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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Feb 06. 2019

영국인이 만든 프랑스 술 꼬냑

다양한 문화가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프랑스 코냑


프랑스에는 대표적인 고급술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와인, 또 하나는 그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다. 이 브랜디 중에 가장 고가에 판매되는 것이 바로 코냑. 코냑이라는 이름은 지역을 뜻하는 것으로 도버해협과 이어지는 샤랑트 강이 흐르는 곳이다. 그런데 코냑을 프랑스 술이라고 하면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바로 그들의 등급 표시를 영어로 해 놓은 것이다. 나름 우리에게 친숙한  VS, VOSP, XO 등의 명칭들이다.  프랑스는 자국어에 지극히 자긍심이 높다고 하는데, 왜 굳이 이러한 등급에 영어식 표기를 하게 되었을까? 정말 자긍심이 높다는 것은 맞는 말인가?

헤네시 XO. 출처 위키피디아 재팬

영어식 등급 명칭의 의미

코냑의 등급 표기는 영어식 철자를 그대로 쓰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숙성연도를 나타내는 표시로 VS급은 Very Special로 2년 이상 숙성시킨 원액으로 블랜딩했으며, VSOP는 Very Special Old Pale로 4년 이상,  XO는 Extra Old로 10년 이상(최근에 6년에서 10년으로 변경) 숙성시킨 등급을 의미한다. 오다주(Hors d'âge)라는 등급은 있는데 이는 거의 XO 등급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XXO라는 14년 이상의 새로운 등급도 등장을 했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영어식 표기를 많이 쓰는 이유는 코냑의 최고 수출처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영국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포도가 잘 나지 않는 영국 입장에서는 프랑스의 와인 및 코냑은 최고 사치품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영어식 표기를 쓰는 이유가 오직 수출 하나로만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는 것일까?


코냑의 최고급 등급이라고도 불리는 XXO 등급. 14년 이상 숙성 제품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비공식 등급이라고 알려져 있다.  출처 헤네시 공식 홈페이지


세계 5대 코냑 기업 중 3곳이 영국계에서 시작

일반적으로 세계 5대 코냑이라고 불리는 유명 기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헤네시(Hennessy), 레미 마르땡(Remy Martin), 마르텔(Martell), 쿠르보아제(Courvoisier), 그리고 까뮤(Camus)다. 흥미로운 것은 이 5곳의 회사 중 3곳의 창립자가 영국 또는 영국령에서 왔다는 것이다. 세계 코냑시장의 39%를 차지한다는 헤네시는 아일랜드 출신의 장교였던 리처드 헤네시에서 출발했으며, 마르텔의 경우 영국해협의 채널제도의 저지섬에서 온 존 마르텔이 창업자다.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갈 때 가지고 갔다는 코냑 쿠루보아제는 원래 프랑스 기업으로 1809년에 설립되지만, 1909년 영국에서 와인 및 증류주 사업을 하던 영국의 사이먼 가문이 인수를 하게 된다. 5대 기업은 아니지만 고급 코냑으로 유명한 하디(Hardy)사도 1863년 영국인 엔소니 하디가 세운 증류소이며, 바롱 오타르(Baron Otard) 역시 아일랜드 계열이다. 다만 이 기업들이 철저히 프랑스식을 따른 이유는 프랑스라는 브랜드를 활용하면 제품을 고가로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국적과 관계없이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를 따랐던 것이다. 쿠루보아제의 경우 영국인이 오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을 전면에 내세워 지금도 로고 자체에 그의 상징이 그려져 있다.


쿠르부아제의 코냑. 영국인이 오너였지만 로고는 나폴레옹이 새겨져 있다. 출처 flickr

교황이 최초로 마셨다는 브랜디, 영국에서는 코디얼 재료로

코냑의 증류 기술은 스페인에서 유럽으로 북상했고, 13세기 순례길로 유명한 산티아고로 돌아온 십자군에 의해 프랑스 남부 지방까지 알려진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때 교황 클레멘스 5세는 1299년 증류한 와인, 즉 브랜디를 처음으로 치료제로 마시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브랜디를 생명의 물, 라틴어로 아쿠아비테라고 불렀고, 이후에 오드비라는 프랑스어로 증류주를 뜻하는 단어로 이어지게 된다.


