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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Mar 23. 2019

사케의 부활은 막걸리가 이끌었다?

사케의 스펙트럼을 넓게 한 막걸리

사케 양조장들이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의 사케는 20년 가까이 하향 곡선을 타고 있다. 내수가 줄고 있다는 뜻이다. 수출은 꾸준히 상승 곡선이지만, 일본 국내 수요는 계속 줄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맥주 같은 저알코올 술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사케가 가지고 있는 올드한 이미지가 때문이다. 


전국에 3,000개가 넘었던 사케 양조장은 반 이상이 폐업, 현재는 1400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유는 맥주나 하이볼(위스키 탄산 칵테일) 같은 가벼운 술의 약진 때문이다. 일본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알코올 도수가 낮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주류로 점점 옮겨 갔다. 현재 일본의 주류 시장 중 사케가 차지하는 비율은 금액으로 6~7% 내외. 


이렇게 하향세였던 사케 시장에 2010년 전후로 새로운 주류가 하나 등장한다. 바로 막걸리. 저도수에 탄산, 아이보리 컬러의 막걸리는 특히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서 핫이슈 아이템으로 떠올랐고, 2011년도에는 일본경제신문 올해의 키워드 7위로도 선정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2011년도 바로 다음 해부터는 일본 사케 시장도 16년 만에 내수 반등을 꾀했다는 것. 이때 산케이 신문은 이렇게 자국 내 사케 시장의 반등을 막걸리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그 이유는 바로 생(生)이라는 특성이다. 유산균이 ‘살아 있다’는 정체성이 소비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고,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사케 양조장이 벤치마킹을 통해 신선하고 상쾌한 생(生) 사케라는 이미지를 알려 소비자에게 어필했다는 것이다.


일본산 막걸리와 한국에서 일본으로 수출한 막걸리

그리고 신기한 일이 하나 더 일어난다. 일본의 양조장이 사케가 아닌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일본 탁주의 전통 용어인 도부로크(どぶろく), 니고리슈(濁り酒)란 용어를 쓰지 않고, 일본식 막걸리 명칭인 맛꼬리란 이름으로. 아저씨 술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일본의 사케가 맛꼬리란 이름으로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이렇다 보니, 일본의 사케 양조장은 막걸리 제조에 상당히 공을 기울이는 곳이 많다. 뉴욕에 수출을 한다든지, 한국의 막걸리는 위생적이지 않으니 현지에서 빚은 일본 막걸리를 마셔야 한다는 블랙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한국의 기술자를 초청하거나, 한국에서 만든 페트병을 수입하기도 한다. 사케처럼 겨울에만 빚는 술도 아니니, 매출 역시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25년 숙성 준마이다이긴죠 사케 출처 http://www.umenishiki.com

16년 만에 찾아온 활기에 힘입어 일본 사케 업계도 다양한 사케를 출시한다. 특히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알코올 도수 8~10도 정도의 스파클링 사케를 중점적으로 홍보한다. 최근에는 야구장 같은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생사케도 등장했다. 고베 및 교토처럼 양조장이 많이 모여 있는 관서 지방 중심으로, 생사케를 맥주처럼 서버에 넣고 판매하는 업소들이 생겼다. 사케의 소비층을 확산하고, 맥주의 활동 영역에 진입하겠다는 의미다. 장기간 숙성시킨 빈티지 사케도 등장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사케 100년 숙성 프로젝트로 기존의 사케는 단순히 2~3달, 길어야 1년의 숙성 기간을 가졌는데, 최근에는 고주(古酒)라고 하여, 3년, 5년, 10년, 30년까지도 숙성시키며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병입 숙성이 아닌 바닷속 및 산 정상 등 기발한 장소까지 시도되고 있다. 


물론 사케 시장이 완벽한 상승세를 탔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사케 양조장들은 홍미, 녹미 등으로 다양한 사케를 제조하거나, 와인용 효모를 사용하고 오크통에 넣어 숙성하는 등 이제까지 신성시되었던 불문율들을 하나하나 깨트리며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2018년도에는 사케 수출액 2,000억 원 가까이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지역 문화를 담은 프리미엄 사케에 대한 노력 역시 멈추지 않아, 프리미엄 사케의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빨리 취하는 음주 문화보다, 맛을 음미하고 지역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싼값으로 대량 공급하던 주류는 쇠퇴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케 시장은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사케 시장으로 숫자로만 해석한다면 시장이 작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문화적인 폭은 더욱 깊고 넓어지고 있다. 


막걸리로 돌아와서

막걸리의 나비효과로 사케 산업이 다시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막걸리의 매력을 그들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막걸리 역시 우리 전통주의 세계화 측면에서 분명히 좋은 일이다. 다만, 일본이 이처럼 막걸리 빚기에 공을 들이는 데 반해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일본이 먼저 막걸리의 세계화를 한다면, 세계에 우리의 막걸리를 알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의 막걸리 정체성과 정의를 더욱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막걸리는 어떻게 만들어야 한다는 국제적 규격이 없다. 여전히 수입 쌀로도 많이 빚고, 누룩균 역시 모두 한국 토종이 아니다. 심지어 만드는 방법까지도 일본에서 도입한 기술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곳이 많다. 이래서는 막걸리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일본의 막걸리 수출량은 2011년도 5천만 달러에서 지금은 1천만 달러로 급 하락했다. 


일본의 사케 산업에 새로운 힌트를 전달한 막걸리.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농산물과 토종 누룩균을 적극 사용해 우리만의 문화가 담긴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다행히 최근 주목받는 양조장들이 만드는 무첨가 막걸리 및 전통주들은 토종 누룩균에 우리 지역 농산물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제 겨우 막걸리의 가치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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