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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Apr 06. 2019

마녀가 빗자루를 타는 이유는?

영국의 주모 에일 와이프 이야기

한국의 주모와 영국의 주모

한국의 사극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술 장인이 있다. 때로는 푸짐한 국밥과 막걸리를 갖다 주기도 하며, 푸근한 느낌을 전달했던 인물, 바로 주모다. 주모의 역할은 술을 빚는 것과 음식 제공, 그리고 여행객에게 숙박을 해결하는 공간을 제공했다. 흥미로운 것은 유럽에서도 유사한 직업이 있었다. 8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영국을 중심으로 가장 많이 활동한 유럽의 주모, 에일 와이프(Alewife)다. 에일(ale)은 본래 상면발효를 한다는 영국식 맥주, 그리고 와이프(wife)는 여성에 대한 일반명사다. 


즉 술을 빚는 여성으로 우리의 주모(酒母)라는 어원과 굉장히 흡사하다. 그리고 이 에일 와이프가 근무하던 곳이 에일 하우스로 맥주를 만들고, 숙박업을 제공했던 주막과 같은 곳이다. 9세기부터는 영국 전역에 에일 하우스가 생기게 되는데, 그 이유는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지고 성지순례가 이루어지면서 수많은 순례자의 이동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그 통과지점에는 에일 하우스가 있었다. 


주막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인 문경새재, 추풍령, 죽령 등에는 언제나 주막거리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주모와 마찬가지로 에일 하우스의 매출 역시 에일 와이프가 좌우했다. 정선 아리랑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술이야 안 먹자고 맹세를 했는데, 안주 보고 주모 보니 또 생각나네". 


주모의 능력에 따라 주막의 매출이 좌지우지된 것을 알 수 있다. 영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좋은 술을 잘 빚고는 에일 와이프는 그 맛과 향으로 남성들에게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빗자루를 걸어놓은 에일 와이프. 빗자루가 걸려있으면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결국 빗자루는 마녀의 상징으로 이어진다>



에일 와이프의 상징, 빗자루

14세기 후반, 국왕 리처드 2세는 이러한 숙박업에 간판을 달라고 했는데, 이때 에일 하우스의 간판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빗자루였다. 당시 청소는 여성의 업무라는 인식이 있었고, 또 하나는 술을 빚는데 청결을 유지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이 커지고 호황기를 맞자 술을 잘 빚는다는 존경과 인기는 질투로 뒤바꿔버린다. 


거기에 맥주를 빚는 수도원과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되다 보니 에일 와이프는 조금씩 마녀의 모습으로 그려져 버리고, 빗자루가 그들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렇게 수 세기를 향유한 에일 와이프는 주류산업이 노동집약적이며 산업화 시대로 이어지면서 천천히 그 명맥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일부 지명이나 역, 그리고 바 등에서 그 명맥을 볼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 공식 포스터. 역시 빗자루를 타고 있다. 2008년 공개


참고로 에일 또는 맥주는 중세 유럽의 필수품인 만큼, 각 가정에서도 많이 만들었다. 그래서 영국 여성들은 혼인을 할 때, 각 가정의 전통의 맥주 레시피를 가지고 혼인을 했으며, 집안에서 사용하던 맥주를 만들던 솥을 가지고 가기도 했다. 


며느리 또는 딸에게 술 빚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다양한 고문헌을 남겨 놓은 한국의 전통주 문화와 무척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술 문화에 있어서 동서양을 무 자르듯 구별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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