영국으로 수출을 하게 된 이유는 중세 유럽 시대부터 한자 동맹 등으로 상업이 발달했던 네덜란드의 상인이 저장 및 관리가 어려운 와인 대신 획기적인 제품을 취급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발견된 것이 증류주인 브랜디였다. 이때 수입한 제품의 명이 브랜드 바인(brandewijin)으로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burned wine, 즉 구운 술이었고, 이것이 나중에 브랜디가 되었다. 영국의 가정에서는 코디얼(Cordial)을 자주 만들었는데, 당시의 코디얼은 브랜디에 당분 및 허브를 넣어 마시는 것이었다. 또 영국은 이제 막 증류한 코냑 원액을 수입, 영국에서 숙성해 판매도 했는데, 이러한 코냑을 얼리 랜디드 코냑(early landed cognac)이라고도 불렸다. 증류는 프랑스에서 숙성은 영국에서, 판매는 네덜란드가 하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유럽의 코디얼. 다양한 허브를 넣어 마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청과 같은 느낌의 음료다

프랑스 자국에서는 소비가 적은 코냑, 결국 수출이 사업의 사활

17세기 말에는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쫓겨난 영국 왕 제임스 2세가 프랑스로 망명을 하게 되면서 브랜디 무역이 줄게 되고, 반대로 영국의 왕이 된 네덜란드인 제임스 3세는 영국에 자국의 술인 진(Gin)을 보급시킨다. 하지만 브랜디의 밀수입은 계속되고, 결국은 수익이 되는 것을 본 아일랜드 및 영국인이 코냑의 사업을 직접 하게 된다. 네덜란드인이 시작한 사업을 결국은 영국인이 빼았은 것이다.


현재 코냑의 제1 수출국은 미국(약 8000만 병), 그리고 중국(2500만 병), 영국은 이들에 이어 3위(1000만 병)를 나타내는데,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자체에서는 코냑을 지극히 적게 마신다는 것이다. 영국과 비교해도 반도 안 마시는 연간  450만 병만 소비하고 있다. 미국 및 중국이 코냑을 다양한 칵테일 형태로 즐긴다면 프랑스에서는 너무 격식을 따지기에 트렌드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따라서 코냑은 자국의 소비보다는 해외 수출이 사업의 사활을 쥐고 있으며, 따라서 등급 표기 등도 영어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숙성창고에서 거미를 죽이지 않는 이유

코냑의 특징 중 하나가 숙성창고에 거미줄 또는 거미를 없애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유는 거미가 오크통을 지키기 때문이다. 숙성용 오크통을 만들 때 버드나무줄기로 매듭을 지는데, 진드기가 와서 이 버드나무줄기를 갉아먹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오크통에서 코냑이 다 새어 나와 다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거미가 있으면 이 진드기를 먹어버리고, 한번 오크통을 만들어 놓으면 몇십 년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금은 버드나무줄기로 오크통의 매듭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지만, 코냑의 좋은 친구로 여전히 거미줄은 치우지 않는다고 한다. 나름의 전통인 것이다.

코냑의 숙성창고. 거미줄이 있더라도 치우지 않는다.


그래도 코냑이 프랑스의 술인 이유는

일반화를 시켜서는 안 되지만 프랑스 코냑은 그 기원은 이슬람에서, 판매는 네덜란드인이, 상업적 발전은 영국이 시켰으며, 소비는 미국이 하는 아주 복합적인 문화 상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다만 중요한 것은 프랑스 외에 그 어느 나라도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유는 코냑이라는 브랜드를 프랑스가 입혔기 때문이다. 루이 14세가 즐긴 술이며, 나폴레옹이 좋아한 상품이라는 특별한 스토리가 오직 코냑에만 있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급스러운 문화를 즐긴다는 만족감이 드는 것이며, 이를 통해  판매자 입장에서는 고가에 팔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외국에 주류 수출을 많이 한다. 그런데  외국에 우리의 술을 팔면서 국적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그 나라의 제품인 양 전시해야 판매가 된다는 것이다. 일본으로 수출한 한국 맥주(발포주란 이름으로 팔렸다) 등이 대표적이다. 브랜드를 숨기고, 한국산인 것을 숨기고 판매를 했다. 주류에 있어서 국가 브랜드가 낮아서 OEM 등으로 판매를 한 것이다. 결국 해당 제품은 일본 내 최저가로 판매될 수밖에 없었다. 고부가가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모습을 하나씩 탈피해가야 한다. 우리를 알리고,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야 될 시기가 오고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문화적 강국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단순한 현대의 모습이 아닌 옛것의 가치를 발굴하고, 그것을 소비자와 소통해야 한다. 단순히 우리 전통주를 잘 지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식문화 전체는 물론, 인물과 지형, 역사, 민속학까지 모든 것이 스토리화 되어 기억되어야 한다. 그리고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지난 것을 잘 지키고 보존하여 세계 고급 시장을 이끄는 프랑스의 코냑, 앞으로의 100년을 계획하며  문화적 강국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좋은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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