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보면 늘 함께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종교다. 다양한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보면 이미 인간은 농경생활을 하기 이전부터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교에 필요한 대표적인 물품은 뭐였을까? 바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와인. 기독교가 전파했다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종교의 영향력이 컸다. 그런데 위스키는 아무리 찾아봐도 종교 행사 등에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왜 와인은 사용하고 위스키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본다.
이집트인이 와인을 마신 이유
수메르의 와인 여신인 게슈틴난나(Geshtinanna)는 자신의 피는 와인이며 흙과 함께 섞어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집트는 더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Moralia)에 따르면 와인은 신들과 싸우던 선조들의 피였고, 그들이 대지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 증표로 태어난 것이 포도이며, 그 포도로 만든 와인은 선조들의 피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와인을 마치면 선조들의 피로 충만해지고, 죽은 사자 및 신과 교류한다고 믿었다. 붉은색의 와인은 더욱 이러한 상상을 부채질했다.
와인의 신이 지하세계와 연결되는 이유
이집트와 그리스에는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라는 와인의 신이 있었는데 둘의 공통점이 지하 세계에 자리 잡거나 또는 다녀왔다. 오시리스는 지하세계에 내려가서 흔히 말하는 염라대왕이 되었다. 사망한 이후의 인간들의 죄를 무게를 측정하며 죗값을 매긴 것이었다. 디오니소스는 지하세계에 내려가서 엄마인 세멜레를 구하고 온다. 세멜레는 헤라의 꾐에 넘어가 남편인 제우스의 번개로 죽임을 당하는 인물. 결국 지하 세계까지 내려가 엄마를 구하고 그녀를 신계에 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와인의 신이 지하세계와 연결된 이유는 간단하다. 포도의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포도가 자라는 지중해성 기후는 여름에 비가 적은 편이다. 그리고 자갈 및 사질토 토양이라서 양분도 적은 편이 많다. 그래서 포도나무는 살아남고자 뿌리를 아주 깊게 내린다. 알고 보면 생존본능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식물은 땅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 자체로 부활인 셈인 것이다.
오시리스의 경우는 녹색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땅에서 올라오는 새싹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집트 벽화를 보면 오시리스가 있는 지하 세계에서 돼지가 처참한 대우를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돼지는 먹는 것도 사람과 비슷한 것은 물론 물을 압도적으로 소비한다. 물이 부족한 유목민족 입장에서는 인간의 절대적인 생존의 경쟁상대.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오시리스 벽화의 모습. 왼쪽이 오시리스 가운데 왼쪽이 돼지의 모습이다. 채찍으로 맞는 모습이 나와 있다.
반대로 가장 이쁜 것은 역시 소였다. 농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고, 무엇보다 젖이 나왔다. 때에 따라서는 고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단순히 인도뿐만이 아닌 페니키아인, 크레타 문명 등에서는 소를 신으로 섬길 수밖에 없었다.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힘이 강한 것은 물론, 신으로 섬기지 않으면 쉽게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으로 섬기면서 보호를 하고 특권층만 그 고기를 즐겨야 했다.
밟히고 뜯기는 포도의 이미지
와인에 핍박 속의 부활이라는 이미지도 추가된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를 뜯어야 하고, 즙을 짜기 위해서는 밟아야 한다. 이러한 모습이 핍박받는 예수의 모습으로 보인 것이며 영롱한 와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그것 자체가 부활이라는 이미지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로마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전 유럽으로 와인도 함께 전파한다. 이전까지 지중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맥주 문화였지만 게르만족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와인도 더불어 영역을 넓히게 된다. 다만 기독교에서 와인을 미사 때 사용한 이유는 신과의 접점보다는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취기에 신과 만다는 것이 아닌 그가 흘린 피를 기억하자는 의미가 강하다고 본다.
남양주 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시어티에 있는 위스키 증류기. 와인에 비해 인간의 기술적 측면이 더 강조된다.
위스키를 미사 등 종교 행사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유
위스키는 와인과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10세기 전후로 이슬람의 연금술이라는 기술에서 시작한 술이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이미 이때는 각각의 종교가 자리 잡은 상황. 일반적으로 이슬람은 술을 멀리했고, 유럽에서는 수도원이 와인 및 맥주를 열심히 만들 때다. 위스키가 종교 속을 파고 들 틈이 없었다. 대신 유럽으로 전파된 위스키 및 증류주는 학술적 측면에서 발달한다. 바로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의 치료제 및 소독제로 사용된 것이다. 술이 아닌 약으로 쓰이면서 발달하게 된다.
소주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소주 역시 이슬람의 연금술을 통해 고려말 몽골에 의해 전파된다. 고려말에 이미 성리학 사상이 퍼지고 있던 상황. 무엇보다 차례 및 제사에는 가족이 모여 음복을 해야 한다. 나이 든 어르신뿐만이 아닌, 어린아이까지도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가 즐기기에는 옛 소주는 도수가 너무 높았다. 그래서 종묘제례에는 막걸리, 동동주, 청주만 등장한다. 모두 발효주. 소주와 같은 증류주는 사용하지 않았다.
자연상태에서 발생 할 수 없는 술 '위스키'
결국 와인과 같은 발효주는 자연 발생으로도 생길 수 있는 술. 당시의 생각으로는 신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술이었고 그래서 늘 종교와 함께 했다. 하지만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는 기술을 통해 인간이 재창조한 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르네상스, 산업혁명, 그리고 시민혁명으로도 이어진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가는 그 길목에 인간이 만든 술, 거기에 숙성이라는 시간이 더해진 것이 지금의 위스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PS: 이번 글은 종교적인 접근이 아닌 순수한 인문학적 차원에서 바라본 와인과 위스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도 담아 정리한 글입니다. 특정 종교를 홍보 및 평가하기 위한 글이 아니란 것을 이 자리를 통해 말씀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