풍경. 자연을 그대로 살린 채 증류소를 운영하고 있다. 봄에는 꽃, 가을에는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국 일본 위스키의 성공은 100년간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만들어 온 것, 독주라는 이유로 마시기 어렵다면 마시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 철학 있는 기업과 기술자가 있었고, 그것을 믿어주는 소비자로 인해 일본 위스키라는 독특한 문화가 생긴 것이라는 판단이다. 드라마 및 하이볼의 영향도 있겠지만, 실은 이제까지 응축되었던 에너지가 폭발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실은 한국도 나름 열심히 위스키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50년 대에도 위스키를 만들려고 했으며, 70년대에는 일본의 1920년대와 같은 베리나인 등의 유사 위스키 등이 시장을 주름잡았다. 80년 대 한국산 위스키를 만들려고 했으나 잘되지 않았고, 이후 수입주류 자유화 물결에 잘 만들어보려는 시도 자체도 사라져 버렸다. 시대가 너무나도 격변했고, 쓰이는 원료의 규제도 바뀌는 등,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구조가 되지를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지역의 뜻있는 중소 양조장들이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좋은 증류주를 만들고 있다. 좋은 증류주란 100% 우리 농산물을 활용하여 원료의 풍미가 느껴지는 술을 뜻한다. 개인적으로 오미자 브랜디 고운달을 만드는 오미나라, 안동소주, 이강주, 문배주, 감홍로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들 중에 우리도 산토리나 닛카 위스키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술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일본의 위스키 역사가 알고 보면 불과 100년이다. 앞으로 우리도 준비를 잘하고, 우리 만의 철학을 가지고 간다면, 충분히 한국의 증류주에 대해서도 세계가 인정을 해 줄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잘 견디고 준비하면 된다. 언제 전 세계에 한류가 이렇게 퍼질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는가? 마치 30년 전, 소니의 전자제품만 최고였고, 우리 것은 늘 아류처럼 느끼던 시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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