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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Mar 30. 2019

24시간 주막은 뭐라고 불렀을까?

의외로 다양했던 우리 주막의 모습


한국의 지역 술을 맛보러 지방을 내려가면 늘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음식도 좋고, 풍경도 좋지만 늘 아쉽고 불편했던 것, 바로 숙박이다. 전국 어딜 가나 비슷한 스타일의 모텔, 아니면 기껏해야 프랜차이즈 호텔 정도였다. 그 지역의 문화를 담은 숙박시설이 아닌 도심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형태, 아니 도심을 따라 하고자 했지만, 결국 완벽히 따라 하지도 못한 그런 형태다. 

이럴 때마다 늘 부러운 나라가 하나 있었다. 오랫동안 거주했던 일본이다. 어느 지역을 가도 료칸(旅館)이란 형태의 전통적 호텔이 있으며, 지역의 음식과 멋진 서비스로 맞이해 준다. 동시에 지역의 관광정보까지 전달해 주는 정보 중심지의 역할도 한다. 잘 생각해보니 한국에도 비슷한 곳이 있었다. 소백산의 죽령, 문경새재의 죽령, 추풍령과 같은 고개에 있었고, 충주 및 마포, 등 나루터에 있었던 곳, 바로 주막이다. 주막의 특징은 한방에 양반도 평민도 같이 자는 공간이라 말하는데, 그렇다면 모두 이런 천편일률적인 스타일밖에 없었을까? 더불어 우리에게는 일본의 료칸(旅館)이상의 고급 주막은 없었을까? 지금의 호텔처럼 5성급, 6성급 이러한 등급은 없었는가? 지금의 호텔처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주막에도 분명히 구분은 있었다. 

관영에서 운영하는 주막 역(驛), 지금으로 따지면 5성급. 주로 국경지대 위치
관영에서 운영하는 공간으로 역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국경지대에 많이 위치했던 것으로 공무를 띈 관리 및 사신들이 많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주모는 물론 다모도 같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가 최후로 피난 간 명나라 국경지대 의주의 경우 200명 이상이 근무를 했다고도 한다. 물론 마구간 등도 상당히 컸다

민관이 같이 운영하는 원(院), 지금으로 본다면 4성급? 이태원 등이 그 이름을 이어

역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이 원이다. 하지만 원은 토지만 국가 것일 뿐, 나머지는 지방 유지의 시설이었거나 출자한 형태였다. 한마디로 반관반민 형태라 볼 수 있다. 지금은 이름만이 남어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조치원, 사리원, 그리고 이태원, 장호원, 홍제원 등이 대표적이다.

신윤복의 주사거배. 화려한 옷차림으로 보나 집안 구성으로 보나 고급 주막 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신윤복이 금주령 시대에 술을 마시는 양반들을 꼬집었다는 해석도 있다


화려한 신윤복의 주사거배 그림과 서민적인 김홍도의 주막 그림

주막의 대표적인 그림 두 개를 고른다면 아마 신윤복의 주사거배와 김홍도의 주막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두 개가 확연히 다른 것은 주사거배는 고급 주막을, 신윤복의 주막은 서민들로 그려졌다. 주사거배는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옷차림으로 보아 상당히 상류층이 즐기는 주막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관리의 복장부터 주모를 보좌하는 중노미라는 남자 일꾼도 보인다. 반대로 김홍도의 주막은 말 그대로 정말 서민적이다. 마루에 앉아 술단지를 좀 깔아 놓고 국밥을 먹는 듯한 느낌이다.


김홍도의 주막. 국밥을 먹는 보부상의 모습이 보인다. 주모는 막걸리를 뜨고 있는 듯하다.

풍류도 즐겼던 주막

16세기 신사임당의 장녀라고 불리며 화가, 시인이었던 이매창은 이런 시를 읊었다고 한다. 

들쭉날쭉한 산 그림자 강물에 드리워졌는데
수많은 수양버들 가지 주막을 가렸네
물결에 바람 일어 해오라기 졸다 날고
뱃사람의 말소리가 안갯속에 들려오네


결국 새벽에 강나루터에서 주막을 바라보며 풍류도 읊었다는 이야기. 그것을 위해 가마를 타고 일부러 오기도 한 곳이 주막이었다. 

주모에 따라 매출이 왔다 갔다도
정선 아리랑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술이야 안 먹자고 맹세를 했는데, 안주 보고 주모 보니 또 생각나네.

결국, 주모의 능력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었다는 사실. 덕분에 마타 하리 같은 첩보원 같은 역할도 했다고 한다. 


환전해주는 주막부터 선술집의 시작도 주막

객줏집이란 주막은 위탁판매도 하고, 환전도 해줬다고 한다. 목로집이란 주막도 있었는데, 이 목로란 것은 기다란 술판을 의미한다.  이 기다란 술판에 술을 줬는데 늘 서서 마시다 보니 일제강점기 시설에 선술집이란 이름이 생긴다. 덕분에 앉은 술집도 생겼다는 일화가 있다.


얼굴 안 보이는 주막 내외주가(팔뚝집)

몰락한 양반네가 하는 주막도 있었다. 내외주가, 내외술집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나름의 격을 차려 단순히 막걸리 하나 받는 것이 아닌 격 있게 불러야 했고, 또 격 있게 대답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주모의 얼굴을 잘 안 보여줬다는 것. 팔뚝만 내놓고 술을 따라줬기에 팔뚝 집이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절대 내놓지 않는 음식 '낙지'

주막의 주메뉴는 주로 국밥을 중심으로 육포, 어포, 수육, 너비아니, 술국이 나왔다고 한다. 단 절대로 나오지 않는 음식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낙지.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이 낙지를 먹고 과거에 낙방할까 봐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외 24시간 주막, 날밤집 등

대폿집은 큰 잔을 의미, 일제 강점기 시절에만 해도 막걸릿집을 의미했다. 소줏집은 다모 토리 불렀다. 주막을 나타낼 때는 흰 등이나 홍등으로 술주(酒)를 쓰기도 했지만, 술을 걸러내는 용수(긴 소쿠리)를 쓰기도 했다. 주막의 끝판왕, 24시간 주막도 있었다. 바로 날밤집. 지금이나 그때나 주당들은 24시간 술이 그리운 모양이다. 


현재 한옥호텔 등 복원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주막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문화가 살려진 곳은 거의 전무하다 본다. 그래서 좋은 것은 잘 살리고, 아쉬운 것을 보완해서 우리나라 전통 숙박 형태인 주막 문화가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은 좀 걸릴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잃어버리는데 100년이란 시간이 들었는데, 어떻게 바로 복원이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시간적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된다. 결국 의지의 문제. 천천히 그 가치를 생각하며 복원해 나간다면,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다시 찾아낼 것이라 기대해 본다. 


●화가이자 시인인 이매창의 출신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는 듯합니다. 일단 이곳에서는 신사임당의 맏딸이란 해석으로 넣어놨습니다.


●기본적으로 호텔은 5성급까지입니다. 6성급이란 표현은 이해를 돕기 위해 넣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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