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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Jul 07. 2019

홈파티 문화를 만든 것은 금주법?

금지된 술 문화, 발달한 술 문화

20세기의 음주 산업에서 가장 큰 뉴스라고 한다면 아마도 미국의 금주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있었던 법으로 헌법 제18조하에서 시행된 알코올을 제조 및 판매, 운반이 금지되었던 법이다. 금주법은 밀주(密酒)의 제작, 그로 인한 갱들의 난립 등으로 금주법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고귀한 경험(The Noble Experiment)이라는 비꼬는 평가만 받은 채 13년 10개월 7시간 32분 만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 13년 동안에 미국의 음주문화는 미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의 술 문화와 산업을 바꿔놓는 계기를 만든다. 오히려 이 시기를 결과적으로 술이 발전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술이 오히려 발전했다고 말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마실 수는 있다

앞서 설명했지만, 미국의 금주법은 소비를 위한 알코올의 제조, 판매 운송이 전면적으로 금지된 법이었다. 내용만 그대로 보면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 될 것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실상을 찾아보면, 술을 많이 마셨다. 그리고 불법도 아니었다. 가택에서의 소유와 음주는 가능했던 것이다.

자신이 머무는 가택에서 주류를 소유하는 것은 위법행위가 아니다. 또 이러한 주류가 해당 가옥에서 거주하는 소유자 및 그 가족, 그 가족들에게 초대받은 방문객이 오는 경우, 사적 음용으로 사용된다면, 그것과 관련해서는 따로 신청할 필요는 없다. 제33조 항


결국, 술만 있다면 자신의 집에서 즐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당시 미국의 부자들은 금주법이 시행되기 직전에 엄청난 술의 양을 사재기를 한다. 그리고 집안에 홈바(Home Bar)를 만든다. 그리고 다양한 파티를 열어 술을 즐겼다. 이것이 지금의 미국의 홈파티 문화를 더욱 넓혔다고 이야기를 한다.

영화 친구와 연인 사이. 홈파티 스틸컷

물론, 미국의 홈파티 문화는 레스토랑 및 바에서는 높은 술 가격, 한국과 달리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지 않는 음식점, 전철 및 대중교통이 아닌 차로 이동해야 하는 공간에서 음주운전에 대한 높은 규제 및 페널티도 존재한다. 하지만, 금주법을 통해 홈바(Home Bar)가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고, 이 시대에 칵테일 도구 등도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밀주를 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미국의 금주법 모습

나쁜 술을 감추기 위한 칵테일 제조

금주법이 시행되었다고 하지만 소비는 쉽게 줄지 않았다. 따라서, 1층에 있던 바(Bar)는 지하로 숨으며 히든 바 등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팔던 술은 대부분 밀주였다는 것. 제대로 된 숙성도, 발효도 없이 그저 알코올을 만들어 냈다. 쾌쾌한 냄새는 물론, 디자인도 빈약하였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이 바로 칵테일이다. 향기로운 과실 향과 멋진 장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사라 잡은 것은 물론, 오히려 나만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칵테일이 만들었다. 또 미국의 금주법은 수많은 미국의 바텐더를 유럽으로 보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결국 유럽의 바(Bar) 문화 보급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미국의 금주법이었다.

칵테일. 출처 pixnio.com


멕시코의 데낄라, 쿠바의 럼이 발달하게 된 계기도 금주법

금주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켄터키주에만 증류소가 3000곳이나 있었다. 하지만, 금주법이 시행되고 나서 모두 과일 주스 및 공업용, 또는 의료용 알코올 제조를 하며 견디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부분의 증류소가 힘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히든(Hidded Bar) 바 등에서 즐긴 상당수의 술은 어디서 만들었을까? 바로 이웃나라인 캐나다, 쿠바 및 멕시코, 캐나다가 그 주인공이었다. 미국 현지에서는 만들어와서 미국에서 유통시킨 것이다. 금주법이 없었던 멕시코에서는 데낄라가, 쿠바에서는 럼이, 캐나다에서는 위스키가 합법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결국 자신들의 무형자산을 외국에 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캔맥주 출시를 촉진시킨 금주법 시대

금주법의 배경에는 '알코올은 사탄의 음료'라고 외치던 미국의 보수 기독교파의 영향도 있었지만, 또 하나가 바로 독일에 대한 보복조치도 있었다. 당시 미국의 맥주산업을 이끌던 기업 대부분이 미국계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인 1916년도만 해도 이 금주법에 대해서는 정치가들 스스로가 크게 관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독일계 미국인의 표심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며 독일과 전쟁을 벌이면서 독일계 미국인은 점점 발언권이 사라지고, 독일계 미국인이 만드는 맥주에 대한 반발도 거세졌다.


미국의 백인 보수단체 KKK단의 맥주 및 알코올 금지 포스터


당시 독일계 맥주 회사는 안호이저 부쉬, 쿠어즈, 밀러, 슈리츠 등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이들이 번 돈으로 독일을 지원했다는 의혹도 커지면서 맥주는 위스키를 만드는 근원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맥주도 이 금주령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맥주 회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는데, 바로 맥주 음료를 만든 것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무알코올 맥주다. 흥미로운 것은 캔맥주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물론 테스트용 캔맥주는 있었다. 하지만 맥주 속의 탄산압을 견디지 못하고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폭발했다. 이에 맥주 업계는 캔맥주를 포기했으나, 금주령 시대에 무알코올 맥주를 만들면서 다시 캔맥주에 도전하게 되었고, 이후 내압을 견디는 캔을 개발, 1935년도에 처음으로 캔맥주가 미국에서 개발된다. 금주법이 미국의 캔맥주 계발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다양한 음주 산업을 만든 미국의 금주법

미국의 금주법을 보면 알코올의 음주나 소유는 가능하되, 판매 및 제조가 안된다는 아이러니한 법령이 흥미로운 결과를 만든 듯하다. 집에서 술을 즐길 수 있었고, 그래서 술이 필요했으며, 외국에 증류소를 짓고 밀수를 해오면서 갱단의 세력이 강해졌고, 그 결과 이웃나라의 술 산업을 발달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 캔맥주를 만드는 촉발이 되었다는 것. 결국 위에서 압박은 했으나 흘러내린 술이 더욱 다양한 산업과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 미국의 금주법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돌고도는 문화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Kingsdale, Jon M. "The 'Poor Man's Club': Social Functions of the Urban Working-Class Saloon," merican Quarterly vol. 25 (October, 1973): 472-89.

Kyvig; David E. Law, Alcohol, and Order: Perspectives on National Prohibition Greenwood Press, 1985.

Mark Lender, editor, Dictionary of American Temperance Biography Greenwood Press, 1988

岡本勝『禁酒法―「酒のない社会」の実験』 講談社現代新書 (1996)

岡本勝 『アメリカ禁酒運動の軌跡―植民地時代から全国禁酒法まで』    (199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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